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겨진 이에게 드리워진 그림자 (한성대신문, 592호)

    • 입력 202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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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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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명. 지난 6월 한 달간 고의적 자해, 즉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 잠정치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타국에 비해 높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을 만큼, 자살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자살 이후 남겨진 사람들, ‘자살유족’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관심 밖이다. 가족이나 친구 등 중요한 주변인을 자살로 떠나보내고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겪는 사람을 자살유족이라고 일컫는다. 자살유족은 죄책감이나 트라우마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자살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은 편이다.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적 차원에서 자살유족에 대한 지원 사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자살유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 이에 본지는 현행 자살유족 지원 사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알아본다.

김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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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박희진 기자]

자살유족에 대한 정의는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고인의 친인척, 친구, 애인 등 가족과 지인만을 지칭하기도 하고, 고인의 지인은 아니지만 자살 소식을 접하거나 목격한 이후 정신적 영향을 받은 사람을 자살유족으로 보기도 한다. 범위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정신적인 영향을 받고 고통을 겪는 사람을 말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는 “자살에 영향을 받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이상으로 퍼져 있다”며 “친구나 가까운 동료, 지인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유족은 ‘자살생존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등 통일된 명칭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살생존자는 자살을 시도한 이후 생존한 사람으로 이해될 수 있기에, ‘자살유족’이라는 표현을 지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지혜(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사후관리지원부) 부장은 “자살 생존자의 의미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법령에서도 유족이라고 지칭하기 때문에 자살유족이 적절하다”고 전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자살유족에 대한 통계가 작성되지 않고 있어 정확한 규모도 알기 어렵다. 다만 자살 1건당 5~10명의 자살유족이 발생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의거하면, 자살유족이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 추산할 수 있다. 약 1만 3천여 명의 자살자가 발생한 2021년에는 자살유족이 6만 5천~13만여 명이 발생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조 교수는 “현장에서 자살유족 모임을 가져 보면 직계 가족 외에도 가까운 친척, 친구가 유족으로서의 아픔과 위험을 가지고 오는 경우를 자주 본다”며 “그렇다면 자살 1건당 발생하는 자살유족의 수를 10명으로 보는 것도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살유족의 자살위험은 자살유족이 아닌 사람에 비해 높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었을수록,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많은 사람이었을수록 자살위험도 높아진다. 삼성서울병원이 발표한 「자살유가족 지원방안 연구(2018)」에 따르면, 자살유족에게 자살 계획을 세운 경험이 있는지 물었을 때 ‘있다’는 응답이 22.7%, ‘없다’는 응답이 77.3%였다. 일반인의 3.3%가 ‘있다’고, 96.7%가 ‘없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했을 때, 자살유족이 자살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살 시도 경험의 유무를 묻는 질문에도 자살유족의 20.5%가 ‘있다’고 응답했지만, 일반인은 3.3%만이 ‘있다’는 답변을 남겼다. 육성필(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위기관리상담전공) 교수는 “자살유족은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며 “가족 내에서 자살이 발생할 경우 자살을 문제해결의 한 방식으로 학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자살유족은 일반인에 비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 쉽지만, 사회적 차원의 지원과 보호는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자살 고위험군’의 자살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자살유족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철(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유족이 겪는 충격은 이성적 판단을 어렵게 해 일상 속의 일반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것도 힘들게 한다”며 “포괄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자살유족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자살유족 지원을 위해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자살이 발생하면 기관이 먼저 자살유족을 찾아 행정·경제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고인의 장례 등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를 밟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며, 고인 사후 남겨진 자녀의 학자금 지원, 함께 거주하던 사람이 자살한 경우 일시 거처 마련을 위한 금전적 지원 등이 이뤄진다.

