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청년> 돌봄의 무게를 짊어진 청년들, '영 케어러' (한성대신문, 581호)

    • 입력 2022-09-19 00:00
    • |
    • 수정 2022-10-14 13:44

<편집자주>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청춘’. 안타깝지만 모든 청년이 그 말의 의미대로 젊음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에서 등한시되고 있는 소외 청년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소외된 청년의 문제를 과연 개인의 문제, 비행(非行)으로만 다뤄야 할까.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조명해야 할 모두의 문제일 수 있다. 소외 청년들이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飛行)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회 속 소외된 청년들이 ‘비상’하기 위한 발판을 알아보자.

김기현 기자

[email protected]

‘영 케어러(Young Carer)’, 부모 혹은 조부모 등의 가족을 간호하는 청년을 일컫는 말이다. ‘청년 간병인’, ‘가족 돌봄 청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은 구체적으로 신체·정신 질병 및 장애, 약물 중독 등을 지닌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 또는 만 24세 이하 청년을 말한다. 다만 영국에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분류해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영 케어러로, 만 18~24세 청년들은 ‘영 어덜트 케어러(Young Adult Carer)’로 각각 분류한다. 현재 국내는 영 케어러의 연령을 비롯한 관련 정의를 논의 중인 단계다. 조명아(충남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돌봄연구자는 “국내 청년의 위치와 상황을 고려해 10대에서 30대까지 영 케어러로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영 케어러인 10대와 영 어덜트 케어러인 20~30대를 구분할 필요는 있다. 실질적으로 연령대별 필요한 지원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직 그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지금껏 관심 밖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난해 영 케어러가 간병 중이던 아버지를 방치해 살인한 ‘간병살인’으로 이들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올해 보건복지부가 한 발짝 늦게 ‘가족 돌봄 청(소)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김서현(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령 기준에 따라 예상보다 많은 수의 청년이 가족 돌봄에 지쳐있을 가능성이 크다. 효 사상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에서는 영 케어러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며 “최근에서야 사회 문제로 대두돼 대중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기초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영 케어러 증가가 필연적이라는 입장이다. 고령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저출생, 가족 구성의 변화로 자녀의 수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어 젊은 층의 노령 가족 부담 증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변금선(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 부연구위원은 “현재 평균적으로 1명의 자식이 2명의 부모를 부양해야 하며, 자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과거에 비해 길어지고 있다. 동시에 장기 요양이 필요한 만성질환은 증가하고 있다”며 “자녀가 부모를 돌볼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전에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점차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더불어 현재 영 케어러들에게 적합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간병’이라는 돌봄을 단지 해당 가족 구성원만의 일로만 여기는 우리 사회 인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효심(孝心)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무급으로 부모의 질병이나 장애를 돌보는 것은 가족의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졌다”며 “돌봄을 사적 영역 안에서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일로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되며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 케어러가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또 다른 이유에는 이들의 존재를 사회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점이 존재한다. 또한 여기에는 국가 차원에서 돌봄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최근에 이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상이(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대가족 체제의 자연적 연대 질서 하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사회의 오랜 관성으로 인해 사회는 영 케어러가 부모 돌봄의 유일한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지 못했고, 이들이 가진 특수한 성격도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갈수록 많아지게 될 영 케어러의 입장에서 돌봄 정책을 바라보고 지원하는 새로운 제도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누구에게도 조명받지 못하는 영 케어러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갑작스럽게 돌봄 활동에 놓인 영 케어러들은 아픈 가족의 보호자로서 가족에 대한 간병은 물론, 가장으로서의 경제활동 역할 모두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 돌봄연구자는 “성인 돌봄의 경우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아이 돌봄과 달리 일정량의 노동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경제적 차이로 인해서 부유한 영 케어러들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영 케어러들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일 수는 있으나, 돌봄이 지속될수록 결국 경제적 악순환으로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간병 활동과 일터로 동시에 내몰린 이들은 보통의 또래 집단이 수행하는 과업을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학업, 진로 설계 등 미래에 투자할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해외 영 케어러(young carer) 지원 제도와 시사점」에 따르면, 영국의 영 어덜트 케어러의 29%가 학업을 중단했는데 이는 또래 집단 학업 중단율의 4배에 이르렀다.영 케어러들은 간병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감에 노출되기 쉽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박영준(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병 스트레스는 우리가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의 스트레스로 인식을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손명동(광주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오랜 지병에 효자 없다’는 격언처럼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잠시 돌봄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에 오는 피로감, 또래와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영 케어러들이 겪은 간병 활동은 생애주기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특수성을 가진다. 예를 들면 적절한 시기에 이뤄져야 할 취업의 시기 등이 또래 집단에 비해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져, 일련의 과정이 지속되면 상술한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조 돌봄연구자는 “본인이 가진 모든 경제력을 돌봄에 모두 투자하니 남는 돈도, 커리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돌봄 파산’이 발생한다”며 “돌봄 지원에 대해 얘기할 때는 돌봄이 종료된 이후도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영 케어러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즉 맞춤형 지원책 이전에 애초부터 영 케어러들을 따로 규정한 법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영 케어러에 대한 법적 정의를 먼저 확정할 필요가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청년의 수를 가구 소득 수준별로 집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 수준이 중산층 이상에 해당한다면 소득 지원보다는 돌봄 관련 각종 정보나 심리적 지원 등이 더 중요할 것이다. 반면 중·저소득층에 속한다면 차등적인 재정 지원을 포함해 돌봄에 대한 총체적인 상담 서비스 등이 포괄적으로 지원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 케어러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이들을 선제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영국의 경우, 정부와 교육기관, 민간단체가 협력해 학교에 재학 중인 영 케어러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조 돌봄연구자는 “해외처럼 당장 대규모의 복잡한 행정 연계를 실현하기보다는, 단순한 연계로 시작해 영 케어러를 발굴해야 한다”며 “아동학대 신고 의무와 마찬가지로 영 케어러도 신고 의무를 만드는 방안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더라도 갑자기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이러한 복지 제도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회 경험이 전무하거나 일천한 영 케어러에게 돌봄 활동의 모든 것은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정책이 존재하나, 처음 간병인의 처지에 놓인 청년들에게 이를 찾고 신청하는 과정이 복잡하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호주는 간병인을 위한 정책을 파악할 수 있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조 돌봄연구자는 “국내의 신청주의 복지 장벽이 상당히 높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한 영 케어러들이 많았다”고 술회했다.

