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한성문학상 - 소설 부문 당선작> 하수구에 애인이 흘러들어갔다

    • 입력 2020-12-0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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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12-07 12:11
[삽화 | 강동희(ICT 3)]

하수구에 애인이 흘러들어갔다

김태은

애인이 하수구에 떠내려갔다.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들어갔다.

아, 왠지 오늘따라 운수가 좋았었다. 출근길에 만 원짜리를 줍질 않나, 아침 지옥철에 타니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앞자리가 비질 않나, 내친김에 사원증을 찍기 전 편의점에서 즉석복권을 긁었고 이만 원이 됐다. 우연이 촘촘히 겹쳐 되도않는 행복에 겨웠었는지, 공돈을 써버리겠다며 배스 밤을 사 온 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도 오랜만에 좋은 향기 좀 맡으라며 냉장고에서 애인을 따라 꺼내놓은 건 본인이었으니까.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변명이 아니라 진짜 실수였는데, 얼룩덜룩한 욕조에서 나오다가 덜 씻긴 비누기에 오른발이 미끄러지고 만 것이다. 순식간에 조명등이 눈앞을 홱 지나갔고, 닿지 않는 손을 허공에 허둥지둥 짚는 중 단말마를 지를 새도 없이 세면대에 올려놓은 애인이 넘어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귓가를 찢어놓아 고개를 돌리려 했는데 천장이 보였고, 욕조 옆구리에 부닥친 머리통이 알싸하게 아팠다. 머리라도 깨지는 소리였으면 좀 나았을 텐데, 직감적으로 지현은 그 소리를 눈치채고 말았다.

고통에 신음하며 굳어있는 그 사이에 애인은 까만 구멍으로 흘러내려갔다. 손으로 그러쥘 수 있었던 양은 고작 손가락에 몇 방울 남은 것 정도였다. 먹이를 포식한 육식동물처럼 하수구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아직 저녁 인사도 못 했는데. 낭패감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혹이 났는지 띵한 머리에서 배수구 구멍 사이사이의 머리카락을 치운 지 오래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흘러내려버린 애인과 엉겨있는 머리카락 탓에 눈물이 질질 났다.

쎄한 기운이 엄습했다. 그게 무언지 몹시 잘 알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가면 좋아. 익숙한 마음이 바다처럼 차오른다.

지현은 익사하는 물고기처럼 과거 어딘가에 의식을 넣어두고는 잠시 눈을 감는다. 손바닥에 유리 조각이 박힌 건 금방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지현은 알몸으로 유리조각 위에 엎어져 소리 내 엉엉 울었다.

그게 고작 한 시간 전, 10월 31일의 이지현이 샐리에서 김첨지로 전락한 전말이다.

인생 최초의 기억부터 당장 어저께까지, 마르지 않는 바다나 물바람 일으키며 쏟아지는 폭포는 지현에게 있어 그림이나 사진 속에만 있는 존재였다.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늘상 그렇게 말했을 때 예시로 들어지는 것들, 계곡에 발을 담그는 일도, 호수로 낚시를 가는 일도, 그 속에 손가락을 뻗어 담갔을 때의 물 비린내도 지현은 모르고, 하다못해 민물과 바닷물의 차이도 마음으로는 정리하지 못했다. 바다는 짜, 그리고 민물에는 가재가 살아. 어쩌면 새우도 살 수도 있고. 어항 안의 금붕어가 바다를 모르듯이 지현 또한 물, 많은 물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건 그다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지현에게, 바다소리가 집 밖에서 바로 들리는 곳에서 자랐다는 그는 처음으로 지현이 만난 물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분기마다, 계절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는 바다에 다녀오는 사람이며, 피부에서 뭍의 냄새보다 물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피부호흡을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꼭 스물하나의 여름, 우연히 같은 교양을 듣게 된, 옅은 물빛 가디건 끝자락을 팔락이며 여기 앉아도 되느냐 묻던, 조금 앳된 사람.

“욕조보다 많은 물은 본 적이 없어.”

“진짜?”

정말 놀랍다는 듯 그가 커다란 눈을 끔뻑였다. 원체 그런 일이 없는 목소리가 높게 튀어 올랐다.

