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듣는 언어
수어(手語)란 손과 손가락의 모양, 손의 위치와 움직임, 손바닥의 방향을 비롯해 표정, 몸의 움직임 같은 비수지(非手指) 기호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시각언어다. ‘한국수어’는 『한국수화언어법』이 2016년 제정되면서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공용어임을 인정받았다. 과거에는 대화의 의미를 가진 ‘수화(手話)’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했으나 한국어와 동격의 언어임을 피력하기 위해 ‘수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수어’는 독립된 언어이기 때문에, 마치 외국어를 통역해주는 통역사처럼 수어를 통역해주는 ‘수어통역사’도 있다. 수어통역사라고 한다면 언뜻 그저 한국어를 수어의 몸짓으로 그대로 옮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오해다. 수어의 어순은 한국어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도리어 한국어 어순대로 수어 단어를 나열하는 ‘수지한국어’의 존재는 수어통역사들의 오랜 고충이다.
김동호(41) 수어통역사는 “수지한국어는 한국어의 문법에 맞춰서 구사하기 때문에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국수어는 공간, 동시적 표현, 역동적 표현, 역할 전환 등의 문법적 표현이기에 한국수어가 가진 문법을 살려서 통역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농인과 함께 나아갈 방향
한국수어가 소수언어이자 위기언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권력자의 언어는 더더욱 아니다. 청인(聽人)이 다수인 세상에서 수어가 소수의 언어라는 점은 얼핏 당연하게 들린다. 그렇다 보니 잘못된 노출에 취약하다. 실제로 한국수어가 한국어로 오염돼 수지한국어로 소개되는 콘텐츠가 존재한다. 해당 콘텐츠들이 범람하다 보니 농인들조차 이를 실제 한국수어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왜곡된 정보들은 한국수어만이 가지는 고유의 특질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소수언어’와 ‘위기언어’를 통역하는 수어통역사들은 한국어 사용자들의 이런 안이한 인식을 꼬집는다. 청각장애인은 ‘불편한 한국어 사용자’가 아니라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언어적 소수자’라는 것이다.
김유미(53) 수어통역사는 “농인들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수어통역은 그 의의만큼이나 더욱 중대하게 다룰 분야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중요한 정보로부터 농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통역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 또, 어제와 같이 오늘도 농인의 정체성을 지원하고 내적 성장을 도우며 농인의 문화와 한국수어를 보전하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혜정 기자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의 통역을 하고자 해요”
김동호 수어통역사 약력
•2003년 수어통역사 자격 취득
•KBS 뉴스9 수어통역사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정례 브리핑 수어통역사
뉴스 우측 하단의 사람의 모습에 집중 해본 적 있는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뉴스 하단에는 작게나마 다양한 표정과 유려한 손짓으로 소통하는 통역사가 존재한다. KBS 뉴스9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聾人)과 이야기하는 김동호(41) 수어통역사를 만나봤다.
돌고 돌아 다시 수어
김 통역사는 중학교 시절 다니던 교회에 서 수어를 처음 접했다. 당시 그는 수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농인 목사의 수어를 보고 농인의 답답함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교회에서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보였던 농인 목사님의 표정과 가슴을 치고 있는 모습에 서 사회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고 인정받지 못했던 시간들이 보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직관적으로 한 번에 딱 의미가 느껴 질 수 있을까?’, ‘어떻게 이야기가 고스란 히 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수어 자체를 배우는 과정은 그에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통역사가 되기 위해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통역하는 과정은 힘들었다.
“통역의 단계에 접어드니까 단순히 수어의 단어를 배우는 것과 달리 너무 어려운 거에요. 농인 친구를 만나고 대화하는 건 좋았지만 통역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그도 처음부터 수어통역사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에는 오히려 특수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에 전념하고자 잠시 수어를 멀리한 적도 있었다. 수어통역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문득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약 2년 전부터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을 즐겁게 해보기로 결심했다.
“수어의 세계가 제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계속 저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힘들더라도 조금 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통역 일이 비록 힘들더라도 기쁘게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더 나은 통역으로의 전진
그는 현재 KBS 뉴스9의 수어통역사로 활동 중이다. 청인들에 비해 비교적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을 위해 KBS에서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을 대비한 야간 대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현재 공공 수어통역사로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브리핑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브리핑에 처음부터 농인들을 위한 수어통역이 제공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정보를 농인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러나 처음에는 이 당연한 일이 실현되고 있지 않았어요. 통역사의 배치와 통역사 화면 출연 등이 요청을 통해 이뤄진 결과에요. 당연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도 막상 알고 보면 실현되기까지 힘든 과정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이를 헤아려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주장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김 통역사가 통역을 맡고 있는 KBS 뉴스에서조차 수어통역 화면은 우측 하단에 위치한 작은 회색 직사각형이 전부다. 수어통역 화면을 포함하는 방송은 늘어났지만 농인의 입장에서 이 작은 화면을 보고 수어를 들으려면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수어를 읽어야 하는 시청자로서는 화면의 크기가 좀 작은 편이에요. 우리로 보자면 볼륨을 1에서 3 정도로 작게 해놓고 보는 상황이라고 보시면 돼요. 물론 스마트 수어 방송이라는 채널을 통해서 수어를 좀 더 크게 키워서 볼 수 있지만, 농인도 한 화면에서 같이 시청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요?”
