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Stop The Violence, 휴먼라이브러리 (한성대신문, 564호)

    • 입력 2021-03-02 00:02
    • |
    • 수정 2021-03-02 00:02

한 남성이 덴마크 시내에서 친구와 길을 걷고 있다. 갑자기 지나가는 행인과 시비가 생긴다. 말다툼을 하다가 행인은 칼을 꺼내 그의 배를 6번 찌른다. 갑작스러운 죽음. 친구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다짐한다. ‘폭력을 멈추자’ 친구의 이름은 로니 애버겔. 사람이 책이 되어 독자와 대화하는 도서관, 휴먼라이브러리를 만든 사람이다.

애버겔은 사람 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2000년 덴마크의 로스킬데 뮤직페스티벌에서 비폭력을 주제로 참가자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휴먼라이브러리 이벤트를 준비했다. 행사는 4만 명이 참가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그 후, 애버겔은 휴먼라이브러리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했다. 애버겔의 노력은 마침내 첫 번째 휴먼라이브러리 설립까지 이어졌다.

애버겔의 노력은 우리나라까지 닿았다. 휴먼라이브러리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10년 국회도서관 행사를 통해 이뤄졌다. 2012년 3월에는 국내 최초의 상설 휴먼라이브러리인 노원휴먼라이브러리가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는 공공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휴먼라이브러리 외에도 희망제작소 등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휴먼라이브러리 서비스가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덴마크를 시작으로 현재 전 세계 70여 개국에 확산됐다. 사람책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한다는 아이디어가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애버겔이 만들고 싶었던 휴먼라이브러리 속 대화의 모습을 포착해보았다.

▲휴먼북 서가에 휴먼북 도서목록이 정리돼 있는 모습이다.

폭력을 막는 대화

애버겔은 2014년 2월 15일, 국회도서관에서 있었던 초청강연에서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서로 차이가 해소되거나 새로운 시각 혹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휴먼라이브러리를 시작한 계기를 말했다.

휴먼북을 읽는 과정을 통해 휴먼북과 독자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정보를 얻을 때 이미 있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양방향 소통이기 때문에 서로의 정보격차를 줄이고 서로의 문제를 공유할 수 있다. 갈등과 폭력을 멈추는 것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그가 진행한 첫 번째 휴먼라이브러리 이벤트 역시 ‘일단 대화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도서관이라는 형식도 폭력을 없애는 요소로 작용한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화의 주제를 서로에게 이로운 것으로 설정하기 위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채택한 것이다. 애버겔은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뤄지는 공간을 중립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휴먼라이브러리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휴먼북과 열람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사람책을 읽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공감의 시간을 갖는 것 입니다

성찰의 계기가 되는 대화

휴먼라이브러리는 독자뿐 아니라 휴먼북에게도 뜻깊은 활동이다. 휴먼북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독자와 공유하는 활동은 서로의 정보격차를 줄인다는 점에서 사회공헌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임미경(노원휴먼라이브러리) 관장은 “휴먼북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목표를 충족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휴먼북에게 성찰의 기회로 활용될 수도 있다. 휴먼라이브러리의 상호작용은 독자와 휴먼북 양쪽에 영향을 미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정보습득과 전혀 다르다. 독자가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얻어가는 동안, 휴먼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하고 경험을 돌아보게 된다. 임 관장은 “자신의 풍성한 경험이 독자에게 소중한 자료와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휴먼북은 자부심이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휴먼북 활동의 장점을 설명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화

애버겔이 설립한 최초의 휴먼라이브러리 도서목록에는 이슬람교도, 성전환자, 남자보모, 이민 노동자 등이 등록돼있다. 흔히 말하는 소수자, 소외계층이 여기에 포함된다. 국내에 들어온 휴먼라이브러리도 비슷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경우, 휴먼북으로 새터민, 성소수자, 병역거부자, 노숙자 등 25권이 등록돼 있다. 우리가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소수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만나서 들을 수 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단순히 정보를 전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장덕현(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휴먼라이브러리는 다양성을 무시하는 세상에 대한 대안”이라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이 휴먼북이 되어 힘들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독자는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대화를 낳는 대화

휴먼라이브러리가 만든 소통의 결과물은 휴먼북과 독자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독자가 다시 휴먼북으로 참여하면 이해와 공감은 또 다른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대화가 다시 대화를 낳는 셈이다. 장 교수는 “휴먼라이브러리는 일회성 참여가 아닌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독자가 얻은 정보가 재해석되고, 그 결과가 다시 다음 독자에게 이어지면 정보의 양은 점점 늘어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정보도 반영될 수 있다. 특히 대학 등의 교육기관은 학문을 다루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장 교수는 “대학만이 갖고 있는 학문적 차원의 확장성을 고려할 때 휴먼라이브러리는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휴먼라이브러리를 학교에 적용한 사례도 있다.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휴먼북 라이브러리’에는 ‘교수님도 사로잡는 파워포인트 비법’이라는 주제가 있다. 여기에 휴먼북으로 참여한 재학생은 팀플 및 발표에서 PPT를 만들기 어려워하는 후배를 도와준다.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선·후배는 발표기술을 함께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사람 사이의 공감부터 새로운 정보의 창출까지. 휴먼라이브러리가 만드는 대화의 가치는 매우 다양하다. 대화로 폭력을 막아보자는 작은 아이디어가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휴먼라이브러리의 영향력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새로 생길 휴먼북과 그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조정은 기자

[email protected]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