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툰 작가 오솔

<편집자주>
인스타툰. 인스타그램에서 짧고 간결하게 연재되는 웹툰이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작은 위로가 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스치듯 넘기는 수많은 그림 중에서도 어떤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에 머물기도 한다.
오솔(28) 작가는 인스타툰을 통해 불안에 흔들리는 청춘의 시간을 그려낸다. 그는 인스타툰 시리즈 ‘인생 최악의 시기 26~28세’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며 취업·진로·인간관계 같은 청년의 현실적인 고민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나아가 SNS를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닌 감정을 나누는 공감의 매개체로 확장시켰다. 이는 다른 청년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공감과 위로로 작용하기도 했다.
청춘. 인생의 봄이라 불리지만 막상 그 시기를 지나오고 있는 청춘은 끝없는 불안과 방황 속에서 길을 헤맨다. 이십춘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을 표현하고 풀어가는 방법을 통해 그 실마리를 엿보려 한다.
임지민 기자
현실 아래 탁해진 꿈
오솔 작가의 어린 시절 가장 큰 즐거움은 만화였다. 특히 만화 속 주인공이 자유롭게 모험을 떠나는 모습에 깊이 매료됐다. 당시 그는 화면 속 인물이 동료들과 함께 여정을 누비는 모습에 자신도 같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막연한 동경은 만화가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만화를 봤어요. 주인공이 디지몬이라는 몬스터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었어요. 자유롭게 모험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이 무척 부러웠고 저도 그들과 여정을 함께하고 싶었죠. 하지만 현실에선 몬스터와 여행을 할 수 없으니 제가 직접 여정을 떠나는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누구나 어릴 적 꿈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성적에 맞춰 환경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이후에도 전공 수업인 인테리어 분야에 흥미를 갖지 못했고, 졸업 시기에 맞춰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전공에 대한 애정도 부족했기에 직업 안정성과 보수 등 현실적인 조건에 맞춰 건설·건축업계로 방향을 전환했다.
“성적에 맞춰 진학하다 보니 전공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러던 중 취직에 성공한 학과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테리어 분야의 업무 강도나 임금 수준이 제가 바라는 조건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결국 타 분야를 고민하다가 건설·건축 분야를 택했죠. 전공자지만 취업 요건에 맞춰 공학이나 역학을 새롭게 공부하고 건축 기사·건설 안전 기사 자격증을 먼저 취득했어요.”
취업 준비 끝에 그는 대기업 건설업계에 입사했다. 그 안에서 그는 건축물의 금액을 산정하는 직무를 수행하며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성취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는 위계적이었고 자유로운 성향의 그와는 맞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적성에 맞는 일을 이른 시일 내에 찾고자 결심했다. 그렇게 그는 입사 후 1년, 27세의 나이로 회사를 떠났다.
“입사했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니 매일 반복되는 회사 업무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재직하던 회사는 회식이 잦고 조직 문화도 수직적이었어요. 업무도 맞지 않고 분위기에도 적응하지 못했죠. 이곳에서 몇십 년 근무할 생각을 하니 너무 막막했어요. 어차피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싶은 거라면 최대한 빠른 시기에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생각해서 퇴사를 결정했죠.”
‘이십춘기’를 풀어가다
퇴사와 동시에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진정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고 오래 품어왔던 만화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가 초창기에 그린 인스타툰은 소위 일컫는 ‘짤’이었다. 2030이 공감할 만한 그림에 글귀를 넣어 재치 있게 표현한 그림을 게시했다.
“퇴사 후 무언가에 온전히 몰두해 보자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1년 동안 제가 좋아하면서 업으로 삼을 일을 찾지 못하면 건설업에 돌아가려 했죠. 그때부터 제가 뭘 좋아했는지 생각하다 떠오른 게 만화예요. 취업 준비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품어온 생각들을 만화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죠. 당시에 ‘짤’을 그려내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짤에 생각을 담아 재치있게 표현하려 했어요.”
그러나 목표한 것과 달리 초기 인스타툰 성과는 미미했다. 인스타툰 작가는 넘쳐났고 눈에 띄는 성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퇴사 후 1년을 자신의 ‘인생 최악 시기’라 부른다. 졸업과 취업까지 수월하게 이어지며 ‘오르막길 인생’을 걸어왔지만 현실은 달랐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채 성과 없는 노력만 이어갔고 금전적·정신적 압박은 날로 그를 옥죄었다.
