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한성문학상 - 소설 부문 가작> 메리, 메리 프랑켄슈타인.

    • 입력 2025-12-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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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2-08 00:01

[삽화 : 정보연(ICT 3)]

메리, 메리 프랑켄슈타인.

윤승희

나는 메리 곁에서 떠나야 한다. 원래는 메리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메리가 했던 가벼운 행동 하나 때문에 나의 칼끝이 떨렸다. 나의 살해 계획은 몇 번이고 엎어지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실패로 끝났다.

메리는 나와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우리는 여름에 처음 만났다. 그때 메리는 30살이었다. 우리는 한 남자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그 남자는 아주 부유하고, 또 메리를 사랑해서, 메리에게 이런저런 지원을 해 주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 매우 아파서 유감스럽게도 메리와 함께한 처음 4년 정도의 기억이 없다. 그러므로 이 또한 다 메리가 해준 이야기다. 나의 기억은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내가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갓 지은 밥 냄새가 집안을 메웠다. 집안은 평범했다. 딱 두명이 살기 좋은 아담한 집이다. 벽면에는 내가 양팔을 뻗으면 딱 맞는 너비의 TV가 그 아래에는 꽤 큰 수납함이 있었다. 양옆으로 방이 있었는데, 오른쪽은 메리의 책들로 꽉 차 있는 작업 방이고, 왼쪽은 나와 메리의 방이다. 큰 침대 하나, 나와 메리의 취향을 적절히 섞은 책이 메리보다 큰 책장에 빼곡했다.

나는 작은 식탁의 4개의 오그라진 다리를 편다. 손을 닦고 자리에 앉으면 메리는 반찬 가게에서 사 온 음식들의 통을 연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지난 예능 방송을 본다. 메리는 재밌는 걸 좋아한다. 나는 그때 그런 걸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냥 메리가 웃으면 따라 웃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질문 하나가 내 입에 머물렀다. 사실 아직도 메리에게 그 질문을 하지 못했다.

메리, 메리는 공포 소설을 쓰면서 왜 보는 건 이런 프로만 보는 거야?

메리는 글을 쓴다. 한때 그의 글은 베스트셀러 서가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2000년대의 여름에 집필된 그 소설은 내 어린 시절을 지배할 정도였다. 내가 그 소설을 이해한 것은 7년이 지났을 즈음이다. 나는 무서운 것을 전부터 못 보던 탓이다.

메리의 소설은 끔찍했다. 끔찍한 부분에서 아주 훌륭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그냥 그 자체로도 완벽했다. 그는 그 소설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 때 메리는 행복해하지 않았다. 메리의 끔찍한 소설은 여러 평론가에게 정말로 끔찍하다고 혹평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평론가들이 정성스럽게 적은 비판 때문에 메리는 상처받았다. 어떤 평론가는 어느 날 새벽 예능 프로에 나왔다. 나는 TV 불빛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남자와 여자의 웃음소리, 말소리가 들렸다. 그 평론가의 거만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조악하고 자극만 좇는 문학에 저는 치가 떨립니다. 분명 이런 글을 쓴 작가는 좋은 작가는 아니겠지요.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론가였다. 그때도 그게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있었고, TV의 푸른빛을 메리가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자는 웃으며 문학에 대해 더 이야기했다. 메리의 등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메리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메리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정자세로 누워 눈을 감았다. 나의 심장 소리도 빨리 울렸다. 메리에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메리를 사랑하던 남자는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그 사람과 만났다면 나도 그 사람을 꽤 좋아했을 것이다. 메리가 좋아했으니까. 나는 그때도 메리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를 위로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런 사실을 메리가 알려주지 않았다.

그 탓에 새벽,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메리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메리는 내가 하는 위로를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리는 나의 위로를 받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눈을 감고 생각했다.

