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현장이 답하다> 열악한 현실에 돌아선 발걸음 (한성대신문, 569호)

    • 입력 2021-08-30 00:02
    • |
    • 수정 2021-08-30 00:02

<편집자주>

나 말고 다른 사람. 그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그에게 묻는 것보다 그가 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종이에 적힌 자료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현실적이다. 나를 그로 바꾸기 위해 신문사 밖으로 향한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생생한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서울시 청년월세지원 대상자들의 평균 주거비는 보증금 828만 원, 월세 45만 원에 달한다. 자취하는 청년의 수요가 많은 대학 주변 주택가에서 집을 구해보면 보증금이 1,000만 원 이상인 경우가 많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 스스로 마련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렇다면 평균 주거비보다 낮은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미만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어떤 환경일까? 청년의 현실적인 주거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집을 구해봤다.

김지윤 기자

[email protected]

김기현 기자

[email protected]



"하루종일

돌아다녔지만

제가 가진 돈으론

마땅한 집을

구할 수 없었어요"



집을 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부동산에 방문해 공인중개사(이하 중개사)와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고,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간단한 사진이라도 미리 보고 싶은 마음에 발품을 팔기 전, 앱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집을 고르려면 먼저 매물 유형을 결정해야 한다. 사용 가능한 예산은 보증금 500만 원과 월세 40만 원이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주어진 예산을 훨씬 초과해 ‘원룸’ 유형을 선택한다. 원룸에서도 거래유형에 따라 금액과 매물이 천차만별이다. ‘전세’는 억대의 금액이기 때문에 고려대상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월세’로 나온 매물을 선택한다.

지역을 설정하는 창을 눌러 ‘한성대입구역’을 입력한다. 가격이 다양한 총 263개의 매물이 추려진다. 앱 상단에 있는 ‘검색 필터’를 눌러 보증금과 월세를 입력한다. 그러자 입주 가능한 집이 29개로 줄어든다.

▲주어진 예산을 뛰어넘은 보증금. 대부분 1,000만 원을 상회한다.

#수고비를 요구받은 집

추천순으로 정렬된 화면에서 가장 위에 있는 매물을 클릭한다. 선택한 집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방 사진이 담긴 창이 열린다. 사진 속에 놓인 낡은 가구와 누렇게 바래진 벽지가 눈에 띈다. 화장실은 한 평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크기다. 구조는 복도식으로, 문을 두고 오른쪽은 세면대, 왼쪽에는 변기가 있다. 샤워하기에도 비좁아 보인다. 다른 집을 고르기 위해 창을 닫는다.

여러 매물 사이로 비교적 넓어 보이는 집을 발견한다. 이번 집에는 두 개의 큰 창문과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실제로 방문하면 사진으로 본 것보다 좁을 수도 있으니, 찾아가 보기로 한다.

앱 하단에 있는 ‘중개사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버튼을 클릭하자 중개사와 전화가 연결된다. “보증금과 월세를 어느 정도 예상하나요?” 보증금 500만 원과 월세 40만 원이라 설명하자. “좋습니다. 수고비는 꼭 주셔야 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예상치 못한 수고비 요구에 말문이 막힌다. 수고비(중개 알선 수수료)는 실제 거래 계약까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중개물 소개·알선 등에 들어간 비용을 말한다. 수고비 문화를 지양하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가 있었지만, 일부 중개사는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 수고비가 얼마나 나올지 짐작할 수 없어 우선 전화를 끊는다. 보증금과 월세가 아닌 수고비는 예산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에 들었던 집을 포기하고 다른 집을 찾는다.

#pc방이었던 집

학교와 가까운 거리의 집을 구해보기로 한다. 앱을 통해 방문하기로 약속한 매물은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집 앞에서 중개사를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다. 방에 들어가니 심하게 흠집이 난 나무 책상과 낡은 갈색 장롱 2개가 보인다. 방 안의 공기가 탁하게 느껴져 창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작은 직사각형 창문의 테두리가 모두 실리콘으로 덮여 개방 할 수 없게 돼 있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중개사가 설명해준다. “원래 PC방으로 사용하던 장소에 벽을 세워 원룸을 만들었어요. 창문까지 교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베란다에 있는 창문은 열립니다”

창문을 확인하기 위해 베란다로 들어간다. 먼지와 거미줄이 잔뜩 붙어있다. 창문 아래쪽을 밀어 전부 다 열어도 겨우 30cm 정도다.

베란다 오른쪽에는 화장실도 있다. 놀란 기자에게 중개사는 PC방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라 집의 구조가 특이하다고 설명한다. 세면대 수도꼭지는 청록색 물때로 뒤덮여 있고, 배수구는 녹이 슬었다. 변기 안은 검은 물질이 가득해 위생이 좋지 않아 보인다. 다른 집을 더 둘러보겠다며 발길을 돌린다.

▲다른 층과 달리 반지하층 창문에는 방범창이 없다.

#악취가 진동하는 집

다음 집을 방문하기 위해 가파른 길을 오른다. 생각보다 경사가 높은 탓에 숨이 찬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중개사가 가리킨 방향은 비좁은 골목길이다. 약 1m의 공간을 두고 두 개의 건물이 나란히 있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구조다.

공동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1층에 사는 주민의 생활 소음이 사방에 울려 퍼진다. 현관 한편에는 깨진 대리석 조각이 널브러져 있고, 다른 한편에는 누군가 방치해둔 쓰레기봉투 더미가 쌓여있다. 2층에 있는 집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쓰레기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간다. 이번 집은 그동안 살펴본 매물보다 깔끔하다. 그러나 창문을 열어보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풍경이 아닌 반대편 건물의 갈색 벽돌뿐이다. 햇빛은커녕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기자가 길을 오르는 모습. 매일 오르내리기엔 가파른 높이다.

위의 집들을 포함해 총 17개의 집을 둘러봤음에도 마음에 드는 매물은 없었다. 부동산을 가자는 중개사를 따라간다. 문앞에서 만난 중개사의 지인은 기자에게 묻는다. “얼마 생각해?” 중개사는 답을 가로채며 “싼 집 구해, 500짜리”라고 말한다. 학생의 입장에선 500만 원도 큰돈인데, ‘500짜리 싼 집’이라는 중개사의 말에 주눅이 든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는 좋은 환경의 집을 구하기 쉽지 않다. 철저한 보안과 쾌적한 환경의 집을 꿈꿨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학생들이 학업을 병행하며 월세와 생활비를 혼자 부담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부모님 지원 없이는 집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17개의 집을 보는 사이 하루가 끝나버렸다. 결국 계약서 없이 부동산을 나오는 빈손에 마음이 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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