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긴장 팽팽했던 노동절대회… “생존 위한 투쟁” (한성대신문, 589호)

    • 입력 2023-05-08 00:01
    • |
    • 수정 2023-05-10 12:38
▲지난 1일 세종대로, 노동절대회 현장 [사진 : 박희진 기자]

노동자의 외침이 거리에 울려퍼졌다. ‘2023 세계노동절대회(이하 노동절대회)’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주도로 지난 1일 개최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7월 총파업’을 결의하는 등 총력을 다해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133년의 역사에 빛나는 5월 1일 노동절, 그 유래는 19세기 중반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노동자를 착취한 대가로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던 19세기 중반, ‘하루 8시간 노동제’의 관철이 노동자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이에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제의 쟁취를 위해 ‘미국노동조합총연맹’이 총파업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후 1889년, 3년 전 미국 노동자들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5월 1일을 노동절 삼기로 결정했으며,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노동자의 권리쟁취를 위해 동맹파업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이처럼 노동절은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행동의 첫걸음으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투쟁은 현대에 이르러 활발히 전개됐다. 1970년 유명무실했던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가 있었고, 기업의 부당한 대우와 정부의 무력 행사에 여성 노동자들이 농성으로 대응한 ‘YH사건’이 있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광산 노동자들이 기업의 노동조합(이하 노조) 활동 개입, 부당임금 등에 크게 반발했던 ‘사북사건’과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대규모 동맹파업이었던 ‘구로동맹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일하기 좋은 나라’로 거듭났을까. 직장갑질119와 용혜인(기본소득당) 의원이 산업재해 신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산업재해 신청이 2019년 72건에서 2021년 158건으로 급증했다. 또한 2019년에서 2021년까지 산업재해로 인정된 자살 161건 중 58건의 원인은 ‘과로’였다. 올해 3월에는 대구광역시의 건설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조차 아직 먼 길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별로 노조가 구성되고, 그 노조가 각 기업과 협상하는 ‘기업별 교섭’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산업 구조 변화로 인해 늘어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간접고용종사자**등에게는 기업별 교섭이 적합하지 못한 방식이다. 사업장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고 영향을 주고 받는 사용자 또한 여러 명이기에, 특정 기업과 협상하는 방식으로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산업별로 노조를 만들고, 교섭 또한 산업 단위로 이뤄져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된다.

이처럼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였다. 민주노총은 지난 1일 서울을 포함한 전국 15곳에서 노동절대회를 개최했다.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노동절대회는 대회사와 연대사, 각 노조 대표자의 발언과 격문 낭독, 행진의 순서로 진행됐다. 대회사에서 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은 “산업별 교섭을 보장해야 모든 노동자가 함께 승리할 수 있다”며 “세계노동절 정신에 따라 성별, 나이, 인종, 국적을 넘어 모두 함께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연대사를 맡은 하원오(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에서 시작된 날이 바로 노동절”이라며 “농민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전했다.

이후 발언을 위해 단상에 오른 김정원(전국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과 박완규(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 부위원장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으며 함께 투쟁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격문은 양 위원장이 대표로 낭독했다.

▲노동절대회에 참여한 공공운수서비스노조 구성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 정상혁 기자]

마지막 순서인 행진은 세 갈래로 갈라져 진행됐다.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수노조 ▲전국대학노조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 ▲전국언론노조 ▲전국민주여성노조 ▲전국교직원노조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조연맹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는 서울역을 거쳐 용산 대통령실로 향했고, ▲전국금속노조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은 광화문을 지나 헌법재판소 방면으로 행진했다. 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조는 종로를 통과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까지 나아갔다. 행진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월급말고 다 올랐다 최저임금 대폭인상’과 같은 노동문제와 관련한 문구는 물론, ‘전세사기 물가폭등’이나 ‘안전인원 충원으로 지하철안전 확보하자’ 등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보였다.

이날 노동절대회에는 청년들도 함께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선배들을 기림과 동시에, 노동권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고려대학교 민주학생기념사업회’가 참가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장하진(고려대학교 민주학생기념사업회) 위원은 “일상 속에서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 나섰다”며 “이주노동자나 대학 내 청소노동자 등 여전히 권리 실현이 어려운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현장으로서의 대학에서 활동하는 노조들도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권용석(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 조합원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라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참석했다”고 전했다.

한편, 임기 중 첫 번째 노동절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1일 그의 페이스북에 ‘진정한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사법치주의를 확립하고, 기득권의 고용세습은 확실히 뿌리 뽑을 것’이라 작성했다. 정부·여당과 노동계는 여전히 대립을 좁히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위탁 등을 체결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 기사 등이 있음

**간접고용종사자 :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고, 파견이나 하청 등의 방식으로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

정상혁 기자

[email protected]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