다리를 뻗었다. 내 발이 무언가에 닿았다. 마침, 소파 옆 탁상 위에 있던 화병이 퉁,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메리가 화들짝 놀라 숨을 급히 집어먹는다. 삑, TV가 꺼진다. 나는 실눈을 뜨고 메리의 얼굴을 보려 애썼다. 열심히 자는 사람의 숨소리를 흉내 내며 메리의 동태를 살폈다. 메리는 내 머리 위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조금 걷어주었다.

메리의 발소리가 들리고 곧 집안은 완전한 적막으로 가득 찼다. 메리를 괴롭히던 TV의 빛이 없어진 바람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럼에도 나는 메리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진 못했다. 처음에는 그가 그저 작품에 아주 자부심이 있었을 거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메리는 항상 집 안에 있었다. 메리는 항상 쓴다. TV에서 평론가를 보았던 밤 이전까지는 내가 돌아와도 그저 썼다.

“식탁에 뒀어.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어.”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밤 이후 메리는 변했다. 그는 내가 들어오면 미친 듯이 쓰다가도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갔다. 애호박을 꺼내고 손질했다. 그날 먹은 된장국은 정말 맛이 없었다. 양파는 씹으면 불쾌한 잔여물을 남기곤 바로 사라지고, 애호박은 여전히 단단했다.

“맛있니?“

”맛있어.”

“앞으로 내가 해주는 것만 먹어.”

그때, 메리의 눈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그러나 그 별은 잡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훗날 누군가는 한심하다 메리를 무시하고, 누군가는 그 별이 잡히지 않기에 메리를 존경했다. 나는 평가하지 않았지만, 그저 메리의 말을 따랐다. 그날 응, 이라고 대답한 이후로 나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메리는 일했다. 메리는 항상 썼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일과를 끝내고 혼자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작은 모닝이 내 앞에 섰다. 메리였다.

어서 타. 급히 갈 곳이 있어. 메리가 말했다.

피곤했지만 모닝에 탔다. 모닝에 치우지 않은 패딩, 줄자, 김치통이 굴러다녔다. 그것만으로 뒷자리가 꽉 찼다.

우리는 우리가 살던 곳에서 1시간 떨어진 새집으로 갔다. 내부는 쾌적하고 넓었다. 원래 집의 2배 정도 되는 크기였다. 베란다는 내가 뛸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다. 내 방도 생겼다. 작은 곳이었지만 따뜻하고 찬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자, 메리가 우쭐대면서 방 같이 쓰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자신이 노력해서 내 방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치며 어디에 침대와 책상을 둘지 생각했다.

우리는 저녁으로 먹을 치킨을 사고 집으로 왔다. 여느 때처럼 예능을 보고 메리는 웃었고 나는 그냥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비가 왔다. 어두워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가끔 번개가 치면 마치 엑스레이처럼 내 몸 안까지 흑백으로 보여줄 것만 같은 빛이 번쩍했다.

그날 밤 나는 좀 메리를 귀찮게 했다. 우선 몸이 피곤했다. 일과를 끝내고 집까지 보고 오니 쉴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메리는 작은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순간 그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두 동그란 눈동자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등줄기가 순간 차갑게 식으며 내 영혼이 몸의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대로 메리는 날 때렸다. 순간 눈앞이 정말 번쩍하는 거 같았다. 나는 중심을 잃고 벽에 기대 쓰러졌다. 메리의 손과 동공이 떨렸다. 메리는 망설임 없이 내게 다가와 다정히 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어쩐지 눈가가 뜨겁다. 내 머릿속은 아직도 번쩍이던 그 순간으로 자꾸만 돌아간다. 내가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면, 메리가 여윈 손으로 나의 작은 뺨을 때린다. 아팠을 것이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나를 때렸으니까.

나는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내 머릿속이 어떤 의심으로 가득찼다. 찰나를 몇 번이고 회상했다. 메리가 순간 나를 진심으로 증오했다고. 그리고 번쩍, 하며 통증과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눈을 뜨고 계속 생각했다. 나는 메리를 의심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에, 그 때 정확히 상황이 어땠는지 나와 메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메리의 한마디는 기억한다.

