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어느 세대나 그랬듯, 현 젊은 층도 자주 듣는 물음이다.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그래서 알아봤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기자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기자를 따라 청년이 열광하는 것을 파헤쳐보자.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인식이 강하던 우리의 전통이 최근 청년들에겐 ‘할매니얼’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고 멋스럽게 다가가고 있다. 특히나 그 흐름은 전통 먹거리에서 강한 기세를 띤다. 다양성은 어느 술에도 견줄 수 없는 전통주부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하다는 일명 ‘겉바속쫀’으로 이름을 날린 약과, 그리고 이름부터 생소한 ‘개성주악’ 까지! 그 유행의 물결을 헤엄친다.
박희진 기자
할매니얼, 고놈 참 ‘힙’스럽구나
최근 젊은 층에게 전통문화가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전통문화를우리만의 멋진 것, 일명 ‘K-힙’이라는 명칭까지 만들어냈다.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던 문화 사대주의 분위기가 사라지며, 우리 고유의 전통을 더욱 멋있는 것으로 느끼고 알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추세다. 김시범(국립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져 전통에 대한 관심도 함께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청년층 사이에서의 K-힙은 ‘할매니얼’ 트렌드에서 출발한다. 할매니얼이란 ‘할머니’와 ‘밀레니얼’이 합쳐진 신조어로, 할머니들이 먹고 입을 법한 음식과 패션 취향을 가진 젊은 세대를 뜻한다. MZ세대에게 할매니얼 트렌드는 전통문화가 기존의 대중적인 콘텐츠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게끔 만들었다.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할머니의 취향과 스타일이 하나의 개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현 청년층에게 K-힙은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최근 청년들이 과거를 재해석해 소비하기에 익숙한 것이 할매니얼 트렌드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현재의 젊은 층은 이미 한 차례 새로움(new)과 복고(retro)가 합쳐져 만들어진 ‘뉴트로’ 열풍을 경험한 바 있다.이에 떠오르는 할매니얼 트렌드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명욱(연세대학교미식문화 최고위과정) 교육원장은 “뉴트로와 마찬가지로 할매니얼 트렌드도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영역”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과거보다 청년 세대와 조부모 세대의 교류가 증가했다는 점도 할매니얼 트렌드의 원인으로 주목되고 있다. 과거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며 자연스레 조부모와 함께한 시간이 많아지면서 옛 취향과 스타일을 받아들이는데 불편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MZ세대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교류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따라서 일부 젊은 층은 부모보다 조부모와 더 깊게 교류한다. 결국 어르신의 취향인 음식과 옷 등이 젊은 세대에게 편하고 익숙하게 다가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애주가들은 전통주로 집합하라
언제까지 소주와 맥주만을 마실 것인가.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 이제는 전통주에 빠질 시간이다. 충무로에서 200여 종의 다양한 전통주를 판매하는 전통주 전문 판매점 ‘술술상점’을 찾았다. 술술상점은 ‘중구청년공동창업사업’에 선정돼 문을 열게 된 곳이다. 청년 점장과 함께하는 술술상점은 SNS를 통해 찾아오는 젊은 층의 ‘전통주 아지트’였다. 매장에서는 다양한 전통주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추천해줘 자신의 취향과 가까운 전통주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탁주부터 증류주 등까지 전통주가 가진 다양성은 MZ세대 각자만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효진(술술상점) 점장은 “젊은 층에는 ‘가성비’ 있고 취향에 맞는 술을 권하는 편”이라며 “전통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달콤한 막걸리를 위주로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주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통주를 ‘옛날 술’이라고 바라보던 기존의 인식이 점차 사라지고, ‘트렌디한 술’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됐다고 분석한다. 전통적인 제조법만을 따라가지 않고 각자만의 특별함을 추구하면서 나타난 변화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최근의 전통주 시장을 이끄는 신규 창업자들은 명절에 마시는 이미지가 강하던 전통주를 소주와 맥주처럼 일상적인 술로 여기게끔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명교육원장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회식이 사라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전통주도 마니아층이 형성돼 전문성을 찾아 전통주 판매점을 찾는 사람이 증가한 것”이라고 술회했다.
이 정도 인기는 아직 약과지
할매니얼 트렌드의 대표 전통음식은 무엇일까. 바로 ‘약과’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큰 이목을 끈 약과를 얻기 위해 온라인으로 구매를 시도했다. 약과 티케팅, 일명 ‘약케팅’을 도전한 것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일주일동안 몰두한 도전을 실패하니 오기가 생겨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약케팅을 통해 ‘남이 구하기 어려운 것을 얻어낸다’는 희소성과 더불어, 시도 자체에서 오는 짜릿함을 느꼈다. 청년들 사이에서 약과 사랑이 뜨거운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청년층은 약과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성공 여부를 떠나, 직접 해보는 경험적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맛있다는 약과를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렵사리 학교 근처에서 중고 거래를 통해 구했다. 겸사겸사 SNS에서 품절 대란이었던 모 기업의 ‘벌꿀 약과’도 함께 구매했다. 벌꿀 약과와 어렵게 구한 유명 약과, 그리고 유명 약과 가게에서 부서진 약과를 모아 파는 파지 약과 세 종류를 모두 모아 먹어보니, 확실히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신 것과 차이가 있었다. 본디 약과는 부드럽게 씹히며 많이 달지 않은 간식이었다. 그러나 벌꿀 약과는 달콤하고 페이스트리 같은 식감을 가졌고, 유명 약과 가게의 약과와 파지 약과는 겉이 바삭하고 속은 쫀쫀한 식감이었다. 약과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맛있는 약과를 접하니 호감이 생긴다. 청년들은 전통음식의 익숙함에 더해 정말 ‘맛있어서’ 열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약과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인 ‘아이스크림에 약과 올려 먹기’를 시도해봤다. 최근 약과와 더불어 많은 전통 디저트를 그 자체만 먹지 않고 다양한 레시피로 활용해 먹는 것이 인기를 끌고 있다. 확실히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약과는 그냥 먹는 것보다 입안의 텁텁함을 덜어줬다. 달콤 시원한 것이 은근히 별미였다. 이제는 전통 디저트의 레시피가 다양성을 찾아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지 전통을 보존하기보다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명 교육원장은 “MZ세대는 옛날 것을 옛날식으로 즐겨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다 보니 새로운 시도에 거침이 없다”며 “이러한 도전이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겨나 문화 산업도 함께 발전한다”고 말했다.
