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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애플이 내년부터 ‘폴더블 아이폰’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폴더블 제품에 경쟁사인 삼성의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채택하겠다고 밝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국내 기술이 품질 검증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애플의 기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는 이미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술에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화면이 접히는데도 꺼지지 않고 그대로 빛을 내는 건 어떤 기술 덕분일까. 그리고 기업들은 왜 이토록 접는 기술에 사활을 거는 걸까.
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온 이 기술에 대해 이해해야 앞으로의 기술 발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다. 이에 본지는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구조와 핵심 기술, 그리고 전망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이승희 기자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핵심은 접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곡률(Curvature)’을 원활하게 구현해야 한다. 곡률은 화면이 얼마나 부드럽고 자유롭게 휘어질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물리적 지표다. 수많은 개폐 동작을 반복하면서도 화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소재의 유연성과 내구성 사이에서 정밀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곡률을 자유롭게 조절하기 위해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접고 펼 때 물체가 받는 힘, 즉 ‘응력(Stress)’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응력은 물체의 외부에서 힘이 가해질 때 물체 내부에서 이를 버티려는 저항력으로, ‘압축응력’과 ‘인장응력’ 등으로 나뉜다. 압축응력은 물체를 누를 때, 인장응력은 잡아당길 때 발생한다. 서민철(경희대학교 미래정보디스플레이학부) 교수는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응력이 특정 부위에 집중되지 않도록 물성, 위치, 두께 등의 구조가 세밀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응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화면을 구성하는 다층 구조를 가능한 한 얇게 적층시키는 설계를 채택한다. 화면은 주로 ▲커버 윈도우 ▲터치센서 ▲OLED ▲박막 트랜지스터(TFT) 등으로 구성된다. 각 층을 얇게 설계하면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을 효과적으로 약화시키고 내부 응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 접는 것보다 한 장의 종이를 접는 것이 더 쉬운 것과 같은 원리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응력을 이겨내기 위해 ‘초박형유리(Ultra Thin Glass)’를 사용한다. 초박형 유리는 두께가 약 100마이크로미터로 매우 얇으면서도, 쉽게 파손되지 않는 특수 강화 유리다. 얇기, 강도, 유연성 등의 특성이 폴더블 화면을 구성하는 데 적합하다. 이에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해 화면을 보호하는 커버 윈도우로 활용된다.
초박형 유리는 이온 교환 공정을 통해 우수한 유연성과 강도를 얻는다. 이온 교환은 고체물질 속에 있는 이온이 전해질 수용액과 접촉할 때 서로 자리를 바꾸는 현상이다. 전해질 수용액은 이온 교환을 위해 전류가 흐르는 수용액이다. 일반적인 유리는 주로 소듐 이온(Na+)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칼륨 이온(K+)이 풍부한 용액에 담그면 유리 표면의 소듐 이온이 칼륨 이온과 교환된다. 송장근(성균관대학교 디스플레이특성화대학원 첨단디스플레이공학과) 교수는 “유리재질인 UTG는 표면이 매끄럽고 스크래치에 강해 폴더블 디스플레이에 활용하기에 우수하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이온 반경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이온 반경은 이온의 가장 바깥쪽 전자껍질과 원자핵 사이의 평균 거리로 이온의 크기를 말한다. 반경이 큰 이온은 표면에서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유리 표면에는 팽창이 일어난다. 권장혁(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회장은 “칼륨 이온은 소듐 이온에 비해 비교적 큰 크기를 갖고 있다”며 “이온 교환이 이뤄지며 유리 구조가 국소적으로 팽창한다”고 부연했다.
구조적인 팽창은 내부에 압축응력을 유도하게 되며 물질의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하려 한다. 이 응력은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균열이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억제하는 장벽 역할을 한다. 칼륨 이온이 소듐 이온보다 이온 반경이 크기 때문에 유리 표면에 자리 잡으면 해당 부위가 팽창하고 이로 인해 내부 압축응력이 형성되는 방식이다. 권 회장은 “결국 물체의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이온 교환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핵심 소재로는, 화면의 빛을 발광시키는 ‘OLED(Organic LightEmitting Diode)’가 있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 기존의 평탄한 스마트폰 화면인 LCD의 구조를 이해해야 할 테다. LCD는 ▲유리 ▲컬러필터 ▲액정 ▲편광판 ▲백라이트 등 복잡한 층을 가졌다. LCD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없어 화면 하단에 위치한 백라이트가 흰색 빛을 쏜다. 이 빛은 먼저 편광판을 통과한 뒤, 전기 신호에 따라 배열이 조절된 액정 층을 지나게 된다. 스마트폰을 켜면 화면에 이미지가 표시되도록 전기 신호가 디스플레이 패널에 전달되는 형태다. 액정은 구현하려는 이미지에 따라 빛의 투과량을 정밀하게 조절한다. 이후 빛이 적색(R), 녹색(G), 청색(B)으로 분리된 컬러 필터를 통과하면서 각각의 화소에 대응하는 색상을 표현한다. 이 과정을 거쳐 수많은 픽셀이 모이면 화면에 원하는 색상의 이미지가 구현되는 것이다.
