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갈등 속 한국 정부가 줄타기 외교에 나섰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파병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한국이 파병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이란 정부의 경고성 발언이 이어지며 한국은 두 국가 사이에서 진퇴양난의 구도에 빠지고 말았다.
미국의 동맹국을 향한 파병 요구가 미·이란 간 교전 재개와 함께 다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28일 시작된 미·이란 전쟁 이후 3월부터 한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의 국가에 지속적으로 파병을 요구해 왔었다. 이후 6월 종전 양해각서가 체결되면서 파병 요구는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지난 7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되며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동맹국을 향한 파병 요구와 경제적·관세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윤상용(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미국과 추가로 갈등이 생기게 되면 그 부담이 경제·안보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했다.
파병 요구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변화한 동맹 정책이 자리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전통적 동맹 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호혜성과 실질적 기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설명이다. 동맹을 ‘비용 분담’의 틀로 재편하면서, 호르무즈 파병 요구 역시 한국의 기여도를 확인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있다. 김유철(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내부의 반대 여론으로 인해 직접적인 대규모 파병이 어려운 상황이라 동맹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의 파병 요구에 난색을 표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과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의 요구에 일률적으로 응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일례로 호주와 캐나다 등은 자국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의에서 이탈했다. 윤 교수는 “미국의 동맹국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에너지를 수송한다”며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예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존에는 한국 정부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3월부터 이어져 온 파병 요구에 한국 정부는 신중히 검토를 하겠다고 전달하며 사실상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부터 현지 조사를 나가거나 국회에 파병동의안 제출 검토 등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지효근(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신중했던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파병의 목적이 불분명했고 국내 방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미국의 요구와 이란의 경고 사이에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파병 검토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 문제,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 여러 현안으로 얽혀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안보와 통상 분야의 현안을 통해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의 축소·취소를 지시한 것 역시 한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교수는 “비대칭적인 한미 관계로 인해 미국의 압도적인 협상력이 한국 정부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파병 검토에는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한반도 안보 현안이 한국을 배제한 채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SNS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등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우려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정부가 동맹 관리와 국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도 군사적 역할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대미 관계뿐만 아니라 이란과의 외교적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윤 교수는 “호르무즈는 긴장도가 높은 지역이라 작은 마찰도 전투로 번질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이란과 적대적 관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한국의 파병 결정이 국제사회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만약 한국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 이를 근거로 미국이 다른 동맹국들에도 파병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한국은 이란과 적대관계에 있지는 않다”며 “이란의 경고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도 안되지만 우리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국익에 근거한 독자적 판단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수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