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대학은 인재 양성의 요람이라 불린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고유의 이념과 특성에 맞춰 자치적인 운영 체계를 갖춘다. 대학의 기본 질서를 규정하는 학칙 또한 학교가 자율적으로 제정해, 교육과 생활 전반의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칙이 학생 자치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2025년에 한성대학교에서는 윤석열 정권 탄핵 집회가 진행됐었으나 학생들의 학내 집회가 거부된 바 있다. 학칙이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집단적 행위·시위 등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2024년 동일한 목적의 교수 및 교직원의 집회 행위가 제한 없이 이뤄진 것과 대비된다.
본지는 학칙이 자치의 이름 아래 통제의 흔적을 이어온 현실을 짚어보고, 대학자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되묻고자 해당 기사를 송고한다.
박석희 기자
‘학칙(學則)’은 대학이 학교 운영과 학생 생활 전반에 관한 사항을 자율적으로 정한 내부규범이다. 『대한민국헌법』(이하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 자유의 이념을 바탕으로 대학 공동체가 학문 활동과 교육 운영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스스로 세운 기본 원칙이자 제도적 약속에 해당한다. 차종관(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은 “학칙은 대학의 헌법과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학은 학칙을 자율적으로 제·개정할 수 있는 고유한 권한, 즉 법적 제정 권한을 부여받는다. 일반적으로 법령과 규칙은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의 효율적인 운영과 통제를 보장하기 위해 획일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대학은 행정기관이 아닌 자유로운 교육공동체이기에 학칙이 통제를 위한 규율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가치를 설계하도록 보장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원지현(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의장은 “학칙은 학내 구성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안정적인 대학 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학칙의 목적이 현실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되도록 『고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학칙의 기재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대학은 자치권을 부여받아 건학이념과 교육적 지향, 특성에 맞게 학과 편제, 수업 연한, 등록금, 학생자치활동 등의 운영 사항을 구체화한다. 송연창(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고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의 학칙 관련 조항은 학교가 특정 의사결정권자의 재량에 따라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방지하고 대학 운영의 기본 원칙을 법적 틀 안에서 유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학칙은 끊임없는 행정 절차와 규율의 틀로 작동하며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실정이다. 학내 구성원의 활동을 정보의 공유나 협조 절차를 넘어 사전 승인을 학칙으로 규정하며 대학이 구성원의 활동을 사전에 검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형태다. 실제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경미(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8년 9월 기준 전국 4년제(국·공·사립) 대학 184교의 학칙 및 학생 관련 규정의 70%가량이 집회·게시물·간행물 발간 등을 사전에 승인받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특히 학생단체 조직 시 총장의 허가를 요구하는 대학도 다수 확인됐다.
“학생활동을 제한하는 학칙의 연원은 학도호국단에 있다.”


학칙을 통한 통제의 뿌리는 1970년대 유신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유신을 선포하며 정당 및 정치활동 등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켰고 학칙 또한 그 영향 아래 놓였다. 이때 학칙을 대신해 제정된 것이 『대한민국학도호국단규정』이다. 해당 규정을 통해 모든 대학생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 이념을 학내에 주입하기 위한 학도호국단의 단원으로 편입됐다. 이에 따라 학생회는 폐지되고 동아리와 같은 학생 단체도 학도호국단 체계 아래에 놓였다. 그 결과 학생 단체는 출판·집회·결사·정치적 발언 행위를 금지당하고 학도호국단 단장이나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의 승인 체계 아래에 놓이게 됐다. 차 자문위원은 “유신체제에서 학도호국단이 도입되면서 학칙은 국가주의적 통제 수단으로 재활용됐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에 들어 학도호국단 폐지 등 민주화의 진전을 거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유사한 내용이 이어지는 형세를 보인다. 학도호국단 단장이나 문교부 장관의 승인 대신 총장의 승인을 통해 학생 단체가 설립될 수 있도록 변경된 것이 일례다. 수평적 공동체여야 할 대학에서 학칙이 위계질서를 형성하며 통제의 논리를 재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형석(우석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부 대학은 학생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지도와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학칙을 ‘생활지도를 위한 규율’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학칙은 집회·결사를 제한하고 학생대표의 자격을 설정하는 등 자치를 훼손하는 형태로 계승됐다. 학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비판적인 학생활동을 제재하거나 구성원의 표현을 제한하는 형식이다. 2018년 단국대학교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평화의 소녀상 건립 서명운동을 진행하던 동아리 ‘평화나비’가 학교로부터 중앙동아리 인준을 거부당했다. 해당 동아리가 정치적 성향이 짙고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2020년에는 한신대학교 총학생회가 총장의 금품 수수 및 채용 비리 의혹을 두고 성명서 발표·기자회견을 진행하자 학교 측이 대표자 2인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각종 학칙을 위반했다는 사유였다.
문제의 근본은 상위 기관의 위계 구조에 지나치게 종속돼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현재 교육부는 『고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의거해 학칙의 구성 항목, 절차, 등록금 등의 사항을 학칙에 담아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변경 시 정기 행정점검을 통해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 결과 학칙은 대학 공동체의 가치와 학문적 자유를 담아내는 자율 규범이 아니라 법이 정한 형식을 충족하기 위한 행정 문서로 전락했다.
유신정권 시절의 통제 조항이 존재하는 걸 인지하고 있으나 대학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정치적 견해의 표현은 교육 목적과 양립 가능하다고 판시하며 학칙의 통제성을 지적했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교내 게시물 부착 등을 사전 허가 대상으로 삼아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실제 학칙 개정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통제의 유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임은희(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비민주적 학칙이 개정되지 않고 방치돼 있는 것은 학교의 문제”라고 전했다.