“궁금한 적 없어?”

“딱히 막 그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머쓱하게 머리카락을 배배 꼬아대며 지현이 대답했다. 탈색과 염색을 몇 번 거쳐 간 단발머리가 푸석푸석하게 하늘로 뻗쳐 있었다. 뿌리 근처가 까맣게 올라와 있다. 나는 물 엄청 좋아하는데. 왜, 수영을 좋아해서? 아니 그냥 물이 좋아서. 왜? 몰라, 전생에 고래 같은 거였나? 너 하는 거 보면 고래는 아니고 멸치쯤일 것 같아. 놀리려고 했던 말에도 그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멸치도 나쁘진 않아. 아몬드랑 간장이랑 해서 볶으면 맛있잖아. 얼씨구. 헛소리에도 능청을 피우는 통에 지현이 흑갈빛 나는 부드러운 머리통을 째렸다. 눈총이 따가웠던 듯 그가 지현과 시선을 맞추었다. 지현아,

“바다 보러 갈래?”

“네가 보고 싶은 거구나?”

“것도 그런데,”

“근데?”

“지구의 반 이상이 물이잖아.”

그럼, 그걸 못 보고 사는 건 인생을 반 정도 낭비하는 거 아닐까? 무슨 궤변이야. 어이가 없어서 지현은 무릎을 모아 그 위로 턱을 괴어버린다. 표정은 보지 않아도 뚱하게 굳어있을 것이다. 동그랗게 옹그린 걸 보면 그만 말을 걸만도 한데, 이거 보라며 그가 직접 찍은 바다 사진을 들이미는 통에 기분이 좀 상한 것도 같았다. 뒷주머니에 넣어놓은 핸드폰에서 진동이 세 번쯤 울린 걸 느꼈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곧장 집으로 오라는 문자였다. 눈만 굴려 바라본 손바닥만 한 화면 속 바다는 따스한 회빛인데 홀로 서 있는 그가 유난히 추워 보였다. 목도리를 칭칭 매어놓은 뒷모습인데도 그랬다.

창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괜히 지현의 코가 발갛게 얼어들어갔다. 지현의 앞에 쪼그려 앉더니 그가 목소리를 내어 이름을 불렀다. 당황이 덕지덕지 묻어 목소리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울어?”

“아니.”

눈가에 손가락이 닿아 있다. 그가 살짝 힘을 주어 지현의 눈물샘 근처를 꾹꾹 누르듯 했다. 눈물이 이렇게 누르면 나오는 거면 좋을 텐데, 그치. 지현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속삭이듯 되뇌인다.

“너도 가만 보면 되게 이상해.”

“내가?”

“응.”

어디가 그렇게 이상한데? 스무 살 언저리 먹었는데 위로하는 법도 서툴기 그지없다는 거? 지현은 웃음 섞인 한숨을 뱉으며 무릎을 내렸다. 인간사가 다들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지현은 유별나게 타인에게서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찾는 게 훨씬 빠르다고 느끼곤 했다. 스스로 정의 내리길 평균점을 많이 벗어난 사람이었던 탓이었다. 바라던 바는 아니고, 타고나길 그렇게 자랐다. 그러나 그 앞에서는 그냥, 둘 다 이상한 사람이라 그걸로 족한 것 같았다.

지현은 그의 모친이 마흔이 넘어 겨우 가진 외동딸인데, 다르게 말해보면 세 번의 유산과 한 번의 사고를 겪고 아이를 네 번 잃은 모친에게 찾아온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모친은 십여 년을 아이가 있을 팔자가 아니려니 하며 매일매일을 눈물과 후회 바람으로 살았는데, 덜컥 지현이 찾아들었다고 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가끔 지현이 제 고막 언저리에는 귀한 딸, 눈썹 언저리에는 얼음조각, 그렇게 글자라도 박혀있는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미지근한 무릎에 머리를 맡기고 머리를 골라주는 손길 속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지현의 태몽은 몹시 기묘했다. 추워 죽겠다며 벌벌 떠는 아이 목소리가 들려 모친이 복숭아 나무 밭에 온통 불을 질렀는데, 몽땅 시꺼멓게 타버린 밭에서 유일하게 타지 않은 빨간 복숭아가 있어 그걸 한입에 삼켰단다. 그러자 달큰하게 향내 풍기던 복숭아가 삽시간에 녹더니 봄볕처럼 따스하게 몸에 기운이 돌아 잠을 깼다고.

