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중고 열풍, 새로운 소비 패러다임 (한성대신문, 594호)

    • 입력 202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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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11-09 19:42

<편집자주>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어느 세대나 그랬듯, 현 젊은 층도 자주 듣는 물음이다.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그래서 알아봤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기자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기자를 따라 청년이 열광하는 것을 파헤쳐보자.

당신은 중고 거래를 해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새 상품을 구매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젊은 층은 보다 복합적인 방법으로 중고 거래를 애용하고 있다. 더 쉽고 가까운 거래를 가능하게 만든 ‘중고 거래 앱’, 희귀템으로 가득한 ‘빈티지 마켓’부터 가성비*와 감성의 끝판왕 '중고폰', 그리고 중고 거래에 가치를 더하기 시작한 중고 물품까지! 물건을 더 값지고 알차게 사용하려는 청년들의 사고를 탐험해 보자.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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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발견한 중고의 매력

중고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남이 썼던 물건에서 오는 ‘불편함’에서 남에게는 필요 없지만 나에게는 괜찮은 물건이라는 ‘새로운 발견’으로 청년층의 인식이 변화한 탓이다. 최근에는 서로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팔며, 상부상조하는 하나의 창구가 마련됐다고 느끼는 것이다. 정혜진(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새로움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과정”이라며 “영어로도 ‘used(전에 사용했던)’라는 단어 대신 ‘preloved(전 소유주가 극진히 아꼈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사람이 정성스럽게 잘 사용한 후, 자신보다 잘 사용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중고를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신의 부를 뽐내거나 과시하는 ‘플렉스’ 소비 문화가 유행이었지만, 최근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며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려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사고 싶은 물품에 있어 구매를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거의 새 상품과 다를 바 없는 물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자신이 마침 찾던 물건을 좋은 조건으로 손쉽게 획득할 기회를 통해 만족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의 중고 소비 문화가 유행하는 이유는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빠르게 제작돼 빠르게 유통되는 ‘패스트 패션’ 산업의 옷을 만 드는 데 필요한 원료나 합성 재료를 제작하는 과정 속에서 대량의 물과 기름 등이 사용된다. 또한 옷감의 질감이 떨어져 헤지고 버려지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배출된다. 관련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며 지속 가능한 ‘친환경’에 관심을 두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 교수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거나 과소비 자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에 따라 자연스레 중고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중고 직거래를 통해 노트북 케이스를 전달한다. [사진 : 김유성 기자]

더욱 간편하게

온라인을 통한 거래가 익숙한 청년들은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앱의 경우 직접 만나지 않아도 온라인 채팅으로 거래해 택배나 우편으로 거래 물품을 발송할 수 있어 비교적 쉽게 거래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와닿는 것이다. 김우혁(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다른 세대와는 달리 청년 세대는 중고 거래 앱 형태인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한데, 이는 성장기 시절부터 디지털 플랫폼에 노출되며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동시에 직접 만나서 물건을 전달하는 직거래도 성행하고 있다. 온라인 거래의 경우 택배비나 우편비가 별도로 부과되기에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물품을 얻어내기에는 부적합하다. 또한 온라인 거래는 물건이 제대로 오지 않았거나 다른 물건을 배송 받는 등의 사기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대조적으로 별도의 배송 비용이 필요 없는 직거래는 많은 청년들에게 인기다. 자신의 물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직거래는 사기 발생 가능성도 비교적 낮다. 동덕여자대학교 국제경영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채연 학생은 “포토 카드를 구매하려 했는데 동네에서 직거래를 할 수 있어서 사기와 같은 범죄 가능성에 비교적 안심하고 나갔다”고 말했다.

기자도 직접 중고 거래 앱을 통해 쓰지 않는 노트북 케이스를 팔아봤다. 노트북 케이스를 깨끗하게 보이도록 잘 정리한 후 사진을 찍어 앱에 업로드했다. 중고 거래는 처음인지라 거래할 사람이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기대감 속에서 거래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거래 연락이 왔고 직거래를 통해 구매자에게 노트북 케이스를 전달했다. 기자에게는 쓸모를 다한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는 점을 거래를 통해 깨닫자, 물건의 가치는 일회성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램딜’에서 옷 무게를 잰다. [사진 : 황서연 기자]

빈티지 스타일의 귀환

다시금 불거진 레트로 열풍으로 청년들은 ‘빈티지**’한 옷 스타일을 찾기 시작했다.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 지나간 시대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늘어남에 따라 빈티지 스타일의 옷들이 유행하게 됐다. 김 교수는 “레트로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매개체이지만, 청년층에게는 독특하고 색다른 방향의 소비를 하는 요인이 된다”고 전했다.

일부 빈티지 옷은 이제 다시 팔지 않아, 즉 희소성이 강해 더 많은 청년들의 구매력을 자극한다. 이러한 희소성은 청년층에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도 된다. 현재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과거에 유행했던 스타일의 중고 옷을 한번에 모아둔 가게에 청년들의 발걸음이 많아진 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정 교수는 “빈티지 옷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고, 다양한 시대의 유행을 보여주는 아이템들을 다양하게 매치해 자신의 패션 지식과 감각을 뽐내기도 한다”고 밝혔다.

