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돌봄의 무게를 ‘N인분’하다 (한성대신문, 627호)

    • 입력 2026-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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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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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인분 조기현 대표

[사진 : 황수민 기자]



<편집자주>

돌봄을 받는 사람도 언제든 돌봄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특히 돌봄을 주는 이의 나이가 어릴수록 돌봄의 주체가 되는 상황은 막막하다. 막막한 현실에 놓인 이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N인분’의 조기현(34) 대표다. 스무 살 무렵부터 아버지를 돌봐온 그는 자신이 겪었던 ‘막막함’을 타인도 겪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희망과 함께 그는 누구도 돌봄을 이유로 나를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가족은 가족만이 돌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서로의 돌봄을 추구하는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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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대상에서 돌봄의 주체가 되다

조 대표는 어릴 적 예술가를 꿈꿨다. 학력과 관계없이 예술가의 자리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을 보며 사회가 정한 순리에 갇히지 않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스무 살 무렵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자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그는 하루아침에 아버지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 필요한 절차를 밟는 일부터 식단과 약물 관리까지 돌봄에 필요한 일을 하나씩 배워야 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보호자를 계속 찾는데 조건이 가족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보호자를 맡게 된 거죠. 당시 만 19세였는데 중환자실 연대보증인 서명은 만 24세부터 가능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장벽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결국 아버지 일터 동료분께서 서명을 해주셔서 중환자실에 올라가게 됐죠.”

돌봄은 아버지의 일상을 보조하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건강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서비스를 알아보는 등 돌봄에 관한 판단과 결정도 그의 몫이었다.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병원과 주민센터 등을 찾았지만, 아버지가 비교적 젊다는 이유 등으로 필요한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혼자 모든 과정을 혼자 해야 하다 보니 책임감이 막중했다.

“모든 창구가 봉쇄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주민센터나 사회복지과는 부모님의 이혼에 관해서 서류상 이혼이라도 위장 이혼인 경우가 많다며 지원을 신청해도 안 될 거라고 얘기했죠. 장애인 혼자 사는 가구가 얼마나 힘든지를 언급하면서 사지 멀쩡한 자식이라도 있어 너무 좋은 가정 아니냐고 하니까 어려움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어요. 돌봄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혼자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아버지의 돌봄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 조 대표였지만, 마음 한 켠에는 이러한 삶에 처한 사실이 억울함으로 다가왔다. 돌봄을 당연하다시피 치부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힘듦을 내색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 조 대표는 활자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전하기로 결심했다.

“돌봄을 하면서 글을 쓰는게 맞냐는 질타를 받을까 두려웠어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돌봄을 한 제가 돌봄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도 했죠. 그러다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저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그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않으니 제가 나서보자고 했어요.”

심사숙고 끝에 조 대표는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출간했다. 돌봄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한 것이다. 나아가 가족을 돌보는 일을 개인의 사정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가 함께 고민하기를 바랐다.

“이 책은 장면을 정말 상세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어요. 다만 가난과 돌봄의 어려움을 단순히 ‘빈곤 포르노’처럼 전시하지 않겠다는 목적이 있었죠. 출판사에서는 처음에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다’라는 제목을 제시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선언이 책에서는 일부분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돌봄으로 겪는 수많은 이야기를 포괄하는 제목인 ‘아빠의 아빠가 됐다’로 짓게 됐어요.”

집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지만, 내면의 취약한 모습을 마주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3개월 동안 한 줄도 적지 못하던 조 대표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고민과 어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로 했다. 그래야 누군가 바통을 이어받고 각자의 얘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 대표의 진심은 독자에게 정확히 닿았다.

“내가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3개월 동안 헤맸어요. 그러다가 그냥 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얘기하자는 생각에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렇게 3개월 만에 첫 문장이 써졌어요.”

조 대표의 속마음이 담긴 책이 발간됐고 독자들은 공감을 표현했다. 돌봄청년을 뜻하는 ‘영케어러’라는 단어도 조 대표의 책을 통해 알려졌다. 이후 언론의 주목과 행사 섭외 등의 연락이 쏟아졌다. 젊다는 이유로 돌봄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빈번했던 문제들이 조 대표로 하여금 하나씩 해소돼갔다.

