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식
조윤식
둥그런 보름달이 차오른 듯
가로등 불빛이 비친 동공을 보았다
여름비가 뒤늦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그런 밤이었다
하얀색의 기다란 지팡이는 쏟아지는 빗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다만
내 귓속엔 내가 걸어가는 발자국 여러 개만
울려 퍼진다
저 사람의 귓속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
눈 아프게 현란한 전광판의 불빛 소리가
지나가는 한무리 친구들의 줄무늬 티셔츠 소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젖고 있는 흰색 마스크 소리가
내 머리에 걸치고 있는 노란색 모자 소리가
침대에 누워 글 따위를 끄적이는 연필 소리가 들릴까
물소리 가득한 밤 길거리에서
비 웅덩이에 비친, 사람들의 소리를 찾고 있는
움직이지 않는 동공을 보았다
얼굴도 모를 사람들을 피해
영영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을 피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침전하면서
그의 동공은 꽤나 분주하게 멈춰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