그중에서도 학생만이 과도하게 제약받는 폐해가 나타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직원의 경우 학칙의 적용을 받더라도 교직원 보수규정, 복무규정, 업무과실로 인한 배제 운영 규정 등 행정 처리와 보호 체계가 함께 마련돼 있다. 교수 또한 『고등교육법』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법령을 마련하며 권리 보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학생은 보호 장치가 미비하기에 보호의 주체로도 충분히 인정받기 어렵다는 견해다. 차 자문위원은 “학칙은 대학생활의 주체인 학생을 규정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속해서 개정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칙 제·개정 과정에서 반영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현행 제도상 학칙 개정 시 대학은 대학평의원회(이하 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구성은 교원, 직원, 조교, 학생 등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학생대표가 심의·의결 과정에 참여하지만 다른 의원들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학생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학생 참여는 절차의 완성을 위한 장식적 요소로 작동한다는 논리다. 임 연구원은 “학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대상은 학생임에도 정작 학칙의 개정 및 발의 권한이 학생에게 부여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학칙이 ‘금지의 언어’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학칙이 특수성과 구성원의 다양성을 포용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허용되지 않으면 금지된다’는 행정 논리로 운영되고 있다. 이로써 학칙은 일률적인 제한으로 작용하며 합의나 설득을 기초로 해야 할 공동체의 원리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임 연구원은 “우리나라 학칙은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돼 있다”며 “이는 상위법인 헌법과 충돌하는 문제를 낳는다”고 전했다.
상위 기관의 과도한 간섭은 관리·감독 권한이 형식적 통제 수단으로 변질된 데서 비롯된다. 1990년대 이후 대학이 정부 재정 지원에 의존하게 되면서 교육부는 재정의 투명성 확보를 명분으로 관리·감독 권한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제시하는 표준형 서류와 평가 지표가 대학 행정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 표준이 사실상 규범으로 기능하면서 표준안을 따르기 위해 전국 대학의 학칙은 유사성을 띠기 시작했다. 표준안을 지키지 않을 경우 교육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학칙이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점검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 학칙으로 인한 인권 침해가 일어날 경우 교육부, 인권위 등의 기관에서 개정 권고를 내리지만, 일시적인 형태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외의 정기적인 검토 혹은 여러 대학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점검, 개정 절차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 교수는 “교육부가 대학에 시정명령이나 행정지도를 내릴 수는 있지만 강제력이 약해 대부분 경고 수준에 그친다”며 “이로 인해 일부 대학에서는 인권 침해적 학칙이 수년째 그대로 유지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이 학칙의 가장 직접적인 적용 대상임에도 권익 보호 장치가 자리하지 않은 점이 학생 중심의 통제 구조의 원인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각 대학에 인권센터가 설치돼 성폭행, 인종차별 등의 인권 침해 사항을 검토하고 있지만 조사 권한을 갖더라도 그 이후의 처리 절차는 다시 학칙에 따라야 한다. 학칙은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 징계 절차의 적법성에 초점을 맞춰 실효성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원 의장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학칙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직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땅히 없다”고 지적했다.
평의원회 의결 구조의 비대칭성이 학칙 제·개정 과정에서 학생 의견이 배제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평의원회 의결 구조상 교수, 직원, 조교 등 학교 운영 주체가 다수를 차지하며 이들은 행정 체계 안에서 의사 결정권과 정보를 공유하는 위치에 있다. 반면 학생은 비교적 정보의 제약이 있는 것에 더해 소수의 입장이다 보니 의견을 건의하는 것부터 가로막히기 쉽다는 의견이다. 조성한(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명예교수는 “평의원회에서 학생의 의견은 반영되기 어렵다”며 “현재 운영되는 평의원회의 심의 과정은 학칙 개정상의 비민주성을 효과적으로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제 중심의 학칙은 대학이 합의와 설득을 통해 규칙을 형성하는 공동체임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40여 년간 학칙은 구성원의 자율을 전제로 한 규범이 아닌 위반을 가정한 관리의 장치로 작동해 왔다. 그 사이 학칙이 토론과 합의의 산물이라는 인식은 점차 흐려졌고 대학의 자치 정신 또한 제도 속에서 서서히 빛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과거의 전통적 관념이 오늘날까지 남아 학칙이 학생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적 배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자치의 정신을 학칙에 담아 자율의 기반을 세워야 한다.”


법적 위계에 따른 단순 종속 관계를 넘어 헌법과 『고등교육법』, 학칙이 하나의 통합된 헌법 구조로 작동하도록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제시된다. 학칙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과 대학 자치의 원칙을 구현하는 자율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명진(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는 “학칙의 어떠한 조항이라도 학생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거나 상위 법률에 위배된다면 그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에서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학칙에 대한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를 통해 위헌적 요소를 바로잡고 대학이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감시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 연구원은 “교육부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학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시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학생 권익 보호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실질적인 피해 구제와 예방이 가능한 보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기된다. 각 대학의 인권센터가 학칙의 제약 없이 권고·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차 자문위원은 “인권센터를 독립 기구로 전환해 조사·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평의원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균형 있게 개편하는 것이 학칙 제·개정 과정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학생들의 참여 비율을 확대하고 실질적인 발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 명예교수는 “평의원회가 형식적인 심의기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학칙의 기본 원리를 ‘허용을 전제로 한 최소 규제’로 전환하고 헌법적 가치를 반영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점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를 통해 학칙이 단순한 행정 규율을 넘어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자치 규범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학생들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학칙을 만들어갈 때 비로소 학칙은 살아 있는 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