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변호사가 된 게임 덕후, '덕업일치'를 이뤄내다 (한성대신문, 605호)

    • 입력 2024-11-18 00:01
    • |
    • 수정 2024-11-18 00:01

게임 전문 변호사 이철우

▲이철우 변호사 [사진 : 황서연 기자]

‘219억 원 상당의 캐시 지급’ 게임사의 아이템 확률 조작으로 80만 명의 게임 이용자에게 보상하기로 결정한 금액이다. 게임사가 상당한 금액을 게임 이용자들에게 보상하게 해준 조력자는 과연 누굴까.

게임 이용자의 곁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가 있다. 바로 이철우(35) 변호사다. 30년간 다양한 게임을 섭렵해온 그는 게임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게임과 법을 접목시켜 게임 전문 변호사가 됐다. 덕업일치가 아닐 수 없다. 덕업일치는 취미와 직업이 일치된다는 뜻의 용어다. 좋아하는 것을 미래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지만 덕업일치의 사례는 손꼽을 정도다. 취미가 아닌 직업이 되는 순간부터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게임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는 이 변호사가 말하는 게임이란 무엇일까. 그가 게임 전문 변호사를 목표로 하게 된 이유와 덕업일치를 이뤄낸 선배로서 조언을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게임 속 재판을 현실로

이 변호사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해왔다. 그가 게임에 처음 빠지게 된 것은 5살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생일 선물로 게임기를 받았고, 이때부터 게임에 몰입했다. 그에게 게임은 그동안 다른 매체에서는 느낄 수 없던 신선함을 선사했다.

“책이나 영화, 만화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관찰하는 느낌이잖아요. 하지만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제 선택에 따라 움직여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 너무나 짜릿했어요.”

유년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그는 게임을 통해 ‘변호사’라는 직업에 흥미를 갖게 됐다. 바로 자신이 직접 게임 속 변호사가 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법정에서 대결을 펼치는 ‘역전재판’이라는 게임 덕이다. 그는 게임 속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구해주고 어려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 또한 그는 ‘역전재판’을 통해 꿈꿨던 변호사의 모습을 현실에서도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게임의 재판에서 승소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을 실제 소송에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전재판을 하면서 사건의 단서를 찾고 결정적인 지적을 하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이 게임에는 서커스 단장, 무당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해요. 주인공이 곤경에 빠진 그들을 구해주며 다양한 경험을 겪기도 하죠. 역전재판을 통해 인생에 큰 위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여러 소송에서 이기고 게임 전문 변호사로서 많은 것을 이룬 덕에 어린 시절에 꿈꿨던 변호사의 모습을 실현한 것 같아요.”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게임을 통해 변호사를 꿈꾸게 된 이 변호사는 ▲이혼 ▲성범죄 ▲음주운전 등 많이 다뤄지는 사건을 담당하는 것을 넘어 그만의 분야를 찾고 싶어 했다. 기존에 다뤄지던 사건 같은 경우에는 많은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그가 생각해낸 분야가 바로 어릴 때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이었다. 게임 전문 변호사라는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은 그에게 걱정과 두려움보다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다줬다. 게임이라는 분야를 자신만의 전문분야로 개발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게임 관련 사건을 진행하면 다른 분야의 사건을 진행할 때보다 흥미로웠어요. 사건을 이해하고 의뢰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수월하기도 했고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업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게임 전문 변호사를 선택한 거죠. 그리고 최근에는 대형 로펌의 영향력이 커져감에 따라 변호사 시장도 레드오션이 됐기 때문에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제가 게임과 법이라는 두 항목을 접목시킨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겠다는 전략이었죠.”

로스쿨을 졸업한 뒤 이 변호사는 본격적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사무국 소속 법무담당관으로 들어가 다수의 『게임산업법』 위반 형사 사건을 맡았다. 이외에도 ▲P2E(Play to Earn) 게임 ▲소셜 카지노 ▲NFT가 배출되는 모바일 RPG 게임 ▲불법 개·변조 아케이드 게임 등 다양한 게임 관련 소송을 처리했다.

“스포츠 도박에 가까운 게임이나 복권을 긁고 코인을 지급하는 등의 사행성 게임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소송을 많이 맡았어요. 악질 게임을 잡기 위한 수문장 역할을 한 거죠. 게임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 게임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걸 막고 싶었어요.”

