63년 만에 노동절이 돌아왔다. ‘2026 세계노동절대회(이하 노동절대회)’가 지난 1일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진행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들은 직접 거리로 나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교섭권 보장과 원청 책임 강화를 요구했다.
확장되는 노동의 경계
5월 1일 노동절은 130여 년 전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데서 비롯됐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제’의 법제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는 5월 1일을 세계 노동자의 연대와 권리 쟁취를 기념하는 날로 지정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절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할 권리를 요구하며 쟁취해 온 역사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절은 63년 동안 ‘근로자의 날’로 불리며 그 의미가 축소돼 왔다. 1958년 대한노동조합총연맹 창립일인 3월 10일이 ‘노동절’로 지정됐으나,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명칭은 ‘근로자의 날’로 바뀌고 날짜 역시 5월 1일로 조정됐다. 63년 동안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로 불리며 그 의미가 축소되기도 했다. 상술한 법률은 근로자의 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규정하고 5인 이상 사업장, 초단시간 근로자는 적용 대상에서 배제했으며 노동자의 범위가 제도적으로 제한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이날은 모든 노동을 포괄하는 기념일이 아닌 일정한 고용 형태 안에 있는 ‘근로자’만을 기준으로 삼아 노동의 경계를 나누는 방식으로 작동해 온 셈이다.
노동절로의 명칭 복원과 더불어 공휴일로의 편입이 이뤄지면서, 5월 1일은 특정 고용 형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의 모든 노동을 포괄하는 기념일로 재구성됐다. 이는 노동을 둘러싼 배제의 경계를 완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제도 안으로 다시 포함시키는 변화라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확대되는 상징적 전환으로 읽힌다.
제도 밖에 남겨진 노동자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채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 지난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시행됐다.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제도 변화가 곧바로 현실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개정법 시행 이후 민간부문 216개, 공공부문 156개 원청이 교섭 요구를 받았지만 실제 교섭에 응한 곳은 33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부문뿐만 아니라 공공부문 원청 역시 교섭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다.
나아가 노란봉투법의 보호 범위 바깥에 놓인 노동자들도 존재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인사업자라는 열악한 환경 아래 노동자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원청인 BGF리테일에 교섭을 요구하던 화물연대 조합원이 트럭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장시간·저단가 구조인 운임 정상화와 안전운임 보장,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집단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원청은 고용관계 부재를 이유로 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같은 개인사업자의 법적 지위가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거리에서 이어진 노동권의 외침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다시 광장에 모였다. 지난 1일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절대회는 서울을 포함한 전국 13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됐다. 이날 열린 노동절 대회는 오후 3시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대회사와 연대 발언, 각 노조 및 연대 단체 대표자의 발언, 결의문 낭독, 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식순인 행진은 세종대로사거리를 출발해 종로1가 교차로와 을지로1가 교차로, 한국은행 앞 교차로, 소공로를 거쳐 서울시청 광장까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피켓을 들고 도심을 행진하며 ‘원청 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회사를 맡은 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은 “여전히 노동현장에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이주,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권을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발언을 위해 무대에 오른 김란희(서비스연맹 관광레저노조) 조합원은 “복수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를 갈라치기 한 기업을 알리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박정훈(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노동자의 이름은 되찾았지만 권리는 여전히 미완의 상태”라며 “다단계 하청 구조와 차별적인 법 제도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운(전국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은 “공무원 역시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제한받고 있다”며 노동기본권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진억(민주노총서울본부) 본부장은 “여전히 노동자성을 부정당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며 “특수고용, 플랫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노동관계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수경(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본부장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됐음에도 사용자들이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며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영철(건설산업연맹) 위원장 역시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원청 책임을 묻는 투쟁이 이어져 왔다”며 “원청 교섭 투쟁을 통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행진에서는 노동자들의 원청 교섭권 확대를 촉구하는 외침이 거리를 메웠다. 전호일(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해석지침으로 정부는 원청 사용자로서 지위를 회피하고 있지만 정부가 모범적인 사용자의 모습을 보여야 민간사업자가 따라온다”며 “산업별 교섭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과 그 결과가 모든 산업별 노동자에게 적용되고 이런 형태의 논의를 제도적으로 안착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민태호(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은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며 “공공기관이 앞장서 교섭에 나서고 처우 개선을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고은유(서울대학교 미학과) 재학생은 “청년 역시 결국 노동자로 살아가게 되는 만큼 노동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라며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유미(청년유니온) 집행위원은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대학 사회의 참여도 이어졌다. 송주명(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은 “노동절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면서도 “현장에서 노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