예사로운 꿈이 아니구나 싶어, 조심스러운 시기가 지났다고 들은 날 모친은 당장 용한 점집에 사주를 보러 갔다. 별소리도 하질 않았는데 무당이 말하길, 들어앉은 아이 팔자가 불과 같아서 물과 만나면 사그라든다고, 평생 물하고는 수절하며 살라고 했다. 한두 군데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열일곱 곳에서 그러니 별수 없게, 어쩔 수 없게, 지현은 물을 모르게 자랐다. 그리 강인하던 모친도 많이 불안했구나, 그리 인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부터 이미 당연시하고 있었다. 나약한 인간이 기묘한 것에 곧잘 홀리곤 하듯이, 응당 의지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만이 있었나, 떠올려봤으나 기억이 엉겨버린 듯 생각나지 않는다. 숨을 고르며 지현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에는 티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졌다.

지현은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그, 울지 않는 척을 하는 나와 나에게 우느냐고 묻는 그, 피어싱이 아홉 개나 박혀있는 지현의 귀와 달리 흉터 하나 없이 깔끔한 귀,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의 귀 끝이 살짝 불그스름하게 끝이 물들어 있는 탓일 수도 있다, 지현이 뱉지 못한 것들을 대신 내뱉기라도 할 것 같은 색이다. 속눈썹이 망울망울 젖어 있었다. 손가락을 더듬어 지현은 그의 귀 끝을 슬금 찔러본다. 여기에 피어싱 하면 예쁘겠다. 그러자 말갛게 그가 웃었다. 어깻죽지를 넘어가는 생머리가 창 너머로 들어온 바람에 살랑거렸다. 샴푸 냄새가 시리게 났다.

“네가 그게 좋으면 뚫을게.”

“내가 하란다고 무조건 하면 어떡해.”

“나 원래 줏대가 없잖아.”

후드집업 소매 안에 넣어놓은 손안으로 그가 꼬물거리며 손깍지를 끼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도드라진, 유별나게 서늘한 손이었다. 고개를 다시 들면 그가 무슨 표정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지현은 목 안이 간지러운 것 같아 들어 바라보지 못했다. 목소리가 참 좋구나, 자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동그란 눈이나 봉숭아 빛 도는 입술 말고, 숨소리 하나하나가 가슴을 허하게 해서 발밑이 뚫렸나 곁눈질로 확인하는 게 지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이제 와 상기해보면 그는 가끔 팔뚝 근처며 청바지 아래 드러난 발목에 푸른, 혹은 노란 멍을 달고 나타났다. 오래되거나 오래되지 않은 상처일 것이었다. 어딜 그렇게 부딪혔냐 물으면 아니라며 물에 들어간 지 너무 오래돼서 그래. 하고 묘한 소리를 했다. 너 한 번씩 그렇게 모를 소리 하더라. 그런가, 그가 천천히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반짝거리는 피어싱이 부어오른 귀에 박혀있는 게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두 번째 여름방학이 끝난 날 그는 페트병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지현아, 이거.”

“이게 뭔데?”

“바다.”

“뭐?”

“담아왔어.”

욕조보다 더 많이 담아올 수는 없긴 했는데. 이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마음대로 하면 되지. 바다 냄새도 모르고 사는 건 슬프다니까. 내가 얘기했잖아. 그러고 보면 몇 달 전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던 피부가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지현은 페트병을 열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싱크대에 모조리 쏟아버렸다. 오백 밀리리터의 바다는 그렇게 하수 그로 흘러내려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다가 담겨 있었던 병안에서 아주 비릿하고 찝찌름한 내음이 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차마 병은 버리지 못했다.

