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자와 함께하는 시사한잔> 새로운 전쟁 양상 드러낸 露(러시아)·烏(우크라이나) 사태 (한성대신문, 577호)

    • 입력 202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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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5-08 18:01

지난 두 달간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비보가 있다. 경제 제재, 민간인 학살, 난민 발생 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관련 소식이다. 이 전쟁은 단순히 양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냉전’이라 불리는 세계열강의 파워게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국가들이 일제히 우크라이나를 두둔하면서 러시아와 중국 등의 비서방 진영과의 대립이 격화된 것이다. 문제는 이 총성 없는 전쟁의 무기다. 서방세계가 ‘돈’으로 러시아를 질식시키고 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공군기지를 무력화하고, 군사시설에 정밀 타격을 가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맞서 계엄령을 선포했고, 서방세계는 즉시 우크라이나 지지에 나섰다.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해왔다. 주요 서구권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삼고 있는 이 기구에 가입하는 것은 서방세계로의 편입을 의미한다. ‘구소련’이라는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NATO 가입을 두고 벌어진 갈등만을 이번 전쟁의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번 전쟁은 여러 복합적 원인이 얽히고설켜 발생했다는 말이다. 박종관(경북대학교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소) 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놓여 있다. 이에 더해 NATO 확장, 경제적 문제 등 수많은 요인이 작용해 이번 전쟁이 발발했다”고 평가했다.

갈등 국면부터 엄포를 놓던 서방국가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선택하자 작정한 듯이 최고 수위의 경제 제재를 쏟아냈다. 이들은 ‘에너지 대국’ 러시아의 주요 자금줄인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수입을 금지했고,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에서 러시아를 제외해 루블화의 위상을 땅으로 떨어트렸다. 러시아 기업에 대한 투자 금지와 첨단 기술 수출 금지는 이에 비하면 낮은 수위의 규제일 정도다.

해당 제재들로 인해 러시아 경제는 휘청이고 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은 에너지 업계다. 4월 1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4월 9일부터 15일까지 러시아 해상 원유의 선적 물량은 2190만 배럴로 확인됐다. 이는 불과 일주일 전인 2일부터 8일의 평균량과 비교하면 25%가 감소한 양이다. 또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 원유 생산량은 다음 달부터 하루 약 300만 배럴이 줄어들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정부의 예산 중 45%가 원유와 천연 가스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에너지 관련 제재가 러시아를 작금의 상황까지 몰아넣는 것에 한몫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 배제는 세계 4위의 외환 보유국인 러시아를 향한 노골적 제지다. 지난 3월 13일부터 러시아의 국책은행인 VTB 등 은행 7곳과 그 자회사들이 세계 금융망에서 퇴출당했다.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는 세계 200여 개국의 1만 1천개 은행이 연결된 세계 단위의 통신망이다. 결과적으로, 4월 초 러시아는 전체 외환 보유고 60% 가량인 35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이 동결됐다. 이에 더해 루블화의 가치가 절반으로 폭락한 시기도 있었다. 결국 러시아는 국가 부도에 상응하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다다랐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실제로 러시아 경제 당국이 지난 3월 2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14.5%를 기록했다. 실직 문제도 심각하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외국 기업 철수와 영업 중단 등으로 모스크바에서만 약 20만 명이 실직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또한 오스트리아 빈 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최대 15% 감소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매년 1천조 원이 넘는 국방비를 지출하는 서방세계는 왜 그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을까. 무력 제재를 피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세계대전으로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 교수는 “만약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가 무력으로 러시아를 막으려고 했다면 핵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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