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새로운 시도가 있는 곳에, 삶의 재미가 있다 (한성대신문, 584호)

    • 입력 2022-12-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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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12-05 00:01

배우 겸 작가, 그리고 출판사 대표 백수민(29)

[사진 제공 : 백수민]

<편집자주>

초등학생 시절에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통령이자 과학자이자 시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오로지 하나의 직업에 전업으로 종사한다는 고정관념이 반영된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관념에서 탈피하는 현상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N개의 직업을 병행한다는 뜻의 ‘N잡러’라는 신조어의 등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하나의 일도 구하기 어려운 판국에, 여러 일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다양한 수단을 통해 청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청년이 여기 있다. 영화 「두 남자」와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경우의 수」 등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백수민(29) 배우다. 그는 올해 들어 세 권의 책을 출간하며 작가로서 또 한 번의 데뷔를 마쳤다. 그가 낸 두 번째 책은 사진집이기 때문에,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기록을 직접 손으로 엮고 싶은 마음에 독립출판사를 설립해, 현재 출판사 ‘루시앤크리스’의 대표로 있기도 하다.

기자가 만난 그는 열심히 일을 하기보다는, 즐기는 사람이었다. 삶에서 그 무엇보다 재미를 1순위로 설정하고, 도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오던 와중에, 그가 거리낌 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버스를 갈아타고 갈아타, 5시간을 넘게 달린 끝에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올해를 마무리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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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경상남도 남해군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는 백수민 [사진 : 김기현 기자]

어릴 적의 백 배우는 꿈이 자주 바뀌는 아이였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보면 본 대로 하고 싶은’ 성향을 타고났다고 설명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드라마와 영화 보기’였고, 이것이 현재 그가 백 ‘배우’라 호명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됐다. 이 취미에서 막연히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빵이 좋아서 제빵사를 꿈꾸기도, 어머니가 매일같이 뉴스를 보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나운서를 지망하기도 했어요. 의학 드라마를 보면 의사로 꿈이 바뀌고요. 그렇지만 7살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본 기억 덕분에 배우를 제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순간이 쌓여 고등학교 3학년 때 배우로 진로를 설정한 것이죠.”

또 그에게는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민사고 출신 배우’라는 것이다. ‘민사고’는 대한민국 굴지의 명문으로 꼽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일컫는 줄임말이다. 이 학교에서 배우란 드문 진로 희망사항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모교의 환경이 배우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그곳에서의 경험 또한 추후 도움이 됐다는 입장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네 집에서 같이 시험 준비를 하다가, 민사고의 한 선배님이 쓴 책을 읽었어요. 민사고는 야간자율학습이 없다는 사실을 그 책으로 알게 됐죠.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야간자율학습이 너무도 하기 싫어서 민사고에 편입 원서를 넣었어요. 근데 운 좋게 합격을 한 거죠. 민사고는 자유로운 분위기라 제가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기도 했고, 배구 동아리나 사진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있었어요.”

비록 배우의 꿈을 꾸던 그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성적에 맞춰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로 진학해야 했다. 전공이 배우와 별 접점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학교 안팎으로 노력을 이어갔다. 학교 내에서는 연극동아리 ‘성균극회’에 들어가 연극 무대에 서는 활동을 이어갔고, 학교 밖에서는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극회 활동이 대학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꿈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한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솔직히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확신을 얻고자 극회 활동을 시작했죠. 극회 활동으로 무대에 올라 보니 ‘이거다’ 싶었어요. 무대에서 연기하고, 끝나고 박수받는 과정이 생각해왔던 것만큼 즐거웠어요. 극회를 통해 연기에 대한 확신을 얻고 연기 학원도 다니게 됐죠.”

교내 동아리 활동을 통해 꿈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연기에 더욱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했다. 당시 주변인들은 이를 만류하거나,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그럼에도 그는 큰 흥미를 두고 있지 않은 학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중퇴 이후 본격적인 ‘배우 지망생’ 생활에 돌입했다.