제 나름의 바다를 가지고 와 선물하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그 이후 하루에도 여러 번, 말버릇처럼 그는 바다에 가자고 권해왔다. 한 번만 같이 가달라는 애원일 때도 있었고 우스갯소리처럼 건네는 말일 때도 있었다. 자기는 패딩을 입고도 수영을 할 수 있다고, 그 웃긴 꼴을 보고 싶지는 않느냐고 호소했다. 웃기기야 그의 눈에만 웃겼을 것이다. 지현은 이미 그전부터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고, 아무리 나쁘게 포장하려 해도 그의 말 끝에 곱게 리본을 묶어놓고 말았다. 불같은 팔자라더니 마음에 불티가 한번 붙으니 좀처럼 꺼질 기미를 보이지를 않았다. 사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예뻐 보였을 것이다.

“겨울 바다만 걸어도 좋은데.”

“언제는 여름에 가고 싶다며?”

“너랑 가면 다 좋을 것 같아.”

내가 자란 곳을 알려주고 싶은 거라서. 비릿한 냄새가 나고 한없이 파란 곳. 그가 말하는 바다는 들을 때 사람을 홀리는 구석이 있었다. 물에 비쳐서 노랗고 파랗고 초록빛 나는 것들이 투영되면 이렇게 자국으로 남는 거야. 어느 날은 또 멍 자국을 들어 그렇게 말할 때도 있었다. 이건 내가 물에서 난 흔적이라고, 그렇게 얘기했었다. 마지막은 물론 장난기 있는 웃음으로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진지하진 않았다. 가을 끝자락의 어디, 낙엽 냄새가 나는 날에 근처 공원이며 골목을 걸으며 하는 흔한 수다 중 하나였다.

12월 31일의 고백은 지현 본인답지 않게 몹시 감정적으로 이루어졌다. 함께 사람이 적은 거리를 걷다가, 여자끼리 손잡는 게 뭐 대수냐고 그가 말했고 지현은 대수여서, 그게 너무 억울해서 울어버렸다. 새해를 같이 맞고 싶어서 인생 처음 엄마를 바람맞히고 나왔어. 넌 뭐든지 전부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 아무것도 몰라. 내가 널 좋아하는 걸 알기는 해? 됐어, 이제 말 걸지 마.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지현이 뒤로 돌아 걸으려는데 손가락 끝이 다시 맞닿았다. 곧 익숙하게 깍지가 끼워졌다. 약하고 여린 힘이 지현을 잡아 이끌어 당겼다.

“내가 좋아?”

“…….”

“어디로 가 버려도 좋아할 거야?”

“…….”

갈급한 목소리는 몹시 새롭게 들렸다. 답지 않게 굴고 있어서 지현은 그게 어색했다. 마음에 대한 응대가 아니어서 그런 탓도 있었다. 그가 입술을 오물대며 대답을 종용했다. 지현아, 널 좋아해, 왜냐고 물으면 잘 몰라. 그래도 그냥 그럴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을 재단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안 되나 봐.

누군가는 사랑을 인력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는 했는데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았다. 외부에서 들어온 행성은 지현으로는 어쩔 도리도 없이, 중력을 행사하고 만다. 그걸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마음에 그를 들여놓은 것도 지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도 그라는 우주에 지현이라는 행성을 들여놓고 있었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그날부로 지현은 그와 연인이 되었다.

지현의 싱글 침대 위로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누워서, 천장에 붙은 야광 스티커의 수를 세었었다. 있지, 지현아.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잖아. 먼지에서 태어난 거니까 끝에는 다시 돌아가는 거라고, 근데 사실 나는 바다로 돌아가면 좋겠어. 너랑 내가 흙이 되면 너무 멀어서…못 만날 수도 있잖아. 못 움직이니까.

천장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지현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눈을 감고 입만 빠끔거리고 있다. 그렇지만 바다로 돌아가면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한 번은 만날 수 있겠지. 나는 그래서 너를 바다로 데려가고 싶은지도 몰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사랑한다는 말이야.”