미안해.

메리의 두 눈이 물로 된 장막에 갇히고, 곧 참지 못하고 눈물이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메리의 목소리가 떨리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아마도 괜찮다고 했을 거다. 그때 나는 괜찮지도 않았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그냥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는 메리와 같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비가 쇠를 때려 텅텅거리며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리니 메리의 옆모습이 보였다. 검고 긴 머리는 메리의 목뒤로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메리의 평범한 얼굴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검지 하나를 펴고, 메리의 옆모습을 따라 그었다.

이마에서 나오고, 미간에서 부드럽게 들어간다. 코에서 완만히 올라가다 뚝 내려간다. 지휘하듯 입술을 그린다. 턱에서 내리고 올라가고, 그대로 부드럽게 목까지 내려가면 얇은 요가 메리의 몸 위에 있다. 그러고 있으니, 메리에 대해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메리의 속내를 모를 거라면 겉모습이라도 그리고 싶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좋든 싫든 나는 메리와 평생 함께할 것이다. 그날 밤 깨달은 것은 두 개다. 나는 사람들의 속내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메리는 그냥 실수한 것일 수도 있고, 그냥 평소에 나를 미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시작부터 메리가 나를 증오한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메리가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즉, 나의 사고는 의미 없이 흔들리는 추에 불과하다.

그냥 불안했던 거다. 내가 정말 잘못했을까 봐. 메리가 나를 때렸으니, 그는 극악무도한 악인이고, 처음부터 나를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인간 하나쯤은 자신의 글로 먹여 키울 수 있다는 자존심을 지키려고 나와 사는 것뿐이라고. 돈도 벌어오지 않는 내가 피곤한 메리를 건드렸다고 맞을 필요는 없다고 믿고 싶었을 거다. 모든 것은 메리의 잘못이라고 믿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메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랬다면 메리는 죄인처럼 굴지 않았을 거다. 나는 메리와 14년을 함께 살았는데 아직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이해해야 한다. 이건 나와 메리를 위해서다. 메리의 겉모습을 그리면 메리가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메리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모르지만, 메리는 ‘메리’를 정말 사랑하니까.

메리의 겉모습을 잘 빚으면 우리의 관계도 잘 빚을 수 있다. 이건 나중에 정말 도움이 됐다. 그날 내가 알게 된 나머지 하나는 이거다.

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안다.

***

내가 처음으로 했던 일은 사람의 얼굴을 빚는 일이다. 내가 메리와 산지 딱 15년이 되었을 때 처음 접한 일인데, 꽤 재미있다. 흙의 촉감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흙은 차갑고 축축하다. 내가 손을 뻗으면 피하지도 나를 옭아매지도 않는다. 그저 나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제 몸을 바꾼다. 충성스러운 존재다.

내가 처음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메리는 기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타자를 쳤다. 그러다 손을 떼고는 뜯어두었던 과자 하나를 집어 먹었다. 아마 2분은 그러고 있었는데, 나는 그냥 기다렸다. 옆에 앉아선 눈으로 메리의 옆모습을 그렸다. 곧 메리는 입을 뗐다.

“그래. 해 봐.”

메리가 말을 끝내고, 나는 메리의 얼굴을 본다. 메리의 얼굴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그랬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예의다.

“고마워.”

내가 말했다. 메리가 으스댄다. 역시 나밖에 없지? 이런 일을 시켜주는 사람은 흔치 않을걸. 비싼 일이잖니. 그거. 그런데 그걸로 정말 직업을 가질 거야?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에 묘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솔직히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면 익숙하게 하는 일이 흙을 만지는 일이기를 바랐다.

흙에는 마음이 없으니까. 흙은 때려도 상처 입지 않으니까. 흙은 언제나 내 손길을 기다리니까. 나는 이 생각은 묻어두고 할 말을 골랐다.