빈티지 마켓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옷의 무게를 재서 가격을 측정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옷의 종류나 가격에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무게로 가격을 측정하는 것은 청년들에게 더 저렴하게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선우 학생은 “옷의 무게로 가격을 측정하는 마켓을 최근 SNS 에서 알게 되었는데, 개별 가격으로 사는 것보다 저렴한지 궁금해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무게로 가격을 측정하는 ‘그램딜’에 직접 방문해 봤다. 인적이 드문 지하에 위치해 비교적 외진 장소에 있었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규모가 크고 이미 많은 청년이 그곳에서 쇼핑 중이었다. 기자도 좋은 옷을 놓치기 전에 얼른 옷들을 담기 시작했다. 한가득 널려 있는 옷 중에 기자의 취향에 맞는 옷들을 쏙쏙 골라내는 재미가 있었다. 일반 쇼핑몰에서는 구할 수 없는 빈티지 옷들이 곳곳에 있어 보물찾기 놀이도 떠올랐다. 너무 많이 담은 것이 아닐지 하는 걱정 속에 옷의 무게를 재봤다. 예상 외로 적은 금액에 재차 가격을 확인했다. 다섯 벌 넘는 옷을 후드티 한 장 가격에 득템했으니 말이다. 왜 청년들이 많고 많은 중고 물품을 구매하는 데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게 됐는지 알게 됐다.

▲기자가 구매한 중고폰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 : 김유성 기자]

굳이 새 휴대폰일 필요 없다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새 휴대폰의 가격에 부담을 느낀 청년들이 휴대폰 또한 값싸게 구매하기 위해 중고 거래를 이용한다. 몇 년 전에 출시된, 가격 측면에서 비교적 저렴한 모델을 새 휴대폰 대신 중고로 구매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새로운 버전의 휴대폰이 계속 출시되다 보니 지속해서 휴대폰을 교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그러한 유행 속에서 원하지 않아도 내심 휴대폰을 좋은 버전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새 휴대폰 구매에 대한 청년들의 반발”이라고 전했다.

옛날 느낌의 카메라 색감을 선호하면서 그 시대 특유의 카메라 색감을 구현하기 위해 중고폰을 구매하기도 한다. 최신 휴대폰에서 레트로 감성을 모방하는 필터 앱에 만족하지 않고 특유의 아날로그 질감을 제대로 표현한 옛날 중고폰을 구매하는 것 이다. 정 교수는 “화소 수가 낮은 ‘소박한’ 이미지를 구현함으로써 엄청나게 고화질인 이미지와 차별화하는 것을 추구하는 성향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청년들은 인터넷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의 일환으로 인터넷이 불가능 한 옛 중고폰을 찾기 시작했다. 디지털 디톡스는 일정 기간 전자기기의 사용을 멈춰 휴식이나 다른 활동 등을 통해 피로를 회복하는 방법이다. 옛 중고폰의 특성상 인터넷이 잘되지 않아 자연스레 인터넷과 멀어지기에 많은 이들은 이를 노려 옛 중고폰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명지대학교 아동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서정은 학생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느꼈다”며 “마침 폴더폰이 유행하던 시점이었기에 폴더폰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행에 힘입어 기자도 어린 시절 유행했 던 옛 중고폰 중 폴더폰을 중고 거래로 구매해 봤다. 이어 직접 하루 동안 스마트폰 없이 폴더폰으로만 생활해 봤다. 인터넷이 되지 않아 휴대폰 자체를 잘 들여 보지 않게 되는 과정에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표정 등 다양한 풍경이 기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편리함이 때로는 우리를 인터넷 세상에 갇히게 만들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굿윌스토어’에서 옷을 고르는 기자 [사진 : 황서연 기자]

중고를 통한 사회적 가치

중고 물품 거래의 목적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청년들이 소비를 하는 과정에서 타인과 사회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주는 ‘굿윌스토어’가 그 대표적인 가게다. 시설에서 자란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취지에서 시작된 굿윌스토어는 일반 기업에 취직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고용해 그들의 사회적 자립을 돕는다. 물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간접적으로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이끈다. 서 학생은 “예상치 못한 물건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는데, 나의 구매가 누군가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해 한 층 기분 좋게 구매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자도 직접 ‘굿윌스토어’에 방문해 봤다. 이미 많은 이들의 장터가 자리한 이곳은 커다란 장바구니를 가져온 채 쇼핑하는 이들도 있었고 지나가다 들러 물품을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와중에 그곳에서 일하는 한 청년 장애인이 눈에 들어온다. 중고 물품을 사는 것만으로도 타인을 돕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니, 더욱 선뜻 구매하게 된다. 물품 구매와 더불어 하나의 가치를 실현하기에 일반 중고 물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값지게 다가왔다. 마치 일석이조처럼.

*가성비 :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것

**빈티지 : 오래돼도 가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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