바닷물이 담겼던 페트병은 냉장고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한참이 지나 이제 그가 알려준 바다 내음은 대부분 사라졌다. 지현이 정의 내리기를, 바다는 아마 그와 같은 것일 것이었다. 미지의 무언가, 나를 이끌리듯 만드는 것, 그래서 나를 여상스럽게 만드는 것. 페트병의 내용물을 버린 것이 갑작스럽게 후회되도록 만드는, 흐르는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함께 보고 싶다고. 그래서 혼자 찍혀 있던 그 회비 바다 앞에서 목도리를 나눠 두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한달음에 지현은 그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밀물처럼 마음이 밀려들어서 호흡이 가빠왔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지현에게 바다에 가자고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단어는 연인 사이의 어떤 불문율이 된 것처럼 되어 있었다. 이제 지현은 페트병 안의 바다를 한 번이라도 손으로 만져볼 것을 생각하는데 그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끔 혼자 어딘가에 다녀와서, 몸 구석구석에 익숙한 멍 자국을 달고 돌아올 뿐이었다. 물으면 또 대답 없이 웃기만 한다.

“지현아.”

“왜 이렇게 다쳐오는 거야.”

“사실 내가 사람이 아니면 어떡할래?”

“속상해 죽겠어.”

“바다에서 왔어, 나…”

“…”

그럼 네가 뭐 인어라도 된다는 말이냐고 지현이 쏘아붙인다. 나는 네가 이렇게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는 이유도, 네 주변 환경과 옛날 얘기도 모르고, 묻지 않으니까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그는 이번에는 울 것 같이 눈을 찌푸린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기회의 신은 앞머리가 수북하고 뒷머리가 없는 우스꽝스러운 형태란다. 왔을 때에는 잡아챌 수 있지만 놓치면 영영 뒷모습만 바라보아야 한다. 그 순간부터는 아마 기회를 놓친 이가 가장 우스운 모습이 될 것이다. 그래, 맞다. 지현은 아직도 그에게 왜 바다에 그리 집착하느냐 묻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사랑해서 비참해진다. 좋아해서 무서워진다. 전전긍긍하게 된다. 일상이 엉망진창으로 변한다. 모친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지현은 그가 없어질까 매일매일이 무서워졌다. 그가 그리는 미래에 훗날은 없고 당장 내일만 있는 것 같아서…어쩌면 그는 말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랑받음을 확신하는데 동시에 의심했다. 발목이라도 붙잡고 애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지부레하게 내리는 비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마철이 왔다는 뜻이었다. 베란다 창틀에 기대어 지현은 허파 그득하게 비 내음을 채워 넣었다. 그에게서도 가끔 비 냄새가 났다는 생각을 하면서,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그가 깨기를 기다렸다. 물 냄새가 났던 그는 요즈음 지현과 같은 냄새가 난다. 같은 사람이 된 것처럼, 이제는 공통점을 찾기 더 쉬워 보일 것 같이. 8층까지 피어오른 흙과 풀냄새가 섞여서 신선한 냄새가 올라왔다.

어찌 됐든, 지현은 손을 놓지 않으면 그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깊게 깍지를 끼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여겼다. 지금 곁에 있다는 소속감을 주면 그는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게 명확했다. 지현은 모친과 그런 식으로 살았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으면 그녀는 지현의 이름을 불러 호소했고, 그럼 지현은 다시금 모친 옆에 앉아 곁을 내어주었다. 잠결에 지현이 아닌 다른, 일찍이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면서 지현은 모친의 등께를 감싸 안고 도닥였었다. 서로의 비참함에 취해서 상처를 핥다 보면 언젠가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서 보면 고슴도치 둘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양새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현은 꽃샘추위가 끝나갈 무렵 그를 집 안에 가두어 놓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그는 사람과의 교우가 적고 지현과 유일하게 특이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제 애원하는 쪽은 지현이 아니었고, 여전히 둘은 사랑했다.

관계는 비정상적일지라도 그래도 괜찮게 흘렀다. 체온은 익숙해졌고 몸은 잘 맞아떨어졌다. 그의 어색한 말투에 핀잔을 걸고 웃는 것도 부드러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헤집듯 하는 것도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하고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들은, 정확히 집어 말해 지현은 현실에서 유리된 것처럼 굴었다. 세상이 지현과 그를 보지 못하게 꽁꽁 숨으면, 그들 사이의 작은 문제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괜찮은 해결책이라 여겼다. 그를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 멍 자국이 생길 일도 없다. 거짓말을 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새장 속의 새처럼 그를 가두어 놓으면, 그러면… 그를 위해 가져다 놓은 해양 서적과 다큐멘터리가 나날이 쌓여 갔다. 농담조로 그가 렌탈샵을 열어도 되겠다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초반에는 그도 힘들어했으나 다 이해한다는 듯 괜찮아져서, 지현은 행복했다. 좋았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를 같이 갈까.’