게임 전문 변호사로서 이 변호사는 ▲게임사 간 저작권 분쟁 ▲소비자단체소송 ▲게임사와 게임물관리위원회 간 등급 분류 관련 소송 등 다양한 사건을 맡았다. 최근 그는 게임 관련 법적 분쟁이 늘어남에 따라 소비자단체소송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단체소송은 협상력이 약한 소비자를 대신해 법으로 정한 단체가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업자 행위의 금지·중지를 법원에 구하는 소송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변호사는 게임 이용자의 권익 보호에 힘을 쏟기를 희망했다.

“2021년 발생한 메이플스토리 확률조작 사건이 전형적인 예시에요. 이 사건은 특정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게임사에서 의도적으로 조작해 게임 이용자들의 분노를 쏟아낸 사건이에요.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단체 민사소송이 진행되고 있어요. 제가 게임 이용자들의 대리인으로 참여해 소송을 담당하고 있죠. 워낙 많은 게임 이용자가 해당 소송에 관련돼 있어 책임을 느끼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서 보람차요. 게임 이용자가 소비자단체소송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점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나아가 게임사가 게임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갔으면 좋겠어요. 게임 이용자 중심의 게임이 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게임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게임 산업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 변호사는 지난 8일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21만 명의 청구인의 목소리를 담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게임산업법』 제32조 제2항 제3호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심판이었다. 이 조항은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해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의 제작 또는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해당 헌법소원심판은 게임 이용자와 평론가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해당 조항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 『대한민국헌법』의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커요. 게임에 대한 검열이 진행될 경우 사전에 어느 정도로 검열이 이뤄지는지에 대해 적게나마 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어 정당하지 않은 규제라는 거죠.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폭력 등이 들어간 콘텐츠의 검열이 심하지 않은데 유독 게임만 부정적인 인식으로 가득해요. 특히 기성세대는 게임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게임사 확률 조작을 규탄하는 이철우 변호사 [사진 제공 : 이철우]

이용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게임 관련 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넘어 이용자와 게임사 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게임 환경을 만들고 파편화돼 있는 게임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통합하기 위해 이 변호사는 지난 1월 ‘한국게임이용자협회’를 설립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는 게임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단체로, 2021년 이래 이어진 각종 게임에 대한 집단 시위와 간담회, 단체소송이 설립의 배경이 됐다. 각 정당에 게임 관련 정책 질의서를 보내는 등 게임 이용자의 시선을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2021년 메이플스토리 확률조작 사건을 포함한 여러 사건에서 게임 이용자 측을 대리하며 메이플스토리와 리니지, 우마무스메 등 다양한 게임의 이용자 대표를 만났어요. 지금까지는 일반인들끼리 단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전문가의 부재로 인해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어요. 그러나 저와 대표들끼리 모이며 협회 설립의 필요성을 느꼈고 한국게임이용자협회가 출범하게 됐어요.”

이 변호사는 게임 관련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게임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정책의 수혜자는 국민이며 게임 이용자들 또한 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제1회 게임이용자 소통 토론회’가 열린 이후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등급분류기준수립 업무에 게임 이용자가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 변호사는 정책 논의의 주체가 게임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면 질 좋은 정책을 수립할 수 없으므로 그들 또한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탁상공론 형식으로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정부부처 관계자들끼리 게임 관련 정책을 논의하는 걸 보고 부아가 치밀었어요. 심지어 게임 이용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임에도 왜 게임 이용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건지 의아했죠. 사실상 정책을 통해 혜택을 받는 이들은 게임 이용자인데 말이에요. 저도 계속해서 토론회 등의 자리에서 이러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이 변호사는 앞으로 소송뿐만 아니라 게임 관련 정책의 연구 등 다른 분야를 통해서도 게임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관련 소송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결국 게임 관련 소송이 없어지는 것이 게임 이용자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송에 대한 부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게임 이용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의 연구도 생각하고 있어요. 이전에 각 정당에 보낸 게임 관련 정책 질의서를 통해 각 정당이 어떤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관련 정책의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에요.”

덕업일치를 해내는 사람의 비결

게임이라는 취미와 변호사라는 직업을 접목시켜 덕업일치를 이뤄낸 이 변호사는 자신이 좋아한느 바를 이루기 위한 안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즐길 수는 있겠지만 잘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 미래에 실패할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덕업일치가 지나칠 경우 일과 휴식의 구분이 모호해진다고 그는 말했다.

“덕업일치를 꿈꾸기 전에 한번쯤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안정적인 기반이 갖춰져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그게 외국어든 자격증이든 탄탄한 기반을 다져놓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로스쿨이라는 기틀을 세운 뒤 게임 전문 변호사로서의 길을 간 것처럼 말이죠.”

박석희 기자

[email protected]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