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빠른 시대에 느린 진심을 전하다 (한성대신문, 625호)

    • 입력 2026-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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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09-21 00:00

온기우편함 조현식 대표

▲온기우편함과 조현식 대표 [사진 : 김가현 기자]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다시 일어선다고 생각해요"

•2019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졸업

•2017~2021 온기우편함 대표

•2021~ 사단법인 온기 대표

•2024~ 강남구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

•2025~ 브라이언임팩트재단 펠로우

•2025~ 서초구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

•2025 국제청년포럼 IFWY 조직위원



<편집자주>

고립·은둔청년 50만 명 시대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일조차 쉽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에는 망설여진다. 이렇게 기댈 곳 없는 사람들에게 편지로서 안식처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단법인 ‘온기’의 조현식(35) 대표다.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온기우편함을 만들어온 그는 외로움과 고립을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현재 온기우편함은 전국 113곳에 설치돼 사람들의 고민을 듣는 중이며, 약 1천 명의 온기우체부가 답장을 전달하고 있다. 외로움 속에 놓인 이들의 편지에 답장을 건네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나가는 조 대표가 꿈꾸는 사회를 들여다보자.

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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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의 필요성을 느끼다

어린 시절 조 대표는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 조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부모로부터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은 마음 한편에 남았다.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조 대표는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해 직접 사랑을 전하고자 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더 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을 받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제가 먼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돼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면 저도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던 것 같아요.”

조 대표가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여느 청년과 다르지 않게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한양대학교 국제학부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직장 취직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삶이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는 의문이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도 다른 학생들처럼 취업을 잘해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직장이 과연 나에게도 좋은 직장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떨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막연하게 이어지던 고민은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구체적인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작품 속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편지에 적어 보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 편지에 답장을 보낸다. 책을 읽고 난 뒤 조 대표는 고민을 오래 이어가지 않았다. 책 속의 공간을 현실에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으면서 현실에도 이런 수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공간이요. 그래서 책을 읽고 바로 목공소에 가서 우편함을 만들었어요.”



▲온기우편함 팝업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들 [사진 제공 : 조현식 대표]

따뜻한 변화의 시작

그렇게 만들어진 첫 온기우편함은 서울 삼청동 돌담길에 설치됐다. 당시 조 대표에게 온기우편함은 사업이라기보다 작은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온라인으로 10명의 온기우체부를 모집하고 카페에 모여 편지를 읽으며 답장을 작성했다. 그러나 일주일 에 수십 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한 일이 점차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활동으로 변했다. 조 대표는 온기우편함이 단순한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소소한 프로젝트로 시작했어요. 평소 삼청동을 걸으며 느꼈던 여유로운 분위기가 온기우편함의 취지와 잘 맞아 무작정 설치해 봤죠. 그런데 생각보다 편지가 너무 많이 오는 거예요. 일주일에 약 50통 정도씩 오다 보니까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졌어요.”

예상치 못하게 많은 편지의 수가 온기우편함의 운영 방향을 바꿨다. 이에 조 대표는 활동을 지속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이후 온기우편함은 기업과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력하며 활동 범위를 확장시켰다.

“온기우편함은 그동안 업무 협약을 통해 설치 장소를 꾸준히 확대해 왔어요. 현재까지 약 97개 기관과 협력하고 있으며, CGV를 비롯해 서울추모공원, 충남도청 등 다양한 기업과 기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하고 있어요. 각 지역에서 마음 건강과 마음 돌봄에 대한 필요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이를 일상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온기우편함을 찾는 기관도 늘고 있죠.”

온기우편함은 디지털 시대에도 손편지 방식을 고수한다. 한 통의 답장을 손편지로 작성하는 데는 평균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소요된다. 빠르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손편지에 들어가는 시간이 오히려 진심을 전달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른 글씨체와 표현, 때로는 오탈자까지도 한 사람이 오롯히 자신의 시간을 들여 썼다는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AI가 글을 굉장히 잘 써주고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만, 저는 사람의 글에는 그 사람만의 고유함과 불완전함이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오탈자가 있을 수도 있고 표현이 서툴 수도 있지만 그런 미완성들이 오히려 사람의 진심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어요.”

▲본지와 인터뷰 중인 조현식 대표 [사진 : 김가현 기자]

누구나 위로 받을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온기우편함을 운영해 온 조 대표는 청년들의 고민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진로나 취업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무기력과 관계 단절로 인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가 무기력으로 이어지며 결국 시도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청년들의 편지를 보면 기회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평소와 다른 도전에도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점점 무기력해지고 주변 사람들과도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 대표는 온기우편함이 병원과 같은 전문기관 이전에 마음을 꺼내놓는 ‘첫 번째 안전망’ 이 되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접수되는 편지 가운데에는 심각한 우울감을 호소하거나 자살을 암시하는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편지는 답장을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 등 전문기관으로 연결한다. 마음의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도움으로 이어주고 있다.

“온기우편함은 치료보다는 예방과 조기 발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이야기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찾아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마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회적인 공간이 필요해요.”

조 대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거창한 제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누군가로 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다시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한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것부터 서로의 안전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건넨 작은 온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때, 개인의 외로움은 혼자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닌 함께 돌볼 수 있는 마음이 된다.

“한 사람에게 손편지로 위로를 전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지만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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