“일단은 취미지.”

메리는 만족한 듯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린다. 칭찬받지 못했지만, 화를 내지도 않았으므로 이건 분명한 성공이다.

그 뒤로 조소 학원에 다녔다.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흙은 항상 내 손길을 기다렸다. 내가 그 바람에 답해줘도 흙은 단 한 번도 나를 불편하게 만든 적이 없었다. 그저 묵묵하게 내 의지대로 존재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미숙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만지면 만질수록 나아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흙은 나의 모든 손길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메리의 얼굴을 만들었다. 나는 들떠서 메리를 학원으로 데려와 그 조각을 보여주었다. 메리는 잠시 나의 조각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킥킥거리며 살짝 웃었다.

“네가 만든 거야?”

메리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맞다고 대답했다. 왜 그랬던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아니라고 해야 했었다. 예상대로 메리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메리가 너무 숨이 넘어갈 듯 웃어서 학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메리를 흘긋흘긋 쳐다봤다. 메리는 시선을 느끼고 웃음을 꾹 참으려 심호흡했다.

“누구를 만든 거야?”

메리. 당연히 메리다. 그 대답을 하기엔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고민했다.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나는 친구가 참고하여 만들던 사진을 하나 가리켰다. 그 사진이 무슨 사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아마 예쁜 연예인 사진 여러 개를 모아둔 한 장에 모아둔 사진이었다. 딱히 통일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그 연예인들은 다 예뻤다. 메리는 그 사진을 보더니 한 연예인을 가리켰다.

“이걸 만든 거지?”

메리가 말했다. 나는 그 사진을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는 웃음을 꾹 참고는 다시 내 조각을 보았다. 봐봐. 눈꼬리가 너무 내려가 있지 않아? 좀 더 올려야지. 그리고 웃는 얼굴로 하지 그래? 너무 우울해 보이잖아. 메리는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수정 사항을 말하며 내 조각을 문질렀다. 메리의 검지에 질척한 흙이 묻자, 메리가 살짝 인상을 썼다.

메리가 내 얼굴을 한 번이라도 쳐다봤으면 어땠을까? 나는 그가 비난받을 때 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려 노력했는데, 왜 메리는 나를 단 한 번도 돌아봐 주지 않지? 메리는 조소 학원 선생님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 물었다. 그는 메리에게 화장실 청소를 할 것이니 빨리 다녀와 달라 말하며 작은 마스코트 캐릭터가 달린 화장실 열쇠를 주었다. 거짓말이었다. 선생님은 청소는 학원 문을 닫기 전에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메리가 학원 밖을 나가자, 선생님은 다정하게 물었다.

“물 마실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말없이 내 조각 위에 남아있는 메리의 흔적을 지워주었다. 그는 내게 조용히 괜찮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울먹였나 보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울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머금고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학원의 분위기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다들 나를 쳐다보지는 않아도 의식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메리를 욕하고 있었을지, 메리에게 맞장구치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불편했다. 메리가 빨리 돌아왔으면 했다. 몸이 안 좋다고 집에 갈 수 있도록 말이다.

곧 메리는 돌아왔다. 메리는 입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가 내 얼굴을 보곤 얼굴이 입꼬리가 내려갔다. 나는 몸이 안 좋다고 했다. 메리가 나가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메리의 얼굴에 근심인지 짜증인지 모를 표정이 떠올랐다. 메리는 어서 집에 가서 쉬자고 했다. 메리는 선생님에게 목례하고는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메리는 나를 차에 태우고 나를 거울로 흘긋흘긋 쳐다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 선생님이 뭐라고 했니? 너 학원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 네가 그런 거짓말을 할 애가 아닌데….

***

3년이 지났다. 그 3년 동안 메리는 점점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메리가 딱했다. 그의 직업은 그의 삶이었으니까. 나는 그냥 꾸준했다. 늘 흙에 그림을 그렸다.

