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 외교 노트> 미국의 대쿠바 제재, 에너지로 숨통을 조이다 (한성대신문, 619호)

    • 입력 2026-03-0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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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03-03 00:02

미국이 쿠바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미국은 쿠바 정책이 미국 안보에 비상한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이유로 대쿠바 에너지 제재를 강행했다. 그러자 쿠바는 ‘국가 비상 조치’를 발령했다. 미국이 중국•러시아 등 제3국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하면서 갈등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쿠바가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경제 협력을 확대하자 미국은 대쿠바 제재라는 고삐를 죄고 나섰다.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실은 유조선의 이동을 봉쇄하며 쿠바의 원유 수급 경로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행정명령을 통해 다른 국가의 석유 판매와 공급까지 제한하는 조치를 내리며 제재 범위를 확대했다. 임수진(대구가톨릭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는 “미국의 조치는 경제 압박을 넘어 쿠바의 에너지 공급망 전체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유 수입이 끊긴 후 쿠바 사회는 마비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 쿠바는 연료 부족으로 수도•전력 등 공공 서비스 공급을 전반적으로 축소한 상태다. 미국은 쿠바의 핵심 원유 공급국인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 산업 및 관련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고, 쿠바와 석유를 운송•거래하는 선박•금융기관•중개 기업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달러 결제망 접근을 차단해 국제 거래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조치도 병행되고 있다. 하상섭(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 교수는 “에너지 부족은 국가 행정과 공공 서비스 운영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며 “항공 운항과 물류 이동에 차질이 발생해 생필품 공급도 제한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경제를 명분으로 한 정치적인 압박 전략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1960년대 초반부터 쿠바가 반미 성향 국가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자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경제 제재에 착수했다. 이후 양국 관계는 대립 구도로 고착화됐고 이번 대쿠바 제재 역시 정책 변화를 유도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임 교수는 “양국의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오랜 대립의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에너지 주도권 확보를 둘러싼 역내 경쟁 구도도 자리한다. 미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에너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공급망 우위를 선점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 1위 수준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가 주요 변수로 꼽히는 가운데, 장기간 반미 노선을 유지해 온 쿠바와의 갈등 역시 이러한 에너지 경쟁 구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하 교수는 “에너지 공급망 통제가 정치•경제 질서를 좌우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중남미 지역에서 쿠바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자국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전략도 반영돼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직접적인 군사 개입 없이도 에너지 제재를 통해 역내 국가들의 정책 방향과 대외 협력 구도를 조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미국이 설정한 지역 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읽힌다. 총성 대신 금융망과 에너지 공급망을 지렛대로 삼아 권력 구도를 관리하려는 외교 전략이 전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현재 제재는 군사력 없이 국가 기능을 제한하는 압박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제재가 제3국으로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쿠바는 미국의 제재를 ‘경제 전쟁’으로 규정하며 유엔 등에 제재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국제 사회에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거나 경제 협력을 지속하는 제3국에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압박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하 교수는 “제재 범위가 제3국까지 확장되면서 사실상 2차 제재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사회는 이번 조치 이후 제재를 통해 국가 기능 전반을 압박할 수 있다는 선례가 남을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쿠바 제재와 같이 에너지 접근을 차단할 경우 단기간 내 사회•경제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는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현재 미국이 추가로 쿠바를 얼마나 압박할지는 불명확하지만 이번 제재를 통해 에너지 접근 차단이 국가 운영 전반에 주는 영향력을 확인한 것은 분명하다”며 “에너지 접근 차단이 국가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축적되면 향후 국가 제재 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임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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