반면 OLED는 유리 기판 위에 형성된 자체 발광 소자로 더욱 단순한 층을 형성한다. OLED는 픽셀 단위로 적색, 녹색, 청색 각각의 소자가 배치돼 스스로 빛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이에 OLED는 LCD의 컬러필터부터 백라이트까지의 구조를 단일층으로 압축시켜 효과적인 적층구조를 갖는다. 문천우(순천향대학교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적층구조는 디스플레이의 여러 구조에서 활용됐으나 OLED는 소자를 활용해 두께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역설했다.
OLED 소자는 전류를 공급받아 빛을 방출하는 반도체 구조를 지닌다. 반도체 내부에는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전자와 전자가 빠져나가 생긴 양전하 성격을 띄는 정공*이 존재한다. 전류가 흐르면 전자와 정공은 각각 음극과 양극 방향으로 이동하고, OLED의 중심에 위치한 발광층에서 이들이 만나게 된다. 송 교수는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전도대와 정공이 이동하는 통로인 가전자대를 이동하다가 발광층에서 만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발광층에서 만난 두 입자는 서로 반대 전하를 띠므로 전기적으로 끌려 하나의 결합 쌍을 형성한다. 이 결합쌍은 높은 에너지 값을 가지며 불안정한 성질을 지닌다. 이에 더 안정된 상태로 전이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결합 쌍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결합 쌍이 소멸하면서 남는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 방출 에너지가 바로 가시광선 형태의 빛으로 전환돼 디스플레이 화면의 색상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서 교수는 “OLED의 유기층은 유기반도체로 전자와 정공이 만나 쌍을 이루고, 이것이 재결합되면서 에너지 차이만큼 빛을 낸다”고 전했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화면의 여러 층을 원활하게 결합하기 위해 ‘점착제’ 또한 활용했다. 점착제는 약한 힘으로도 표면에 부착되며, 반복적인 접착과 분리가 가능한 재료를 뜻한다. 본드 등의 접착제를 사용한다면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화면이 제대로 접히지 않거나 각 층이 파손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료를 유연하게 고정하기 위해 점착제는 분자 간 전기적 인력에 기반한다. 모든 재료의 분자는 전자를 포함하고 있다. 이 전자가 다른 재료와 접촉하면 두 재료 표면의 분자 사이에서 전자가 약간 이동하며 전자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전기적 인력이 발생하고 인접한 분자 표면 사이에서 작용해 점착력을 유지시킨다. 우리가 흔히 겪는 정전기 현상과 유사하다. 문 교수는 “반데르발스 힘이라고 부르는 분자 간 인력으로 인해 폴더블 디스플레이 재료를 부착시킬 수 있다”며 “이 인력은 표면적이 클수록 효과가 강화된다”고 부연했다.
점착제는 단순히 층과 층을 붙이는 역할을 넘어서, 화면을 접고 펼칠 때 발생하는 압축응력이나 인장응력을 완화하는 완충재 역할도 수행한다. 특히 폴더블 디스플레이처럼 반복적인 물리적 변형이 일어나는 구조에서는 이러한 응력 분산 기능이 화면의 내구성과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김현재(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점착제는 압축·인장응력을 흡수하면서도 층간 분리를 방지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애플의 폴더블 디스플레이 출시 예고는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주류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는 신호로 더욱 다양한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활용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단순히 접히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사용자의 동작과 상황에 맞춰 화면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권 회장은 “두 번 접는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향후 새로운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확대로 폴더블 기술 경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폴더블 관련 기술은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미국이 이에 가세하며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각국의 각축전이 치열할 것 이라는 의미다. 김 교수는 “각국은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전략기술 자산으로 보고, 소재·부품·장비 전반에 걸쳐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공 : 전자가 결합을 깨고 전도 전자가 될 때 비어 있는 자리로 새로운 전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전자의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