언젠가 조소를 업으로 삶겠다고 메리에게 말했을 때, 메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정말 아무 말도 안 했다. 내가 상을 차리고 밥을 먹자 말해도 메리는 방에 박혀서 글만 썼다. 난 그래도 메리에게 밥을 먹자 말하고 안부를 전하곤 했다.

어느 날 학원에서 돌아오니 메리는 방에 있었다. 집안이 어수선했다. 메리의 방문 앞에 놓여있던 큰 책장이 엎어져 책이 굴러다녔다. 거실에 떨어진 원고지 들이 메리의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휴지 뭉치가 집안에 굴러다녔다. 메리가 먹은 듯한 식기가 주방 식탁에 남아 차갑게 식어있었다. 남긴 음식물도 그대로였는데, 겨울이라 날파리가 꼬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롱패딩을 입은 채로 소파에 앉았다. 패딩이 만드는 몸과 소파 사이의 부유감이 불쾌했다. 점점 땀이 나는데 벗기 싫었다. 나는 굴러다니는 책에 눈을 맞추었다.

『이방인』, 『오이디푸스 왕』, 『프랑켄슈타인』…. 메리는 한국 밖의 것을 좋아했다. 그가 사랑한 건 그의 현실이 아니라 그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메리는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고 외국어를 할 줄도 모르지만, 항상 한국 외의 것을 동경했다. 메리는 말했다. 자신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메리가 직접 자신의 수필에 썼다.

”나는 네가 좀 더 삶다운 삶을 살길 바라는 거야.”

갑자기 방에 앉아 있던 메리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더웠다. 따끈한 땀이 내 관자놀이를 지났다.

“이젠 힘들어. 널 먹여 키우는 게 내 삶이었는데. 이젠 정말 힘들어. 너마저 이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메리가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메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도 내 자식을 만들고 싶어. 내가 꾼 꿈은 그거야.”

내가 말했다. 메리를 보았다. 메리는 울고 있었다. 여전히,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벗어… 옷. 덥게. 뭐 하는 거니.”

“뭐 쓰는 거야?”

내가 처음으로 메리의 글에 관해 물었다.

“칼럼.”

메리가 짧게 답했다.

“소설은?”

“안 써.”

“왜?”

나도 내가 왜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한게 아니라 내 입이 말한 거 같다.

“아무도 안 보니까.”

메리의 답은 단순했다. 메리는 정말 불쌍하다. 메리가 이상하다. 메리가… 무섭지 않았다. 메리도. 메리의 소설도.

***

또 시간이 지난다. 아마 5년은 지났을 거다. 나는 작은 성과를 냈다. 어느 전시회에 내 조각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메리는 새 소설을 냈다. 하지만 전처럼 주목받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메리가 침울해져 있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어서, 메리에게 내가 전시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내 작품이 올라간 건 단 하나지만, 그래도 나의 성과를 보면 메리도 기뻐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메리는 바빴다. 이제 글을 매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어디론가 다녀오는 것 같았다.

메리가 다녀오면 항상 향냄새가 났다. 어디 다녀왔냐 물어보면 할머니 묘에 다녀왔다고 했다. 요즘 글이 써지지 않기에 다녀온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메리도 기댈 곳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나로는 부족했나, 하고 조금 자괴감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 때쯤엔 나도 조금씩 돈을 벌었다. 나는 메리를 태우고 작은 모닝을 운전했다. 그날은 봄이었지만 더워서 에어컨을 켰다. 이젠 봄도 덥다. 전시장은 꽤 컸다. 모든 작품을 천천히 둘러본다면 4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메리는 계속 표정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만든 조각 앞에 섰을 때, 메리는 굳었다. 나의 조각은 두상 조각이다. 그의 얼굴엔 눈도 코도 입도 없고 매끈하다. 대신 그 얼굴엔 수많은 흉터가 있다. 메리는 계속 나의 작품을 봤다. 메리의 귀가 달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나는 당황했다. 처음 메리를 조각했을 때가 생각나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리는 비웃지 않았다. 그냥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가 대답했다.

