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폭력에 짓밟힌 피해자, 폭로 없이 일어서려면 (한성대신문, 565호)

    • 입력 2021-03-20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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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03-22 00:22

지난 2월 7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학교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흥국생명에서 배구선수로 뛰고 있는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행위가 서술돼 있었다. 지금부터 10년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도 유명인에게 당한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모두 수년 전에 당한 학교폭력이다.

피해자는 왜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피해사실을 폭로할까? 말할 곳이 없었을 수도 있다. 2차 피해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도움받는 방법을 알 수 없었던 건 아닐까.

혼자 2,149명을 감당하는 전문상담교사

우리나라는 전문상담교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상담교사는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나 지역 교육청 산하 상담실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상담업무를 수행하는 교사를 말한다.

전문상담교사는 학교폭력 근절에 뛰어난 효과를 보여준다. 2011년에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된 강동구 천일중학교는 학교폭력피해 사실이 확인됐을 때 열리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개최 횟수가 배치 전과 비교하여 10분의 1로 줄었다.

전문상담교사는 해외에서도 사용하는 제도이다. 독일은 거의 모든 학교에 상담교사가 있다. 일본은 임상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전공한 심리전문가를 스쿨카운슬러로 배치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전문상담교사가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9년 교육통계에 따르면 학교폭력 전문상담교사는 초등학교 6,023개교에 365명(6.06%), 중학교 3,204개교에 1,303명(40.66%), 고등학교 2,341개교에 869명(37.12%)이 배치되어 있다. 540만명이 넘는 전체 학생 수를 생각하면, 전문상담교사 한 명당 2,149명의 학생을 담당해야 하는 셈이다.

현장에선 전문상담교사가 부족한 원인으로 교육부 예산의 한계를 꼽았다. 김은숙(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전문상담교사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교과·비교과 교사 정원을 분배하는데, 전문상담교사에 할당되는 정원은 적다”며 “정원 분배가 시대적 요구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립학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전문상담교사는 교내에 한 명인 경우가 대다수다. 김 교사는 “빈자리가 생겨도 교과목 교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2009년부터 임용을 시작한 전문상담교사는 다른 교사집단에 비해 힘이 약해 정원 분배에서 불리하다”고 인원이 부족한 이유를 설명했다.

현장에 있는 전문상담교사는 교육부와 학교 안에 전문상담교사를 담당하는 상담부서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전문상담교사노동조합은 “아직 교육부에 고유의 학교상담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라고 밝혔다. 김 교사는 “교육부의 전문상담교사 정원을 조정하려면 전문상담교사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해자 주변에 방치된 피해자

학교폭력은 처분 후에도 2차 피해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학교라는 공간에 함께 있을 경우 언제든 보복폭행이 이뤄질 수 있다. 2017년에 있었던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은 보복폭행의 대표적인 사례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A(14)양이 폭행 사실을 학교와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보복을 가했다.

보복폭행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떼어둬야 한다. 문제는 현행제도에서 둘을 떼어놓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분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에서 결정한다. 처분내용은 1~10호까지 있는데, 여기서 8호 이상의 처분을 받아야 가해자와 피해자의 실질적인 분리가 이루어진다. 8호 이상의 처분은 학폭위의 학교폭력 사안 점수가 16점 이상일 때 받는다. 고의성, 심각성, 지속성,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피해학생과의 화해정도에 각각 0~4점씩 줄 수 있으므로, 네 개 항목이 모두 높은 점수가 나와야 한다.

일각에서는 전학 조치 외에도 새로운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임종훈(홍익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전학 조치에 앞서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분리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복폭행 외에도 다른 2차 피해 문제가 있다. 앞서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 동영상이 퍼지고 피해자의 폭행당한 얼굴이 희화화되어 인터넷 상에 떠도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피해자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을 포함해, 피해사실이 외부로 왜곡되면서 발생하는 피해 역시 모두 2차 피해로 볼 수 있다.

전문가는 2차 피해의 원인을 학생의 공동체 의식 부족으로 설명한다. 푸른나무재단 이선영 팀장은 “방관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방어자로 만들지 고민하고 있다. 2차 피해는 목격한 사람의 도덕적 판단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피해자 주변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폭력사건 처리절차 및 과정 실태조사」(2019)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한 학교 및 학급학생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강화에 나서야 하며, 나아가 피해학생의 치유 및 지원을 위해 현재 안정공제회 등 선치료비 지급 기준을 완화하고 보상 수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무런 도움이 없었다”는 학생

교육부는 2020년 배포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서 언어폭력, 금품갈취, 강요·강제적 심부름, 따돌림, 사이버폭력 등 다섯 가지 유형에 따라 초기대응방안을규정하고 있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해당 대응방안에 따라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제도나 대응방안이 있어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8 아동 인권 보고대회」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후 어떤 도움이나 조치를 받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아무런 도움이 없었다"는 답변이 38.6%로 가장 많았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학교폭력 관련 제도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학교폭력사건 처리절차 및 과정 실태조사」를 살펴보자. 교육부는 해당 조사를 통해 학교안전공제회에 대한 인지도를 점검했다.

학교안전공제회는 학교폭력 발생 시 피해자에 대한 심리상담 및 조언, 일시보호,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비용을 우선 지원하는 기관이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지만, 제도를 아는 사람은 학생이 24.1%, 학부모 및 관계자가 43.5%에 그쳤다.

학생이 제도에 대한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학교폭력 예방 교육 내용에도 학교안전공제회에 대한 안내는 포함되지 않는다.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5조에 따라 학기당 1회 이상 반드시 진행되기 때문에, 학교폭력 관련 제도 및 정책을 알릴 좋은 기회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배포한 「2020 학부모를 위한 학교폭력예방자료」에는 학교안전공제회 내용이 없다. 교육부의 자료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2020년 6월부터 배포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학부모 소식지」에도 학교안전공제회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제도 및 대응방안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폭력사건 처리절차 및 과정 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과 관련한 주요한 제도와 지원절차에 대한 인식확대를 위한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학교폭력 발생 시 안전공제회 등 피해자를 위한 정보 등도 제공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학교폭력 대처, 피해자 중심으로

우리 사회는 가해자에 관심이 많다. 충격적인 학교폭력 사건이 보도되면서 가해자 처벌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 팀장은 “2011년에 대구에서 피해학생이 자살하면서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법이 대폭 강화됐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처벌만큼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보호도 중요한 문제다. 전문상담교사 보강, 2차 피해 방지, 피해자 지원 제도홍보 등 피해자를 위해 개선할 점이 많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2020년도시행계획」에서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을 지속 확대하며 피해 발생 초기부터 보호조치 이후 사후지원까지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피해학생의 보호자에 대한 치유·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중심으로 제도를 개선해 학교폭력 폭로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박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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