“중퇴의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처음부터 학교 공부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느끼고 있었고, 방황하며 미루다가 2학년 때의 어느 날 자퇴가 하고 싶어서 결심한 거예요. 자퇴하겠다고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도, 연기가 하고 싶다고 처음 밝혔을 때도 반대하거나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텅 빈 응원만 들었다면 거만해졌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런 반대하는 시선 덕분에 더욱 이 악물고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그는, 중퇴한 지 2년여 만에 영화 「두 남자」로 데뷔했다. 주로 연극 무대에 서 오다 처음으로 매스 미디어로 이동하게 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촬영 이외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 제작진과 소통하는 방법 등을 익혀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생각해왔던 연기 활동과 실제 촬영 현장에서의 모습 간에 괴리가 생긴 순간이었다.

“매체로 넘어오면서 힘든 점이 많았어요. 무대는 끊임없이 연기하고 관객과 호흡하는데 영화나 드라마는 촬영 때에만 연기를 하기 때문에, 촬영 이외의 시간에는 어떤 자세를 취하며 대기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현장에서 제 의견을 다른 제작진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방법도 아직 배워나가는 중이에요.”

▲드라마 「경우의 수」를 촬영 중인 백수민 [사진 제공 : 백수민]

또한 백 배우는 가장 어려운 점으로 연기하는 동안 자신을 비하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점을 꼽았다. 지금의 그가 돌아보기에 그때의 자신은 충분히 잘 해내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일이 빈번했다.

“제가 뚱뚱하다든지, 연기를 못한다든지, 열정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기비하는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되던 일마저 안 되게 했죠.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려서,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아까운 시간이라고 생각돼요.”

백 배우가 힘든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일기 쓰기와 그림 그리기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그에게 일기장은 어린아이의 애착 인형, 가장 친한 친구 그 이상이다. 가장 솔직한 그의 감정으로 일기장을 채운 적이 많았고, 연기 공부에 대한 내용도 빼곡했다. 그림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곧잘 표현했다.

“기록하는 일을 좋아해서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썼어요.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쓰는 시간이 더 길었어요. 놀이로 시작된 일이 성인이 돼서까지 이어지고 있죠. 글을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이 안정되고 온전한 제가 됐다고 느껴요.”

그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도 일기와 그림이었다. 백 배우가 작가로서 처음 출간한 책 『신인일기』는 대학 시절과 배우를 준비할 때의 일기를 엮어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인일기』는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한 사적인 기록을 공개하는 큰 도전을 하게 된 것도 스스로 만든 집착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중 하나였다. 더불어 도전하는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것이든 도전하는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타인의 기록을 보고 공감을 얻고, 감정적 교류를 하며 위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의 저라면 출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제 앞의 벽을 깨기 위해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꿔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더 알아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서 이전에 제가 썼던 글들을 모아봤어요. 모아놓고 보니 너무나 소중하기도 하고, 제 글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출판을 고민하다가, ‘반대로 살기’라는 도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출판을 결심하게 됐어요.”

첫 번째 책을 출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였다. 완전히 새로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내볼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이후 평소에 그가 관심 있어 하던 사진 찍기에 뛰어든 결과가 두 번째 출판물 『DAYDREAM』이다.

“책을 만드는 과정이 정말 바빴는데도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일도 재밌었고, 기획안을 쓰는 것처럼 새로운 일들도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신인일기』 작업을 하는 와중에 이미 ‘다음에는 무슨 책을 내지’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마침 기회가 닿아 사진집을 낼 수 있었죠.”

이후 그는 『실은 아주 작은 불안이었어』라는 에세이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또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그가 완전히 새로운 일에 거리낌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누구나 노력하면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요즘의 환경이 한몫했다고 판단한다. 또한 그가 배우 생활을 하며 얻게 된 새로운 삶의 태도도 도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에 기여했다. 그는 ‘열심히 논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인생이 재미있을 수 있을지 고민해요. 저도 이전에는 좋은 연기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 금방 지쳤죠. 문득 반대로 생각해 보니 재미가 있다면 오히려 더 오래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노력하면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시도하고 그치는 일에 지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러 번의 시도가 있고 난 뒤에야 수면에 드러날 만한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항상 주변인이 무언가에 대해 물어보면 일단 해보라고 조언한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생각했던 바와 달라 실망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무엇보다 시도해야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기 생각과 달라 실망하는 일에 지치는 사람이 제 주변에도 있어요. 저는 항상 더 많이 도전해보라고 조언하는 편이에요. 해봐야 내게 맞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고, 다른 현명한 방안이 경험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발을 담가 보며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인생은 길잖아요. 무엇이든 시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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