“이전까지는 수석 졸업에 자격증 합격, 대기업 취업까지 순탄했죠. 그런데 퇴사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는 얻은 건 없고 잃은 게 많았어요. 인스타툰이 관심을 받지 못하다 보니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모아 놓은 돈도 다 쓰고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떨어졌죠. 당시 오랜 기간 만나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고요. 제가 좋아서 그리기 시작한 인스타툰으로 현실적인 조건들이 나빠지면서 ‘인생 최악 시기’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인스타툰을 접고 취업을 준비하려 했으나, 우연히 ‘이십춘기’라는 신조어를 접하게 됐다. 이십춘기는 20대에 겪는 제2의 사춘기를 의미하며 진로·취업·인간관계 등의 문제에 직면해 혼란과 성장을 겪는 시기를 일컫는다. 당시 그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겪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인생 최악 시기 26~28세’ 인스타툰 시리즈를 연재하며 자신이 갖고 있던 내밀한 고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인생 최악 시기 26~28세’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 취업, 연애 등 현실적인 고민과 생각을 담은 작품이에요. 20대를 지나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고민이 있지만 이를 공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그 고민을 해소하고자 이 인스타툰을 시작했죠. 제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소한 부분까지도 꾸밈없이 그려내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가 취업에 성공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했거나 불합격한 친구를 보며 내심 안도했던 순간까지도 작품에 담았어요.”
그가 연재한 ‘인생 최악 시기 26~28세’는 청년의 공감대를 자극하며 큰 관심을 얻었다. 동시에 독자들은 댓글이나 개인 메시지 등의 온라인 창구를 통해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청년의 진솔한 이야기를 마주한 그는 그 시기를 함께 버텨낼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두 번째 인스타툰 시리즈가 ‘인생 최악 시기 26~29세’다. 전작이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했다면 해당 시리즈는 청년의 고민을 바탕으로 한 경험을 녹여내 함께 고민의 답을 찾아가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전 코너를 연재할 때 독자들이 장문의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자신의 진로를 향해 피나게 노력했지만 막상 목표에 도달한 뒤 적성과 맞지 않아 고민하는 등 현실적인 이야기였죠. 저는 26~29세가 아직 20대이면서 곧 30대에 접어드는, 망설임과 포기를 동시에 마주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다루며 독자들이 위로를 얻고 당장의 고민을 헤쳐나갈 용기를 찾길 바랐어요.”
그는 인스타툰 연재를 통해 느낀 바를 토대로 독자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고자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인스타그램 스토리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혹은 ‘대신 물어봄’ 등의 SNS 창구를 열어 적극 소통했다. 개인 메신저로 들어오는 고민 중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면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제적인 도움과 공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인 메신저로 오는 고민 중에 제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도 꽤 많아요. 하지만 이 사람의 고민을 다른 독자들이 알지도 모르잖아요. 공유하면 위로뿐 아니라 도움도 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를 올려서 독자들의 고민을 공개적으로 나눴어요. 비슷한 불안을 겪었던 다른 독자가 조언해주거나 경험이 없더라도 서로 위로하는 공간이 됐죠. 만화를 넘어 독자와 더 끈끈해질 수 있는, 더 나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청춘의 흔들림이 서로에게 번지다
오솔 작가에게 인스타툰은 무엇보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는 동시에 독자들의 고민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낸다. 개인의 서사와 사회적 공감이 교차하면서 인스타툰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선 소통의 장으로 확장된다. 그림을 통해 그는 말하고, 독자들은 그 언어에 반응하며 새로운 대화를 이어간다. 그의 작품은 개인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세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인스타툰은 저에게 단순히 그림을 올리는 공간이 아니에요. 저의 이야기를 담고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곳이죠. 그래서 작품을 올릴 때마다 서로 대화하듯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럴 때마다 제가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해요. 단순히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이기에 저한테 인스타툰은 직업이자 또 하나의 일기장 같은 공간이에요.”
나아가 그는 공감을 매개로 한 소통이야 말로 청년의 흔들림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불안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을 나누는 경험이 쌓일수록 이해의 폭은 넓어진다. 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깊이가 더해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 역시 확장된다는 의미다. 청춘의 시기는 흔들림과 불안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을 함께 견디며 서로를 지탱하는 순간, 불안은 고립된 상처가 아니라 서로를 이어 주는 감정의 끈이 된다.
“처음부터 자신의 불안에 대해 말하긴 힘들겠지만, 사람들이 서로 불안에 대해 들어주고 공감을 나누는 관대함을 지녔으면 좋겠어요. 그림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마주할 수 있다면 청춘의 흔들림도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라 생각해요. 결국 이해와 공감이 서로에게 전하는 위로가 되는 거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접할 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 작은 용기를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힘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