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 나는 강의실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도착해있던 사람을 향해 눈을 데구루루, 앞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눈을 데구루루, 교수님이 언제 오실까 복도를 향해 눈을 데구루루. 아마 내 몸의 기관 중 가장 피곤하게 일하는 것은 바로 눈일 것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남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신조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넌씨눈(넌 x발 눈치도 없냐)’이나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같은 단어들. 이 두 단어는 눈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 쓰이곤 한다. 나 역시 학창시절을 보내며 비슷한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는 사이 천진난만하고 당당했던 14살의 나는, 어느새 눈치 보기에 바쁜 19살의 내가 돼버렸다.
이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다를 바 없었다. 하루하루 눈을 굴리기에 바빴고, 눈과 마음은 점점 피곤해져 갔다. 나는 교내 상담 센터에 찾아가 상담 선생님께 이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한 동물의 이야기를 하셨다. ‘미어캣’. 흔히 ‘미어캣’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두 발로 땅에 서서 꼿꼿이 몸을 세운 채, 길게 목을 내밀고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 선생님은 나의 모습이 미어캣 같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는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한 무리의 미어캣과 같다.
우리가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뒤처지지 않는 것에 몰두하는 사이,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남들과 똑같은 미어캣이 돼 타인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본연의 성격을 숨기고 자신을 죽인다. 그리고 먼저 미어캣이 된 사람은 아직 미어캣이 되지 않은 자를 비난하며 또 한 마리의 미어캣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남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온전한 ‘나’를 만드는 것이다. 더 이상 눈치보지 말자. 눈치를 강요하지도 말자. 그것이 온전한 ‘나’를 만드는 첫걸음일 것이다.
심채영(인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