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자가 보내는 신화로의 초대장> 신화로 찾은 고구려의 조상, 부여 (한성대신문, 581호)

    • 입력 202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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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9-19 00:00

부여, 옥저, 동예, 삼한. 삼국시대가 성립되기 이전,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존재하던 국가들이다. 이들 중 흔히 ‘영고’, ‘1책 12법’ 등의 풍습으로 기억되는 부여는 기실 풍습이 아니라, 고구려와 연관된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당장 부여의 건국자는 ‘동명’인데, 이는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성왕’, 즉 주몽과 유사하다. 또, 고구려 역시 한때는 ‘졸본부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고구려사에서 부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구려가 부여를 조상으로 삼았다는 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두 나라 건국신화 내용 전개 양상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고구려가 부여의 계승자를 자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여의 건국신화에 대해 가장 먼저 서술한 『논형』에서는, ‘탁리국’이라는 나라가 배경이 된다. 탁리국 왕의 시녀가 하늘의 기운을 받아 임신해 아들을 낳았다. 왕은 그 아이를 죽이려 돼지우리에 버려 보고, 마구간에도 버려 봤지만 그때마다 돼지와 말이 아이를 지켜줬다. 결국 왕은 아이를 살려주고 ‘동명’이라 이름 지었다. 동명은 활을 잘 쏘는 등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왕은 그런 동명에게 나라를 뺏길까 두려워 지속적으로 살해를 시도했다. 이를 알아챈 동명은 남쪽으로 도망가다 강을 맞닥뜨린다. 이때 동명이 활로 강물을 때리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건널 수 있었다. 이렇게 남쪽에서 세운 나라가 바로 부여다.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부여의 그것과 내용 전개상 일치한다. 『위서』에 따르면, 부여 왕에게 사로잡힌 물의 신 하백의 딸은 햇빛에 의해 임신하고 알을 낳는다. 부여 왕은 이 알을 버렸지만 동물들이 알을 지키는데, 그 알에서 나온 이가 주몽이다. 주몽도 동명처럼 활을 잘 쏘는 등 출중한 능력을 자랑했고, 부여의 신하들은 그런 주몽을 두려워해 주몽을 죽이려 했다. 이에 주몽은 남쪽으로 도주하고, 물고기와 자라가 만든 다리로 강을 건넌다. 이후 주몽은 고구려를 건국했고, 신화는 끝이 난다. 일부 내용을 제외하면 두 신화 모두 ‘신이한 출생-동물의 보호-주변의 위해-도강(渡江)-건국’이라는 큰 틀이 동일하다.

데칼코마니 같은 두 신화 속에는 많은 역사적 사실이 감춰져 있다. 다수의 역사가는 부여가 고구려의 원류임이 주몽 신화에서 드러난다고 전언한다. 주몽이 부여에서 남하하는 내용으로부터 고구려가 부여를 기원으로 여겼음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호정(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주몽이 부여 출신이라는 점에서 부여가 고구려의 조상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주몽이 부여의 왕자로 기록돼 있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고구려는 부여의 계승자임을 표방하기 위해 건국신화를 차용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고구려의 집권 세력이 지배의 정당성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건국신화’를 활용했다는 견해가 제시된다. 건국 과정을 바탕에 놓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지배 체제의 공고화를 도모했다는 말이다. 송 교수는 “고구려는 성장한 이후 관료 체계, 법률을 만드는 등의 체제를 정비했을 뿐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기 위해 건국신화도 다듬었다”고 전했다.

또한 다른 신화가 아닌 부여의 건국신화를 차용한 데에는 집권 세력의 특별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견해도 제시된다. 고구려는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가장 강인한 국력을 자랑했던 부여의 건국신화를 복사해 옴으로써 더 큰 통치 정당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영광(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고구려 지배층이 단순히 부여에서 이주해 온 세력이 아니라, 부강한 국력의 부여를 롤모델로 인식하고 건국신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제작한 측에서는 고구려가 부여의 실질적 계승자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승호(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HK교수는 “부여가 만주와 한반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큰 나라로 인식됐고, 그러한 부여의 건국신화를 가져옴으로써 계승자를 자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가들은 건국신화에서 볼 수 있듯 부여가 삼국시대의 근원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 교수는 “건국신화뿐 아니라 동명성왕이라는 호칭을 통해서도 고조선보다 부여가 직접적으로 고구려의 조상이 되는 국가임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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