“잔인하네.”

메리가 말했다. 웃는 표정인지 우는 표정인지 모르겠는 얼굴로.

전시회가 끝난 후에, 작품을 집으로 가져왔다. 나의 작은 수납함에 그것을 올려두고, 옆에는 포장용 박스를 두었다. 친구들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메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만든 것. 오직 나만의 소유물. 이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나는 분명 인정받을 만한 사람일 거다.

다음날 자고 있는데 몸이 흔들렸다. 정확히는 집안이 흔들렸다.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 보니 하얀색 자기 조각이 메리 앞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나는 수납함을 봤다. 내 조각이 없었다.

메리를 보았다. 메리는 등을 돌리고 있어서 메리의 뒷모습만 보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떨린다. 메리가 태연히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와 잔해를 치운다. 분명하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장 메리를 밀치고 소리 질렀다.

메리의 말이 윙윙거리며 들렸다. 메리가 부럽다. 소설은 출판하기만 한다면 한 책을 갈가리 찢어도 훼손되지 않는데. 자신은 그대로인데 내가 잘 나가기 시작하는 게 싫어서 질투했나? 평생 모른척하고 있던 감정이 심장을 꽉 채우는 것 같았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메리를 죽일 거다. 죽여야 한다.

그날 이후 메리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다른 말을 꺼내곤 했다. 나는 그 뒤로 칼과 농약을 사 봤지만, 메리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메리를 찌를 수도, 농약을 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갔다. 메리가 내 작품을 깨 버린 지 6개월도 더 지났다. 곧 있으면 추석이었다. 우리는 항상 추석에 무언가를 해 먹고는 했다. 메리는 그게 제사 대신이라고 했다. 멍했다. 메리를 어떻게 없앨지 그 생각뿐이었다.

“추석답게 동그랑땡 같은 건 어때? 손목 아프다고 했지? 내가 다 할게.”

메리는 내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확실히 메리는 예전 같지 않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메리는 집중하면 뒤에서 뭘 하는지 잘 눈치채지 못했지. 메리가 요리할 때 찔러야겠다. 메리는 요즘 글도 자주 쓰지 않아서 곤란하던 참이었다.

“요즘도 잘 안 나가? 소설.”

내가 물었다. 메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내 꿈에 나왔어. 메리라는 이름에 귀신이 붙었대. 마침, 동그랑땡을 하기로 해서 말하는 건데, 귀신이 메리를 잡아먹으려고 한대. 그래서 글이 안 팔리는 거라나 뭐라나… 메리가 하도 열심이라 나한테 말해주는 거래. 그래서 그 귀신을 쫓아내려면 메리를 대신할 제물이 필요한데…. 고기 같은 거면 좋을 거라고 하더라고.”

내가 말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메리도 나도 제사니, 귀신이니 하는 건 영화나 소설에서 본 것뿐이다. 나는 적당히 지어낸 것이다. 그냥 메리를 골려주고 싶었다. 글이 안 써진다고 절이나 해대는 그가 한심해 보이기도 했고.

메리는 눈을 반짝였다. 어릴 때 할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아꼈는지 모를 거라 말하며 일찍 돌아가셔서 제사 지내는 법을 아직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1시간 넘게 떠들었다. 메리는 변했다.

추석 당일. 나는 깨자마자 잡화점에서 산 칼의 포장을 벗겼다.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다. 몸을 찌르면 어려울 테지만 목을 찌른다면 한 방이다. 체육복을 걸치고 그 주머니 안에 칼을 넣었다. 밖으로 나오니 메리는 허둥대며 요리하고 있었다. 메리가 해 둔 동그랑땡들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기름종이 위에 쌓여있었다.