“제가 다 만든 건 아니지만 영케어러 지원 체계가 수립됐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 큰 일이에요. 무엇보다 ‘거울 같은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정말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책이 됐다는 피드백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개인의 경험에서 공동체의 목소리로

조 대표는 책 출간을 넘어 같은 경험으로 모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취약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족 돌봄 안에서만 맴돌아야 했던 영케어러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2021년에 영케어러 5, 6명이 모여 구글 미트나 줌 등을 활용해 화상으로 모임을 가졌으며 서로 돌아가면서 모임의 진행자가 되기도 하고 돌봄에 관한 시 쓰기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N인분’ 의 시작이었다.

“사실 공동체는 책을 쓰기 전부터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인이 필요하기도 했죠. 그렇게 온라인 모임을 가지다가 요구만 하는 단계를 넘어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2023년 비영리 단체 ‘N인분’을 설립해 사업을 확장했어요.”

‘N인분’은 한 명의 영케어러가 많은 몫을 혼자 해낸다는 의미와, 영케어러가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사회가 그 책임을 N개로 나눠야 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N인분은 설립 당시 ‘돌봄 청년 커뮤니티 n인분’에서 현재 ‘돌봄 커뮤니티 N인분’으로 바뀌었다. 청년과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함께하고 싶으면 함께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서였다. 그렇게 작년 돌봄안전망을 확대하고자 소문자 n에서 대문자 N으로 단체명을 변경했다.

“대표적인 N인분 활동으로 ‘영영케어 동료 상담’이 있어요. 나만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돌봄이 처음 돌봄을 시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 되는 거예요. 저처럼 누군가를 돌봐본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느낀 막막함을 느끼지 않도록 이미 경험한 동료가 얘기해 주는 상담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해서 시작한 사업이죠. 돌보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야 하고 더 당당하게 자신의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체 운영에는 어려움 또한 존재한다. 상담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적절히 가닿기 위해서는 매칭이 선사돼야 하지만 그 매개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 대표는 영케어러간의 유연한 연결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보통 복지관 중심으로 양성된 상담가들이 파견되곤 해요. 하지만 중간 매개가 굉장히 어렵죠. 연계나 상담도 결국 복지관 안에 들어온 사람만 가능하니까요. 그런 지점은 풀어갈 숙제라고 생각해요.”

[사진 제공 : 조기현 대표]



서로를 돌보는 사회를 향해

N인분이 추구하는 사회의 방향성은 ‘돌봄을 해도 괜찮고, 돌보고 싶은 사회다. 조 대표는 돌봄을 단순히 가족 구성원의 의무로만 여기는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결국 개인의 희생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한다. 돌봄을 당사자만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누구나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돌보면 폐를 끼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서로 기대고 의존해도 되는 사회가 돼야 해요. 돌봄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돌봄을 하더라도 피해 보지 않게 해달라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과 돌봄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조 대표는 돌봄이 특정 가족이나 개인에게만 맡겨지지 않도록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도 돌봄 당사자를 발굴하고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늘 문제 해결과 치유는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 해결만 신경쓰느라 서로의 돌봄에 소홀해져도 안되고, 돌봄에만 치우쳐 부족주의적으로 가서도 안 되는 거죠. 우리나라 제도는 동거를 기준으로 지원한다거나 학업·취업에 심각한 곤란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영케어러의 기준으로 돼 있으니까 굉장히 행정 편의적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N인분은 앞으로도 돌봄 당사자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커뮤니티와 동료 상담 활동을 이어가며 정책 개선과 인식 변화에도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조 대표는 돌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살아가며 돌봄을 주고받는 만큼, 돌봄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게 지금 우리 삶을 더 위태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돌봄은 사라지면 안 되잖아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우리 삶에 계속 필요한 일이죠. 서로 돌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결국에는 삶의 어느 순간에는 정말 돌봄이 필요한 때가 오거든요. 그때 돌봄의 필요성을 떠올릴 수 있으면 충분해요. 돌봄이 아직은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공동체를 유지하는 귀한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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