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어느 세대나 그랬듯, 현 젊은 층도 자주 듣는 물음이다.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그래서 알아봤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기자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기자를 따라 청년이 열광하는 것을 파헤쳐보자.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이 탐나는 순간, 한 번쯤 있지 않은가? 향기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채 우리 주변을 맴돈다. 최근의 청년은 향기를 이전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방법으로 향유하고 있다. 팝업스토어에서 즐기는 향수부터, 공간을 꾸미는 데 활용되는 ‘인센스 스틱’, 그리고 친환경 비누까지. 청년들의 후각이 머무는 곳에 동행한다.
박희진 기자
유일무이, 나만의 향을 위해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향’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향기는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사랑받는다. 박초희(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향기는 자신의 스타일을 일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향기에 관심이 높아진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일각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에 따른 마스크 착용이 향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계기라고 지목한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색조 화장 등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효과를 잃자, 사람들은 후각이 자극되는 향기로 시선을 돌렸다는 의미다. 임관우(서울디지털대학교 뷰티미용전공) 교수는 “본인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 중 시각적인 부분이 일부 차단되는 문제가 생기자, 후각적인 방법으로 본인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후각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으로 청년들은 니치 향수를 택했다. 니치는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니키아(nicchia)’에서 파생됐다. 니치 향수는 희귀 성분과 천연 향 등과 같은 주변에서 흔치 않은 고급 재료를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향수와 달리 토마토 향, 가죽 향 등과 같은 특색 있는 향을 갖는다. 임 교수는 “본인의 취향과 가장 유사한 향수 제품을 찾기 위한 디깅소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다온(센트오르간) 심리조향사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향수를 찾는 데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청년세대는 자신의 대한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심리가 반영돼, 자신을 위한 소비는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한정판 상품 등 다시 구하기 어려운 상품을 되파는 ‘리셀(재판매)’이 확대되면서 향수로 재테크를 하는 ‘향테크’ 문화도 나타나고 있다. 향테크는 한정판 향수에 투자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특정 조향사가 특정 연도에 조향한 향수는 다시 구입할 수 없기에 좋은 상태로 보존된 한정판 향수는 가치가 증가한다. 임 교수는 “한정판에 대한 소비문화는 향에서 시작했다기보단, 리셀이 증가하며 해당 문화가 향수까지 번진 것”이라고 술회했다.
향수, 맡아야 산다
좋아하는 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신은 향수를 어디에서 구매하는가. 최근에는 오프라인 향수 매장이 주목받는 추세다. 오프라인 향수 매장은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전문가와의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거와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오프라인 향수 매장은 행사를 통해 매체의 관심을 끌고, 인플루언서와의 협력을 통해 홍보를 진행하기도 한다”며 “이는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해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향수 제작 기업은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팝업스토어는 인터넷의 팝업 창처럼, 사람이 붐비는 특정 장소에서 짧은 기간 운영되는 오프라인 매장을 의미한다. 임 교수는 “팝업스토어는 브랜드가 가진 향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향수 팝업스토어는 어떤 형태로 청년을 유혹할까 궁금해 ‘이구성수’에서 진행된 ‘SW19(에스더블유나인틴)’의 팝업스토어를 방문했다. 향수라면 당연히 가느다란 막대모양의 시향지에 뿌려 맡아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곳에서는 향수가 담긴 병에 연결된 펌프를 눌러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마치 실험하는 느낌이 물씬 풍겨 기존의 방식에 비해 색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SW19 제품들의 향 분위기와 어울리는 사진엽서에 향수를 시향하고 간직할 수 있었다. 유한승(무신사 공간경험팀) 공간세일즈파트장은 “이구성수의 방문객 중 20대 방문객 비율이 60% 이상 되는 등 젊은 층의 관심과 이벤트 참여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향기가 가는 길을 따라
청년에게 향기는 공간까지 장악했다. 자신의 향으로 공간을 인테리어하는 일명 ‘향테리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젊은 층의 향테리어는 ‘리추얼 라이프(Ritual Life)’의 일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리추얼 라이프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뜻한다. 임 교수는 “젊은 층은 생활 방식의 루틴화를 넘어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에 향을 더하는 과정과 시간 또한 루틴화시킨다”고 전했다.
향테리어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지만, 최근 젊은 층은 그 수단 중 하나로 ‘인센스 스틱’을 활용한다. 인센스는 ‘불태우다’, ‘밝히다’의 의미인 라틴어 ‘인센데르(Incendere)’에서 유래됐다. 인센스 스틱은 숯이나 나무 반죽 등에 향료를 더해 향기나는 연기를 방출하도록 만든 막대기 모양의 제품으로, 휴식과 안정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향불을 피운 후 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향기를 즐기는 ‘향멍’ 트렌드를 생성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시각적인 부분과 후각적인 부분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문화”라며 “다만 실내 공간에서 환기하지 않고 향을 피우는 경우 폐 질환 등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자도 인센스 스틱을 판매하는 매장에 방문해 직접 구매해 봤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향기는 자연스레 인센스 스틱의 소비를 부추긴다. 인센스 스틱 좀 사봤다는 동료 기자의 추천으로 가장 보편적인 향과 은은한 향, 두 가지를 골랐다. 인센스 스틱을 끼우는 홀더에 꽂아 불을 붙인다. 피어오르는 향기를 자연스레 멍하니 보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뇌 속이 말끔히 비워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공간이 향으로 가득 메워진다. 취향에 맞는 향으로 가득 찬 공간은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며칠이 지나자 마치 중독된 듯 생각날 때마다 인센스 스틱을 태우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은 듯하다.
비누로 향기를 입다
향기와 더불어,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는 최근의 가치소비 트렌드가 반영돼 ‘비누’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몸에서 나는 향을 가꾸는 것에 비누가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비누는 몸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취향에 맞는 향기 선호도에 따라 개인의 감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고 말했다.
가치소비 트렌드에 동참하고자 기자도 친환경 비누를 만들어봤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쉽게 친환경 비누 만들기 키트를 구매할 수 있었다. 동봉된 비누 베이스를 녹이고, 작은 종이컵 안에 천연 분말을 넣고 정제수로 개어줬다. 단호박, 클로렐라, 원두분말이었다. 식탁에서도 본 익숙한 재료다. 이후 베이킹소다와 레몬 향이 나는 천연 에센셜 오일을 섞고 틀에 부어 완성했다.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인지 모두 알 수 있다는 점이 직접 만든 비누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들어가는 향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 나의 취향을 가득 담아 만들 수 있었다. 완성한 비누를 동료 기자들과 함께 사용했는데, 보통의 비누보다 보습 효과가 좋다는 평을 받았다. 완성하고 사용해보니 ‘아로마 테라피가 이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비누를 만드는 내내 느껴지기도 했다. 이에 더해 친환경 비누 만들기를 통한 가치소비, 청년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제대로 깨달았다.
*디깅소비 : ‘파다’를 뜻하는 영단어 ‘dig’에서 파생됐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품목이나 영역에 깊게 몰두하는 행위가 관련된 제품 소비로 이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