내가 낮잠을 잔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되어갔다. 주방은 기름이 사방팔방 튀어 미끈거렸다. 메리가 얌전히 뒤돌아 있을 때가 없어서 주머니에 넣은 칼을 몇 번이고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주방을 둘러보다 은박지에 쌓인 어떤 덩어리를 보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었다. 돼지고기가 다져서 쌓아 올려져 있었다. 내가 그러고 있자, 메리가 말했다.

“이러니 진짜 가족 같지 않니?”

우리는 가족이잖아. 무슨 소리야. 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대신 나도 돕겠다고 했다. 동그랑땡의 양이 너무 많았다. 줄 사람도 없는데 산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돼지고기 뭉치는 건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메리가 정신없이 고기를 구워대고 있는 모습을 보니 현기증이 몰려왔다. 나는 고기 뭉치 앞에 서서 고깃덩어리를 주물렀다. 흙만큼 익숙하진 않지만, 충분히 재밌었다. 물컹거리는 촉감이 이상했다. 나중에 메리를 찌를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아서 더 주물러댔다. 죽은 메리는 어떨까? 평소와 달리 조용하겠지. 그래도 그가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하자. 충분해.”

내가 말했다. 결국 그 고깃덩이는 건들지도 못했다. 메리가 아깝다며 남은 고기는 함박스테이크로 만들어 먹자고 했다. 메리는 주방을 닦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드디어 칼을 쥐었다. 너무 세게 쥐어서 손이 살짝 떨렸다. 메리의 목에 찌르는 시늉을 몇 번 해 봤다. 팔을 얼굴 뒤로 보냈다. 찌르기만 하면 된다.

그때 메리가 웃었다. 나는 놀라서 칼을 떨어트렸다.

“정말 잘 만들었다. 이거 아빠니?”

“아빠?”

은박지 안에는 편하게 웃으며 눈 감고 있는 메리의 얼굴이 있었다.

“메리잖아.”

“얘는. 그만 메리라고 불러도 돼. 나라고? 아니야. 아빠잖아. 네 아빠랑 똑 닮았어. 고깃덩이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니, 그래도 너 중학생 때부터 조소 학원 보내길 잘한 거 같다.”

“아빠가 누군데?”

“누구긴. 네 아빠.”

메리는 메리였다. 아주 오랫동안. 하지만 그 이전에 내 엄마였다. 머릿속이 밝아지는 것만 같다.

“내가 안 보여줬나?”

메리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사진첩을 꺼냈다. 결혼식 사진, 바다와 정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웃는 얼굴이 엄마와 똑같았다.

“하하, 부부끼리는 닮는다잖아. 너도 나랑 웃는 얼굴이 똑같다? 대신 너는 조금 더 눈꼬리가 올라가.”

“왜 나한테 안 보여줬어?”

“난 보여준 줄 알았어.”

엄마는 어떻게 아빠와 만난 이야기,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빠가 죽은 이야기, 내 앞에 형제가 네 명이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몰래 칼을 주워 들고는 다신 꺼내지 않았다. 나중에 그 고깃덩이는 내가 먼저 함박스테이크로 만들어 버렸다.

며칠 후에 나는 독립할 거라고 했다. 엄마도 메리도 죽이기 싫었다. 엄마는 나의 눈치를 보며 반대했지만, 엄마도 결국 내가 나갈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메리라는 이름은 좋다. 메리의 이름은 메리가 정한 거다. 메리라는 이름은 메리의 책에만 쓰이는데, 메리는 메리의 의미가 ‘행복한’이라 좋다고 했다. 나도 다른 이도 엄마를 메리라 불렀다. 이유는 당연히 엄마가 바라서다.

평생 같이 살면서 엄마는 행복을 몰랐다. 가족도 몰랐다. 엄마는 메리만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적어도 그날 메리는 새로 태어났다. 그날 나는 프랑켄슈타인처럼 메리를 새로 빚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었을 때, 드디어 나의 괴물을 연민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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