그래서 어느 날,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서 왔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그와 바다에 가서 겨울 바다를 걷자. 어느새 불문율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냥 오랜만에 그가 맑게 웃는 게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을 때,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시선을 가만두질 못했다. 어딜 가느냐고. 자꾸만 물었다. 지현이 네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바다를 간다고 몇 번이나 일러주었는데 믿지 못하겠다는 듯 굴었다. 몸을 붙잡고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가쁜 숨을 쉬었다.

평일에 휴가를 낸 터라 버스는 한산했다. 승객은 손가락을 꼽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그는 유리창에 손가락을 뻗어 어딘가를 그러쥐듯 잡았다가 놓기를 계속했다. 아, 지현이 탄성 비슷한 것을 낸다. 멀리 끝에, 시퍼렇게 입을 벌린 것이 보였다. 그가 담아왔던 바다가 원래 그런 것이던가, 그런 종류던가. 갑작스레 덜컥 두려워졌다. 그러나 뒤로 돌 수는 없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탄 뒤 정류장에서 내려서도, 그가 그렇게 바라던 겨울바다의 모래사장에 도착하기까지는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근처까지 와서야 지현은 아, 이게 바다 비린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고작 그가 담아온 페트병으로는 정말 알 수 없는 거였구나. 볼을 벨 것처럼 찬 바람이 자꾸만 불고 있었다. 쥐 죽은 것처럼 고요한 사이에 바람소리와 파도 소리만이 채워져 있다. 아, 파도는 저런 색이구나. 하얗게 밀려오고 부서지는 통에 시린 냄새가 코로 밀려들었다. 바닥에 깔린 자갈돌은 어느새 모래로 변하고 버석버석하게 신발을 파묻고 있다.

그는 천천히 옆을 향해 걸었다. 가끔 미역 따위나 조가비 깨진 껍질이 파도에 밀려 휩쓸려오면 잠깐 웃기도 했다. 지현은 왜 그가 바다를 함께 걷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아진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채워들어와도 괜찮았다. 붉게 물든 코 끝도 아리지 않았다. 그가 지현의 손을 잡아 이끌어 파도 끝에 놓았다. 쪼그려 앉은 채 밀려오는 물이 찼다.

“어때?”

“뭐가…?”

“바다.”

“오길 잘 했어.”

그래. 그치? 하고 그가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바다는 이런 거니까 잊지 마 지현아, 그리고…

그는 신발이 젖는 건 상관없다는 듯이 몸을 파도로 옮겼다. 지현이 웃옷 끝자락을 붙잡자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정말 잠시일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느새 지현의 발은 발목 근처까지, 그의 다리는 종아리 근처까지 젖어 있다. 파도는 지현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데에 급급한데, 그는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지현은 그에게서 바다를 빼앗을 수 있었지만 이제 와 막을 권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제야 올 자리를 찾았다는 듯이 그가 몸을 숙였다. 귀가 바람 때문에 웅웅거렸다. 불쾌한 기분인가? 지현은 알고 있다. 그건 정확히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어디까지 가려고!”

“……”

“…야!”

“……”

그는 이제 상반신이 반쯤 잠겨 있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더니 후후, 하고 입안으로 소리 내 웃은 것 같았다. 지현아, 내가 바다에서 왔댔잖아. 기억해?

“…”

“거짓말 아니었어.”

넌 안 믿는 것 같기는 했는데, 이제는 알아도 될 것 같아. 날 데려와 줬잖아. 큰 소리로 그가 말하고는 바닷 속으로 몸을 디밀었다. 뒤로 엎어졌다고 말하는 편이 나았던가, 지현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거품 하나도 보이지 않게 풍덩. 그렇게 들어가 버렸다.