주악 주악 쫀득한 개성주악
개성 지역에서 정월 초에 해 먹었다는 떡인 개성주악은 최근 청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약과의 뒤를 이어받아 전통 음식의 유행 가도를 달리는 것이다. 개성주악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다양하게 인기를 끄는 도넛의 유행과도 맞물리는 듯하다. 그 맛이 마치 한국의 도넛과 같다고 하니, 도넛에 대한 관심이 개성주악으로까지 뻗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개성주악도 역시 MZ세대는 절대 그 자체만을 즐기지 않는다. 도넛 위에 다양한 토핑을 올리는 것처럼, 개성주악도 그 외관이 나날이 화려해지고 있다. 개성주악의 변모는 보기에도 더 먹음직스럽고 오리지널 개성주악에서는 느낄 수 없던 또 다른 맛을 경험시킨다.
다양한 토핑이 올라가 예쁘고 맛있기로 유명한, 저녁쯤엔 모두 팔려 못 사 먹는다는 개성주악을 구하러 압구정으로 향했다. 그곳엔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은 오리지널 개성주악부터 과일이나 초콜릿이 한껏 올라간 개성주악까지 다양한 종류가 준비돼 있었다. 끌리는 토핑대로 골라 사 와 먹어보니 뇌리에 한 마디가 스쳤다. ‘이게 K-도넛?!’, 그렇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먹어본 듯한 찹쌀도넛 같은 맛을 가진 녀석이었다.
청년들은 왜 개성주악에 환장할까. 분명 전통음식 사이에서 부는 고급 이미지의 확산이 한몫했을 테다. 과거 명절에 나눠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던 전통디저트가, 이제는 소량으로 즐기는 고급 간식이 됐다. 이는 SNS를 통해 개성주악의 맛을 넘어 만드는 과정까지도 익숙해진 청년 들이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고스러움을 인식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명 교육원장은“과정을 알고 보니 매우 고급스러운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안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다”며 “전통이라는 것의 가치 소비를 즐기는 소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들어보고, 그 과정을 경험해 봐야만, 개성주악을 위한 소비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찹쌀가루부터 조청까지 재료를 구매해 직접 해 먹어봤다. 즙청을 만들고 반죽을 굴렸다. 레시피대로 물을 부었는데, 어라? 반죽이 뭉쳐지지 않았다. 30분 넘게 애를 쓰다 겨우 굴린 반죽을 동그랗게 말고 구멍을 뚫어 기름에 튀겼다. 만들어 놓았던 즙청에 굴리고 토핑까지 올리니 그럴싸한 모양새가 완성됐다. 완성하고 먹어보니 사 먹었던 것과 비교했을 때 맛이 생각보다 싱거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싶어 레시피를 다시 뒤졌다.아뿔싸, 튀긴 반죽을 즙청에 일정 시간 담가둬야 했다. 또, 반죽에 넣었던 계핏가루는 즙청에 넣는 용도였다. 소중한 2시간과 비용이 이렇게 날아가 버렸다. ‘사 먹고 말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직접 만들어보니 개성주악을 판매하는 상점이 하나, 둘 늘어나는 추세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익반죽*이 어색했던 탓이었을지, 아니면 요리 자체가 어색했던 탓이었을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었다. 종종 해 먹던 전자레인지로 만들어 먹는 간단한 초콜릿 맛의 빵은 비교 조차 되지 못했다. 분명히 기자가 느낀 과정의 수고스러움을 경험해본 청년들이 존재할 것이다. 만들어보면 느낄 수 있다. 전문점에서 나오는 노하우와 장비에서 나오는 맛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임을 말이다. 김 교수는 “체험은 그 가치를 인정하는 계기를제공한다”며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추세도 일종의 체험 층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언했다.
곁가지로 경험해본 우리의 전통 먹거리는 청년층에게 익숙함에서 비롯된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들어봐도 어딘가 낯익은 전통음식이 가진 그 매력에퐁당 빠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전통음식을 더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청년들의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명 교육원장은 “지금은 시작에 불과할 뿐 전통 차와 전통디저트와 같은 시장은 훨씬 더 커질 것”이라며 “청년층이 기성세대의 가치와 고정관념을 깨 자유로운 시각과 생각을 갖고서 전통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선한 영향력은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익반죽 : 곡물의 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