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욕억제제에 ‘혹’해 섭식장애로 ‘훅’간다 (한성대신문, 573호)

    • 입력 2021-12-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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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12-06 00:01

섭식장애 환자 수 늘어

식욕억제제 오남용 막아야

근본적 해결책은 인식 개선

"다이어트 약 생산 업체나 처방 병원이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최근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식욕억제제를 잘못 복용하면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섭식장애는 섭식 및 식이 행동에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나타나는 정신장애의 일종이다. 보통 먹는 양을 극도로 제한하거나 폭식한 뒤 구토를 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김율리(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섭식장애는 저영양 혹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뇌 기능을 저하시킨다. 궁극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현저히 손상된다”라고 설명했다.

섭식장애를 앓는 환자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은 주목할 부분이다.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10월 공개한 국정감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는 6,873명이 섭식장애 질환으로 진료받은 데 이어 2019년에는 8,846명이 해당 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 4년 만에 28.7%가 증가한 것이다. 그중 여성은 81.1%, 남성은 18.9%로 확인됐다. 특히, 모든 연령을 기준으로 20·30대 청년층이 35.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흔하게 알려진 섭식장애의 대표 증상은 거식증과 폭식증이다. 거식증으로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는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음식 섭취량을 현저히 줄이거나 거부해 체중이 비정상적으로 감소된다. 폭식증 환자의 경우 단기간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행동과 동시에 구토나 과도한 운동을 반복하는 행위를 보인다. 김 교수는 거식증과 폭식증은 공통적으로 신체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발생하는데, 해당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신체상을 왜곡해 인지하고 체중과 체형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여러 정신질환 중에서도 거식증은 매우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심각한 질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사회 구조가 섭식장애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김윤아(나를 만나는 시간 심리상담센터) 센터장은 “섭식장애를 겪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날씬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과 심리 상담을 진행하면 타인에게 ‘날씬하다’, ‘살을 더 빼면 보기 좋을 것 같다’와 같은 외모 평가를 듣고 극심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경우가 절대다수임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남 의원 역시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통해 “섭식장애는 생물학적, 사회적·심리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한다. 날씬함이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외모를 중시해 차별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외모지상주의가 깊게 뿌리 내린 상황이다. 지난 4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구직자 1,052명을 대상으로 얼굴도 하나의 스펙임을 의미하는 ‘페이스펙’ 관련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95.6%가 ‘호감형 외모가 면접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때문에 ‘면접 준비 과정에서 호감형 외모에 부합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시술을 고려해봤다’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기존의 마른 몸을 추구하는 사회적 미(美)에서 벗어나려면 의류계의 변화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명호(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마네킹의 키 혹은 허리는 비현실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에 부합하는 마네킹을 제작해 옷을 피팅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전했다.

섭식장애의 또 다른 원인으로 식욕억제제 오남용도 지목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발표한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식욕억제제는 미용 목적으로 처방·사용될 수 없다. 신동해(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는 “식욕억제제 약물 사용 목적은 비만을 막아 성인병의 발병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약물의 미용 목적 처방은 불가능하다”며 “미국 FDA에서 정신과 약물 계열을 식욕억제제로 승인한 이유는 비만으로 인해 사회적인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국내에서 비만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이 미용 목적으로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점은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마약류 식욕억제제가 처방되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종성(국민의힘)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펜터민(phentermine) 성분의 식욕억제제 처방건수는 309만 7,254건으로 나타났다. 펜터민은 식욕억제제로 흔히 처방되는데 도파민의 분비를 유도해 다량 복용할 시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기자는 식욕억제제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서울 소재 병원 5곳을 방문해봤다. 우리나라에서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체질량지수(이하 BMI)**는 30kg/m2 이상이다. 하지만 BMI가 19.43kg/m2인 기자는 5곳의 모든 병원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4곳의 병원은 BMI 검사 없이 상담만을 거쳐 식욕억제제를 처방해줬다. 5곳 중 1곳만이 BMI 검사를 진행했지만, BMI가 30kg/m2 미만임을 확인됐음에도 식욕억제제 처방전을 제공했다.

▲기자가 직접 받은 처방전과 식욕억제제

중요한 점은 식욕억제제의 복용만으로도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작년에만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보고된 이상사례는 1,523건에 도달한다. 김 교수는 “식욕억제제를 4주 이상 복용할 경우 심각한 심장병, 의존성, 불안, 불면, 흥분상태, 조현병과 같은 정신 이상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3개월 이상의 식욕억제제 투여는 폐동맥 고혈압의 위험을 약 23배 증가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식약처가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을 마련해 비만치료제 중 향정신성의약품 식욕억제제에 대한 남용 및 의존 가능성을 환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의료기관에 권고하고 있지만, 자세한 설명 없이 처방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방문했던 병원 5곳 중 남용 및 약물에 대한 의존 가능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의사가 치료에 적절한 사용이라고 판단한다면 환자에게 알맞은 약을 처방할 수 있는 ‘처방권’ 때문에 사실상 제재가 불가능하다. 마약류 의약품도 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약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정부의 관리·감독과 더불어 식욕억제제 오남용에 대한 신고 의무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신 교수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마약류 약물의 관리 부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식욕억제제 처방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섭식장애 환자의 증가와 식욕억제제 복용을 막기 위해서는 마른 몸을 지향하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평소 자주 접할 수 있는 다이어트 광고, 모델, 배우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섭식장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병이다. 대중매체나 다이어트약 업체 등에서 사람들에게 날씬함을 강요하거나 다이어트 욕구를 부추기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스암페타민 :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중독성 높은 각성제

**체질량지수 : 자신의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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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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