‘자살유족 동료지원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자살유족이 또 다른 자살유족을 도울 수 있도록 동료지원 활동가를 발굴하고, 자조모임 등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한다. 자조(自助)모임이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살유족 간의 모임으로, 서로 아픔을 공유하며 치유해 나가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원 사업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 서비스는 전국 17개 시도 중 9개 시도에서만 운영되고 있어, 일부 지역에서는 수혜를 입을 수 없다는 지점에서다. 서 부장은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 서비스는 자살유족이 사별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조모임 또한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자조모임은 각 지역에서 운영되는 자살예방 및 자살유족 지원을 위한 정신건강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 등에서 주선하는 형태다. 이 같은 자조모임은 모임의 횟수가 적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 달에 한 번, 적게는 분기당 한 번 열리는 자조모임은 대부분 치유를 위해 운영되다 보니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치유가 이뤄져 사람들이 떠난다. 조 교수는 “모임에 몇 번 나오다 떠난 사람들과 지속적인 연결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을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결국 자살유족이 먼저 자조모임이나 커뮤니티 등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죄책감을 포함한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 놓인 자살유족은 자신이 자살유족임을 선뜻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기관의 자조모임에 대한 제의 또한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살유족인 김혜정(자살유가족과따뜻한친구들) 대표는 “자살유족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을 받을까 봐 두려운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며 “자살유족이 스스로를 자살유족이라고 노출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기에 적극적인 자조모임 주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살유족 지원을 위해 투입되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각 지역에 전문 상담이나 자조모임 주선 등 자살유족 지원 업무와 자살예방 업무를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 등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 전문성을 갖춘 실무자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제17조에서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에 대한 자살예방 교육 내용을 정할 때 자살유족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자살유족 지원에 대한 사항이 필수적으로 교육되지는 않고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자살예방상담전화’ 또한 운영되고 있지만, 전화 응대율이 2020년 기준 36.3%에 그친다.

일각에서는 담당 인력에 변동이 발생하는 부분 또한 문제라고 꼬집는다. 자살유족과 전담 사회복지사 간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자주 바뀌는 직원에게 자살유족이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고 도움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자살유족에 대한 미비한 지원이 예산확보와 관련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인력이 부족한 것 또한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 충분치 않기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025년까지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 서비스의 전국 확대를 위해 2023년 예산이 배정됐다가 무산돼, 확대가 어려워졌다. 육 교수는 “정부나 시민들이 자살의 심각성과 자살유족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살유족에 대한 원활한 지원을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은 자살 및 자살유족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인식이다. 대부분이 자살을 개인의 문제 혹은 가정의 문제로 인식하고, 자살유족에게 사회·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자살이 벌어지는 까닭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고, 그 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 교수는 “자살 위험이 높은 자살유족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자살예방”이라며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나종호(예일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또한 “자살을 사회적 죽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우리 사회에서 자살 예방을 위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자살위험이 높은 자살유족을 보호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살유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관련 예산 편성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 서비스의 확대를 포함한 자살유족 지원 사업 확대, 인력 확충 등이 이뤄지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서 부장은 “예산이 확보된다면 자조모임이 확대되거나 전문 상담이 가능해지는 등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자조모임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서는 모임의 형태가 다양해져야 한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현재 공공기관 주선으로 진행되는 자조모임 다수는 심리적 치유를 주목적으로, 대화나 상담 등의 활동에 그친다. 나아가 자살유족의 사회적 고립 해결과 인간관계 재연결을 위한 활동적인 모임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실제로 자살유족 정기모임과 문화행사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조 교수는 “영화 감상, 식사 등 활동을 곁들여 대화하다 보니 더욱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유족이 늘었다”고 술회했다.

자살유족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살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자살’에 관한 담론을 드러냄으로써 자살률이 높은 것이 사회적인 문제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자살유족도 자살 문제의 당사자로서 사회나 국가에 당당히 개선을 요구할 수 있도록 변화돼야 한다. 풍토 개선을 위해서는 대학을 포함한 학교의 자살 인식 관련 교육이 우선 개선돼야 할 것이다. 이때는 토론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된다. 자살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자살유족의 고통을 알아주는 마음과 태도가 위험에 처한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교육이 개선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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