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청년> 깊어진 고립의 늪에 빠진 청년들 (한성대신문, 580호)

    • 입력 202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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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10-14 13:45

<편집자주>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청춘’. 안타깝지만 모든 청년이 그 말의 의미대로 젊음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에서 등한시되고 있는 소외 청년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소외된 청년의 문제를 과연 개인의 문제, 비행(非行)으로만 다뤄야 할까.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조명해야 할 모두의 문제일 수 있다. 소외 청년들이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飛行)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회 속 소외된 청년들이 ‘비상’하기 위한 발판을 알아보자.

김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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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두고 ‘고독사’라 말한다.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고독사예방법) 제2조에 따르면,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다. 즉 고독사는 하나의 사인(死因)이 아닌 과거에 비해 여러 이유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홀로 사망한 뒤, 그 시신이 일정 기간 흘러 발견된 죽음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된 단어다.

현재 국내에서는 ‘무연고(無緣故) 사망자’를 통해 고독사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는 크게 ▲시신을 인수할 연고자가 없는 경우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 발생한다. 무연고사는 의미적으로 고독사와 일치하지는 않으나, 고독사한 경우 연고자에게 시신 인계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를 통해 고독사 발생 현황을 유추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고독사했다고 추정되는 사망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김원이(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9월 공개한 국정감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7년 2,008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20년 3,052명으로 52%가량 증가했다. 김경일(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은 “무연고사에서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행위는 관계가 단절돼 죽음 이후 누구도 돌보지 않는다는 고독사의 의미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래서 무연고 사망 특히 시신 인도 포기 무연고자가 증가할 경우 고독사 역시 증가할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고독사 중에서도 청년 고독사는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정재훈(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 진입을 시도하는 청년의 관계가 단절된 점도 문제인데 이들이 사망한 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가 병들었다는 전조”라고 밝혔다. 임명호(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청년은 노인에 비해 신체적 활동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정체성의 정립과 지속적인 뇌 발달의 측면에서 심리적·신체적으로 취약하다”며 “청년 고독사가 노인 고독사보다 심각한 측면도 있으므로 노인과는 별도의 정책 제안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 고독사의 특징은 가파른 증가세와 사인 중에 자살 비율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김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63명이었던 40세 미만 무연고 사망자는 102명으로 62%가량 증가했다. 더불어 자살 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KBS <시사직격>의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울시에서 고독사한 30대 이하 청년은 전체 고독사의 약 10%였으나, 이중 자살로 추정되는 20대는 40.9%, 30대는 41.2%로 다른 연령에 비해 높았다. 정 교수는 “이러한 청년 고독사는 어쩌면 개인의 자살이라고 볼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에게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회구조 변화로 인한 청년층의 1인 가구 증가가 고독사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1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내가 갑자기 연락 두절되었을 때, 나의 안부(생사)를 확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답한 만 18~34세 청년은 5.7%였다. 유민상(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앞으로 혼자 사는 청년들이 더 많아진다면,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발견되는 사례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전했다.

청년 고독사의 다른 원인으로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도 빠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회의 ‘경쟁’으로 발생하는 취업난에 주목했다. 최명민(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관통하며 살아온 지금의 청년 세대는 이기적이어야 하고 경쟁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식이 체화된 세대”라며 “청년의 고립을 개인적인 외로움으로 보기에는 고립 문제가 크다”고 해석했다. 청년들의 경제 사정 또한 무시할 수 없다. 2018년 김병욱(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 「학자금 목적 제외 은행권 대학생 대출 현황」에 따르면, 학자금 목적을 제외한 대학생의 대출액은 2014년 말 6,193억 원에서 2018년 7월 말 1조 1,004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486개의 계좌에서 발생한 21억 원의 연체액도 2,136개의 계좌, 55억 원으로 각각 상승했다. 정 교수는 “경제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에서의 배제가 나아가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개인의 의지박약이 아닌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적 위험이 구조화가 되면서 진입이 어렵기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청년 고독사 문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는 관련 법안의 개선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2021년 4월 시행된 고독사예방법에 적시된 고독사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의견이다. 법조문에서 시신이 발견되는 기간을 ‘일정한 시간’으로 모호하게 표기하고 있어 명확하게 자료를 산출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김 사무국장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고독사의 정의에 대한 기준을 최대한 구체화해야 한다.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그 기준에 따른 현황 파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 연구위원은 “고독사의 정의에는 ‘관계망 단절’, ‘홀로 임종’, ‘시간이 흐른 뒤’라는 조건이 붙어야 하지만, 이와 같은 조건조차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복지 지원의 사각지대를 발생시킬 수 있어 법적 정의에는 다양한 유형이 포함되는 쪽으로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고독사예방법 자체의 목적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남아있다. 법안의 목표가 고독사 자체를 막기 위한 것인지, 고독사 이전의 고립된 삶을 예방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고독사예방법이 고독사 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것인지, 혹은 고독사 이전에 외로운 삶을 살지 않도록 예방하는 비교적 큰 의미에 초점을 둔 법안인지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부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는 청년들이 고독사 이전 고립된 삶인 ‘고독생’을 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김 사무국장은 “원론적인 측면에서 청년 세대가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될 이유가 없고, 일자리에 한정된 정책만 지원받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는 근로 능력이 있고 경제활동을 통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청년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밝혔다.

그중 청년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활동을 확대하고 이를 홍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지자체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청년 고독, 청년 자살에 대한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고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고 확대해서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자체가 운영 중인 고용센터의 기능을 확장하는 등의 방안도 제시됐다. 정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는 고용센터의 역할이 청년들의 취업 지원과 실업급여 지원에 국한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처럼 사례관리를 통해 철저하게 청년들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청년 고독사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기에 정책 개선과 더불어 주위의 관심도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최 교수는 “청년 고독사는 한 개인의 비극적인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외로움과 고립이 심화돼 가는 것에 대한 반응”이라며 “외로움과 고립도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여겨져야 한다. 사람은 각자 홀로 살아갈 때 잠깐은 행복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외로움 속에서 행복할 수 없다”고 전했다. 유 연구위원은 “사회가 개인화되면서 전통적인 가족 형태나 공동체의 형태가 변화될 것이다. 고독사 문제에 대해 공공이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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