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고 사회 한 바퀴> 국민연금, 세대 간 무게추 맞추기 위해 (한성대신문, 603호)

    • 입력 2024-09-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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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10-04 20:48

<편집자주>

‘20대가 꼭 알아야 하는 경제 상식’ ‘경제 초보를 위한 경제 개념 10분 요약’ 인터넷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경제 관련 콘텐츠들이다. 대학생이 됐으면 경제 상식 정도는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관심을 가져보려 해도 까다로운 경제 용어가 발목을 잡기 일쑤다. 겨우 이해했다 하더라도 경제 뉴스 한번 읽어볼까 하면 공부했던 기억이 휘발되곤 한다.

경제주체로서 현명하게 소비하고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사회 전체의 경제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경제 원리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이를 사회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경제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0년 뒤 미래에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정부는 지난 4일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노후보장 제도인 만큼 관련 소식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노후에 소득이 없을 때 보험료를 낸 만큼 기본적인 생활을 보호받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사안이니 말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국민연금이 가계의 소비 및 저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관련 사회 문제까지 알아봤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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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대비하는 현재의 투자

‘연금’은 소득이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은퇴 이후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저축 제도다. 정부는 국민연금 대상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적립한 후 연령, 납입 기한 등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이를 다시 지급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지원한다. 즉 국민 노후보장 의무를 지닌 정부가 자금을 운용한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은 정부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재정정책은 국민 소득을 변화시켜 가계, 기업 등의 소비와 저축에 변동을 유발한다. 이는 ‘승수효과’와 ‘구축효과’로 설명된다. 승수효과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국민 소득이 증가해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확대되는 등 경제 전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반면 구축효과는 승수효과와 마찬가지로 정부 지출이 확대됐음에도 가계가 소비와 저축을 줄여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이다. 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자금이 한정적이므로 정부의 재정정책 확대는 이자율을 상승시켜 가계의 소비와 저축을 축소시킨다.

구축효과의 성격을 지닌 재정정책이 바로 ‘국민연금’이다. 연금 보험료 납부로 인해 가계의 소득은 감소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을 줄이고 가계의 저축까지 위축시킨다. 가계가 소비나 사적저축 대신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에 더 많은 자금을 할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성호(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센터) 센터장은 “공적연금의 보험료를 높이면 미래의 소비를 보장받아 사적저축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구축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의 소비와 사적저축 조절 행위는 가계가 생애 전반에 걸쳐 일정한 소득과 소비 수준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생애주기가설’은 가계가 평생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득에 따라 소비와 저축을 적절히 배분하는 경제 이론이다. 이는 인간이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가정하에, 가계가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경향에서 나타난다. 특히 국민연금을 보장받는 상황을 살펴보면, 먼 미래에 노후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가계는 현재의 소비나 사적저축을 줄이는 구축효과가 발생시키며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이 현재의 가치를 높인다고 판단하게 된다. 김형진(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대다수의 사람은 평생 일정한 소비가 유지되기를 원하므로 생애주기가설에 입각해 소득과 소비, 저축의 수준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가계는 생애주기가설에 따라 현재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래 소득과 소비를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는 ‘할인’을 적용한다. 할인은 미래의 이익을 현재 가치로 계산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자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미래 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비율인 할인율을 적용하면 이자율을 제외한 현재 가치를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자율이 연 10%(=0.1)라고 가정했을 때 1년 후 1만 1천 원(=10,000×(1+0.1))에 이자율의 역인 할인율(=1/(1+0.1))을 적용시키면 현재 가치는 1만 원(=10,000/(1+0.1))이 된다. 할인을 통해 가계는 실질적인 소비와 저축을 결정할 수 있다. 강 센터장은 “생애주기가설에 따라 오랜 기간 발생하는 소비 등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할인율을 적용시켜 물가 등 시간에 따른 가치를 분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가계의 실질적인 소비와 저축은 생애주기가설에 따라 가계의 연령대별로 할인율을 다르게 적용하는 양상을 띤다. 이자율이 적용돼 미래에 어떤 상품의 가격이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모든 가계는 그 상품에 대한 소비를 줄이게 되지만 모든 가계가 이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생애주기가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청년기와 노년기에는 소득에 비해 소비가 많고 장년기에는 소비보다 소득이 크다. 이자율로 인해 상품의 가격이 달라져도 연령대별로 소득과 소비정도가 달라져 할인을 적용해 현재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이 상승한 상품에 대해 청년기와 노년기에는 소비를 줄이지만 장년기에는 소비를 줄이지 않는 선택도 존재한다.