금전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지원 체계도 요구된다. 경제적 어려움의 해결은 학업을 비롯한 영 케어러의 과업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일정 시간 돌봄을 제공한다면 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고, 아일랜드는 영 케어러 카드를 발급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호주에서는 영 케어러들을 위한 학비 보조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학비를 보조 받은 영 케어러의 55%가 하던 아르바이트를 중단 및 축소했다. 특히 전체적으로 76%에 해당하는 인원의 성적도 향상됐다. 이 교수는 “모든 청년은 공정한 기회균등을 위한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아야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 전망을 활기차게 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여건하에서도 청년이 기꺼이 부모를 위해 ‘영 케어러’가 되길 자처한다면, 기존의 지원에 더해 더 많은 양의 추가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년들이 겪는 간병 스트레스를 관리해줄 곳 또한 마땅치 않다는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호주와 아일랜드에서도 영 케어러 모임을 통해 그들 간의 소통을 돕고 있다. 김 교수는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건강한 성인으로 발달하는 데에 필요한 상담 서비스, 자조 집단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심리·정서 치료 전문가와의 만남은 물론, 유사한 상황에 있는 또래 영 케어러들과 소통하는 체계를 확보해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영 케어러들의 고충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돌봄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국가가 공적으로 돌봄을 함께 하는 체제를 마련하는 일도 우선 과제로 꼽힌다. 정익중(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교육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처럼 돌봄도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돌봄은 어떠한 특정 시기 혹은 평생에 걸쳐 필요하기에 국가의 관심과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처우가 좋지 않아 돌봄 활동을 지속하는 이들이 줄어 전문성이 견고해지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돌봄이 지속가능한 구조 속에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에 관심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