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노란봉투법, 상생의 법을 꿈꾸다 (한성대신문, 616호)

    • 입력 2025-11-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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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1-10 00:01

사회의 번영 뒤에는 이름 없는 노동이 있다. 그 이면에서 기업이 형성한 노동 구조는 노동자를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발의된 일명 ‘노란봉투법’이 내년 3월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노사의 입장을 고루 반영하고자 10년이 넘도록 논의됐다. 그러나 노사 간 입장 차는 여전히 첨예하고 사회적 논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무엇이 논란의 불씨를 지폈는지, 노란봉투법이 논란을 딛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 짚어본다.

노란봉투법은 보장하지 못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기업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2조와 제3조는 각각 노동조합(이하 노조)의 정의와 쟁의행위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 및 계약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우리나라의 노동 구조상 해당 법률로 노사 간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에 노란봉투법은 노사관계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복잡한 노사 간 계약 관계는 ‘하도급(下都給)’ 구조의 형성에서 비롯됐다. 하도급 구조는 원청이 맡은 업무를 하청에 다시 맡기는 방식이다. 기업이 모든 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주 형태로 운영하는 형태다. 기업은 상시근로자 수 규제 등 고용 기준이 강제되자 인력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하도급 방식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하도급 구조와 하청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상황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5년 고용형태 공시 결과 발표」에 따르면 상시 300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기업의 전체 근로자 중 16.3%가 하청 노동자 등 소속 외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 6명 중 1명은 하청 업체 인력이라는 의미다.

업무의 외주화는 자연스럽게 원·하청 노동자 간 격차로 이어졌다. 하도급 구조로 인해 근로조건 차이가 구조적으로 굳어진 형태다. 하청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원청 아래에서 일하지만 원청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는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 대한 고용책임을 지지 않으며 간극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더라도 임금 차이가 커지는 것 역시 동일한 이유다.

원청이 고용의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면서 노동자들의 안전 또한 위협받고 있다. 공사 기한을 앞당기거나 생산량을 늘리라는 원청의 압박 속에서 하청은 무리한 작업과 인력 축소를 강요받고, 그 결과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주영(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국정감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4년 산업재해 사망자 중 하청 노동자의 비율이 47.7%에 달해 2022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환경을 실질적으로 구성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원청이지만, 하청 노동자는 계약상의 상대가 하청이다. 하청 역시 원청의 지시와 압박 속에서 자율적인 노동환경 개선 여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노동조합법은 하청 노동자의 원청에 대한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동법 제2조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의 당사자인 기업과 그 임직원’으로 한정한 탓이다. 그 결과 하청 노동자는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없는 구조에 놓였다.

더불어 손해배상청구로 인해 노동자의 권리가 축소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쟁의행위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는 노동조합법 제3조에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금 청구 제한’의 범위가 폭넓게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쟁의행위를 한 노동자 개인에게 『민법』을 적용시켜 손해배상청구가 부여되기도 했다. 노란봉투법 입법 요구를 촉발시킨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이 일례다.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 노조가 파업하자 기업이 노동자 개인에게 약 1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후 노동자와 그 가족이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게 된 사건이다. 이정희(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실장은 “파업을 이유로 사용자가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제기하면서 노동자의 가정파괴와 자살 등이 잇따랐다”고 말했다.

이에 노란봉투법에는 ▲사용자의 범위확대 ▲노동쟁의 대상 확대 ▲쟁의행위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노동조합법 제2조의 ‘사용자’ 정의를 구체적으로 확대했다. 사용자 정의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더불어 노동쟁의의 대상을 확대해 파업의 정당성 범위가 넓어지도록 했다. 노동조합법 제3조에서는 노조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제한해 노동자가 기업의 거액 배상 압박으로부터 보호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사용자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기업 내에 여러 개의 노조가 설립될 수 있으며, 여러 노조 중 대표 한 명을 선출해 원청과 교섭하는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할 수 있다. 그러나 하청 노조의 경우 원청은 모든 근로조건을 직접 책임지지 않고,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서만 단체교섭권이 인정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노조가 일부의 단체교섭권만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지며 서로 다른 단체교섭권의 범위로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기업은 원청 산하의 모든 노조와 각기 만나 교섭을 진행하며 부담이 커진다는 주장이다. 이학주(노무사 이학주 사무소) 노무사는 “하청노조는 업체별로 단체교섭권의 범위가 달라 현행 교섭 단일화 절차로는 기업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별 개별 교섭이 진행되더라도 교섭 요구가 빈번하지 않아 기업 측 피해는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 또한 제기된다.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인정되더라도 대부분의 하청이 노조가 구성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3 전국노조 조직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하청이 속하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로 드러났다. 이병훈(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대부분의 하청 업체는 상황이 열악해 노조가 대기업처럼 강하게 권리 확대를 요구하는 등의 활동이 드물다”고 전했다.

노동쟁의 대상이 확대되며 ‘사업경영상의 결정’에도 노조가 개입할 수 있어 기업경쟁력에 대한 타격이 크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특히 구조조정이나 인력 운용 같은 민감한 경영상 판단이 쟁의행위로 지연될 경우, 빠른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시장 대응이나 투자·사업 전략 실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조찬영(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단순한 사업경영상 결정도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됐기 때문에 기업이 결정이나 판단을 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쟁의대상 확대 조항이 기업 경영에 심각한 제약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과도한 우려라는 반박도 제시된다. 해당 조항은 기업의 경영활동 전반을 구속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의 고용 및 근로조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쟁의대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견해다. 정영훈(부경대학교법학과) 교수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이 지금까지는 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해 왔다”고 말했다.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함으로써 기업과 노동자 간 불균형이 야기된다는 비판이 제시된다. 해당 조항이 노조의 불법파업 또는 부당한 단체행동에 대한 억제 수단을 약화시켜 기업이 피해를 방어할 수단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내기업 및 외국인투자기업 40.6%가 ‘국내 사업의 축소·철수·폐지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박영범(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해당 조항으로 인해 노조의 파업행위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져 노조 활동이 더 격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손해배상청구 제한으로 노동자가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제시된다. 노동자의 정당한 쟁의행위가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나며 단체행동권을 침해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22년 한화오션이 하청 노동자의 파업과 관련해 약 470억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노란봉투법이 발의된 이후 전격 취하한 바 있다. 이 정책실장은 “지금까지 사용자가 손해배상청구권을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해 온 것을 제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는 만큼 논의를 통한 제도 보완이 필수 과제로 꼽힌다. 신설·수정이 이뤄진 조항들의 진행 과정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조 변호사는 “손해배상책임 제한이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하게 제한해 위헌 시비가 예상되는 등 개정으로 추가된 조항 중 모순되거나 상충하는 법률 규정이 있다”며 “관련해서 시행령 등을 통해 구체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을 통해 노사관계 발전을 도모하고 실질적인 노동권 보장이 이뤄지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노사가 서로를 중요한 주체로 인식하고 화합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명예교수는 “기업은 노조를 협력할 수 있는 주체로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노조 역시 기업의 경영상 결정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이 처벌과 통제가 아닌 자체적인 규율에 따른 노동권 보장을 목표로 발전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지금의 법 기조는 처벌 위주로 이뤄져 있어 노동시장의 이원화와 노사 갈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규율에서 벗어나 노사관계의 자율성을 부여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규민(자유기업원) 연구원은 “정부는 노사 간 자율적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 경직된 노동 규제를 풀어주고, 다양한 계약 형태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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