생애주기가설을 국민연금에 적용하면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구하는 ‘소득대체율’이 산정된다.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에 대해 수령할 연금액을 나타내는 비율이다. 개인의 생애주기 동안 소득 변화를 고려해 은퇴 전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은퇴 이후 받을 평균 연금 소득이 책정된다. 소득대체율은 실질적으로 연금을 수령하는 비율을 구해 소비, 소득 계획을 얼마나 잘 실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문성만(전북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생애주기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은퇴 후 어느 정도의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저축하고 소득대체율에 따라 생활 유지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 국민연금은 개인과 사회의 자산배분을 변화시키며 ‘소득재분배’ 효과도 유발한다. 같은 세대 내에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서로 다른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국민연금 수령 시에는 소득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소득 격차가 축소되는 방식이 활용되기 때문에 세대 내 소득재분배가 이뤄진다. 국민연금의 세대 간 소득재분배는 현재의 근로자인 청장년층이 납부한 기금이 노년층의 연금으로 지급되며 나타난다. 허석균(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납입함에 따라 수령 금액과 연기금의 수령 시점이 달라지는 점에 따라 세대 내, 세대 간 소득재분배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모든 세대가 연관된 사회 안전망이기에 정부는 국민연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보장하려 한다. 개인의 저축 수준에만 의존할 경우 노인 빈곤 문제와 같은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관리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 문 교수는 “은퇴 후 노년기에 자기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경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므로 사회보장 차원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사회 불안정성을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대 간 합의가 선행 과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혁 추진계획」은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내려진 조치다. 지속 가능성은 국민연금의 재정을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고, 효과적으로 노후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3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의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소진 시점은 2055년으로 전망된다. 「제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와 비교했을 때 기금소진 시점이 2년 앞당겨진 수치다.

국민연금기금의 연평균 누적 수익률이 1988년부터 2023년까지 5.92%에 머무르는 문제가 있다. 적립된 기금 투자를 통해 적립기금 고갈 시점을 늦춰야 하나, 낮은 기금운용 수익률은 향후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에 대한 재정적 압박을 해소시키기 어렵다. 김정현(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여 기금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는 의견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도 존재한다. 플랫폼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는 임시 고용 등으로 인해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사람을 일컬으며,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따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국민연금은 소득이 있는 국민이 가입 대상이지만, 『국민연금법』 제92조에 따라 개인사업자는 국민연금 가입을 미룰 수 있다. 소득이 불안정한 불안정 노동자는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기 어려워 가입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플랫폼 노동자 건강 실태조사 모니터링을 위한 패널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1.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납부하는 보험료율과 미래에 지급받는 수령액의 비율인 소득대체율이 불균형하며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증가하는 문제 또한 지적된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율은 소득의 9%고, 소득대체율은 40%다. 개인이 얻는 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현재 매달 9만 원을 내고, 은퇴 후 매달 40만 원을 받는 것이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노년층이 증가하고 있으나, 수령금액에 비해 납입하는 보험료의 비율이 과하게 낮다는 의미다. 신승룡(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연구부) 연구위원은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는 것에 비해 큰 연금 급여를 약속받았기 때문에 젊은 층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의 낮은 수익률 문제는 적립된 기금운용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기구의 전문성 부족에 기인한다. 국민연금기금의 관리·운용 주체는 기금운용위원회가 담당하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공무원, 사용자, 노동자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자산배분을 전략적으로 계획하는데, 참여자는 비전문가로 구성된다. 기금운용 과정에서 전문가가 관리를 이루지만, 이마저도 전문가단체나 사용자, 근로자 등의 추천을 받아 위촉돼 이해관계에서 독립된 전문적인 투자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불안정 노동자의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는 기업 등에 속한 임금 근로자에 비해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납입 보험료를 지원받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임금 근로자의 경우 『국민연금법』 제88조에 따라 근로자와 기업이 절반씩 나눠 보험료를 납입하지만, 불안정 노동자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에 지원 대상이 아니다. 불안정한 고용과 소득 보장 상황임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 근로자에게만 보험료가 지원되는 것이다. 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일반 직장인과 달리 불안정 노동자는 국민연금 보험료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지기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불균형의 원인으로는 보험료율 증가에 대한 세대 간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이 제기된다. 현재 청년층인 미래세대가 노후에 지급받는 국민연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보험료 인상 등 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정세은(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보험료율 관련 논의가 노후의 보장성을 높인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 보험료율 인상에 따른 부당함을 주장하기에 논의의 장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원의 추천제가 아닌 기금운용 전문 인력 모집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된다. 과도한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으며 장기 투자를 통한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뛰어난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이때 자산배분을 이루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민간 투자 및 금융 전문가로 구성돼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에 인력 확보를 통해 효과적인 기금운용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불안정 노동자가 국민연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현행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보험료 지원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득 변동이 큰 불안정 노동자는 노후에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 어렵기에 노인 빈곤 문제에 처하며 사회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임금 근로자는 기업으로부터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받고 있기에 불안정 노동자 또한 정부의 지원이 요구된다. 윤 명예연구위원은 “불안정 노동자의 노후 소득과 사회 전체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보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보험료율 인상과 관련한 인식 개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도 역설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적립한 기금을 통해 보험금을 지급하는 적립식을 취한다. 보험료 지급에 따라 적립금이 소진되면, 미래세대가 지불한 보험료를 적립하지 않고 즉시 부모세대에게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된다.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시점은 현재의 미래세대, 청년층이 노년층이 됐을 때로 전망된다. 결국 현재의 청년층 또한 그들의 미래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현재의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보영(극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사회 전체의 합의로 이뤄지는 제도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세대 간 숙의가 요구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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