지현이 온몸이 젖은 채로 바다를 헤집어도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지현은 핸드폰을 쥐고 구조대에 연락하려고 했다. 손이 떨려서 버튼을 누르기가 벅찼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하며 과호흡에 기침하는데, 저 멀리 끝에서 검은 머리가 불쑥 나타나 헤엄쳐왔다. 문득, 지느러미를 본 것 같았다.

“놀랐지.”

“…뭐야?”

“이제 갈 때가 됐어.”

“어딜 가는데…?”

그는 웃음으로 응대했다. 대답하기에는 어려운 질문이라는 듯, 그저 손가락으로 저 멀리 지평선 근처를 가리켰다. 푸른빛이 도는 지느러미는 꼭, 처음 봤을 때의 그 물빛 가디건을 닮아 있다. 내가 어딜 가더라도 나를 좋아해 줄 거지. 왜 정말 영영 가버릴 것처럼 얘기해? 미안해. 왜 미안하다고 얘기해?

그의 물젖은 목소리는, 아마 진짜 목소리일 것은 알고 있던 목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갈라지지 않은 청량한 목소리는 웃음기와 피곤이 잔뜩 배어 있었다. 장난치듯 꼬리지느러미로, 그가 지현의 손끝에 물을 튀겼다.

“다음에 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

“지현아, 난 네 앞에서 거짓말 못해.”

“…거짓말하지 마.”

“아니, 정말. 한 번도 한 적 없어.”

목이 메고 시야가 흐렸다. 눈물이 젖은 걸 알면서도 그는 손을 뻗지 않는다. 아마 닿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느러미로는 설 수 없으니까. 눈을 꾹꾹 눌러 눈물을 짜 줄 수는 정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그에게도 지현에게도 그랬다.

그가 지현에게 몸을 숙여달라고 나지막히 부탁했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지현은 순순히 허리를 숙인다. 차갑고 비린 입술이 닿는다. 얼굴을 잘 보고 싶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안녕.”

“…”

“안녕이라고 말해야 가지.”

“…안녕.”

그리고 그는 헤엄쳐 갔다. 멀리, 아주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현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서 한참을 그가 돌아오진 않을까 기다렸으나 그가 오는 일은 영영 없었다. 아주 영영 없었다.

아, 나는 내가 불인 줄 알았는데 아마 나무였던 거다. 사주고 뭐고 다 틀려먹었다. 불이 붙어 있는 걸 불이라 착각하고 봤던 것일 거다. 삶의 열화에 바다가 쏟아져내려 아무것도 아니게 된 장작, 그래서 바다 같은 네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정말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어쩔 수도 없을 것 같다.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과는 영영 수절하라는 거였어. 정말 용하네. 지현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울었다. 바다를 알게 된 날 지현은 죽고 싶다는 감정을 습득했다. 삶이 불꽃이라면 이제 성냥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야만 한다. 애초에 알지 못하면 좋았을 사랑을 알아버려서는 안됐던 거다. 지현의 모친이 옳았던 걸지도 모른다.

사람의 기일은 죽은 날인데 네 기일은 언제라고 말하면 좋은가. 하다못해 그는 죽지도 않았는데 기일을 챙기는 게 맞는 도리기는 한가.

지현은 페트병 안에 바닷물을 채워 거기에 이름을 붙인다. 그 오백 미리짜리의 바다에는 ‘......’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인의 이름이 붙었다. 돌아오지 않을 연인의 이름이 붙었다. 녹아 없어지듯 인어는 물속으로 돌아가 버렸고, 지현에게는 기억 외에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괴물 아니랄까 봐, 인간보다 독했다. 마침 오늘은 12월 31일이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기실, 지현이 찬 욕실 바닥에 드러누워 눈물을 짜낸들 그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하수구에 너를 흘려보냈다고 하면 아마 웃기는 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본 게 허탈한 웃음이라 맑게 웃는 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인어의 기일까지는 2개월이 남아 있다. 지현은 페트병의 인어를 모조리 하수구에 쏟아붓고 깨진 유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내일은 휴가를 내어 연인을 담아 와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하수구에 애인이 흘러들어갔고, 걷잡을 수 없는 날이었다.

[삽화 | 강동희(IC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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