또한, 수어통역의 보급은 확대되고 있으나 통역의 질은 여전히 미흡하다. 한 명의 통역사가 장시간 동안 통역하거나 토론회 같은 방송에서 한 통역사가 여러 발언을 동시에 통역하는 등의 상황이 통역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러 소리가 겹쳐서 나오고 갑자기 화면도 바뀌는 상황에서 통역이 잘 전달된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아요. 또, 한 통역사가 방송에서 1~2시간 이상 통역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 한 거예요. 그만큼 수어통역이 고도의 에너지와 함께 복잡한 과정으로 이뤄진 것 을 생각하지 못하고 통역을 하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는 지금 하는 수어통역을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자 한다. 그가 지향하는 수어 통역은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이다.
“저도 시각적인 효과를 더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물론 도달하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시도해요. 제가 좋은 통역을 보여줌으로써 메시지 전달이 잘 되는 것을 실제로 보고 있고, 또 계속 노력함으로써 따라오는 영향을 느끼고 있어요.”
“효용이 다할 때까지 수어와 함께 살아갈 거에요”
김유미 수어통역사 약력
•1997년 수어통역사 자격 취득
•MBC 뉴스데스크 수어통역사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
•영화 ‘도가니’ 수어대사 연출
한 분야와 관련된 3개 이상의 직업을 한 사람이 가질 수 있을까? 믿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농인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의 수어통역 사로, 한국농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수어 관련 도서를 집필하는 작가로 농인 사회 속에서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꿔가며 농인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김유미(53) 수어통역사를 만나봤다.
운명처럼 만난 수어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르면 농인은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이 음성언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하는 청인이다.
“농인은 문화·언어적 관점의 용어이고, 청각장애인은 의료·병리적 관점의 용어에요. 청각장애인이라는 범주 안에는 중도실청인, 노인성난청인 등도 들어 있죠. 그러나 이들 모두가 수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죠. 농인은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 중에 수어라는 시각언어를 사용하고 문화 적 공동체를 이루는 이들을 지칭해요.”
김 통역사는 대학 신입생 시절 교내에서 수화교실 포스터를 보고 수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수화교실에서 수화의 기초를 배웠고 그해 여름에는 특수학교 학생들과 캠프를 가기도 했다.
“신입생 시절 대학 교정에서 수화교실 포스터를 보게 됐어요. 그 후로 운명처럼 수어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수어를 놓지 않고 있죠. ‘당위성’, ‘운명’ 같은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는 수어통역을 통해 농인과 삶을 함께하고자 했다. 그래서 1997년과 2006년, 각각 수어통역사 민간자격증과 국가공인 시험 자격증을 취득했다.
“제가 수어를 배우던 당시 수어통역사 자격증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수어를 아는 청인들이 농인의 고충을 통역으로 함께 해 결해나가겠다는 인식만이 있었어요. 저 자신도 농인과 함께하는 삶이라는 방향만 있었을 뿐 그 모양은 무엇이어도 상관없었죠. 다만 수어통역사 제도가 시작되면서 자격증이 없어 저를 필요로 하는 농인에게 통역을 지원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농인문화 속에서 찾은 삶
그가 하는 주된 활동은 방송통역이다. MBC 뉴스데스크의 수어통역 화면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작은 화면 속에서도 그는 농인들에게 뉴스를 한국수어로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뉴스통역은 배경지식도 지속적이고 신속하게 알고 있는 것에 더해 속도와 밀도까지 엄청나게 높은 영역이에요. 시간과 싸우면서 정보를 사수하고 온전한 한국수어로 전달하기 위해 정신줄을 꽉 잡아야 하는, 그 순간만큼은 극한의 에너지를 쓰는 분야가 뉴스통역이에요.”
김 통역사는 방송통역 외에도 농인들의 생활을 돕고자 2011년 ‘한국농문화연구원’이라는 작은 문화거점을 개원했다. 한국농문화연구원은 농인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정보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졌으며, 청각장애로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연구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통해 농인이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안정을 얻는 장면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
“수어를 배우며 문화적으로 농인이 되어가는 이들부터, 농문화 혜택을 받으며 성장한 농인들까지 다양한 모습의 이들이 모여 강의를 통해 좋은 정보를 나누고 서로 힘이 되어줘요.”
농문화연구원에서는 정보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 농인들을 위해 ▲한국수어학당 ▲농인독서회 ▲특강 등이 이뤄진다. 한국수어학당에서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지만 수어를 배우지 못했거나 수어를 더 배우고 싶어 하는 농인들을 대상으로 수어를 가르친다.
“한국수어가 제1언어인 농인들에게 한국어는 익숙하지만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와 같아요. 그래서 청인보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불리한 측면이 있죠. 독서모임은 이러한 농인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제가 수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그는 수어와 관련된 책 집필은 물론 국립특수교육원과 국립국어원의 연구 사업 및 교재 집필에도 참여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인『 영혼에 닿은 언어』는 낯선 주제인 농인, 한국수어, 농인사회 등에 대해 경험과 예를 제시하며 설명해준다.
“모든 언어는 그 공동체의 영혼, 곧 정수(精髓)의 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수어는 시각언어라는 특성으로 인해 내면의 정보가 비교적 정직하게 드러나는 언어에요. 그런 면에서 수어는 우리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고귀한 영역에 닿아 있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렇게 정리된 생각이 있어서 제목을 지은 것은 아니고 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를 따라 지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