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습관도 성격도 아닌 '만성질환', 성인 ADHD (한성대신문, 597호)

    • 입력 202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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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3-04 00:00

강의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다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성적인 지각으로 학점에 지장을 주고 계획적인 삶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는 없는가. 단순히 습관, 성격상의 이유가 아닌 뇌과학적 문제로 나타나는 질환, ‘성인 ADHD’일 수 있다. ADHD는 주로 소아·청소년이 앓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들어 성인, 특히 20대 ADHD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대 ADHD 진료실인원* 현황은 2017년 5,761명에서 2021년 22,132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ADHD란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의미한다. ▲과잉 행동 ▲집중력 부족 ▲과도한 집중 ▲충동성 ▲감정 조절 불가 등이 주요 증상이다. ADHD는 기억력과 사고력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에서 계획 형성·이성적 사고 능 력 등에 관여하는 전전두엽의 발달이 지연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대표 증상인 과잉행동은 성인 ADHD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과잉행동이란 부적절한 상황에도 과도하게 수다스럽거나 산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전전두엽 내에서도 부위별로 발달 속도가 다르며 특히 과잉행동을 조절하는 부위는 먼저 성장한다. 때문에 소아·청소년 ADHD와 비교해 성인 ADHD에선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낮다. 원승희(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장하며 과잉행동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우선 발달해 과잉행동 증상은 호전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인 ADHD의 주요 증상을 ‘집중력 부족’ 이라고 말한다. 성인 ADHD 환자는 아주 간단한 일임에 도 끝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한 가지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느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세밀한 부분을 간과하는 실수가 잦으며 본인과 상관없는 시각적 측면과 작은 소리에 쉽게 반응한다. 서경현 (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집중력 저하로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성인 ADHD 환자들은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보상과 자극에 취약하기도 하다. 이에 그들이 수용하는 정보의 자극성에 따라 ‘과도한 집중’ 증상을 보인다. 게임이나 도박, 이성 관계 등과 같은 심한 자극에 집중하게 되면서 중독 증세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약속을 잊거나 본인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놓치는 문제도 발생한다. 김수지(연세우리가족상담센터) 센터장은 “성인 ADHD 환자들은 게임과 도박 등 여러 자극적인 중독에 극단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전했다.

충동과 욕구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성’도 성인 ADHD의 증상이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다른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고 무례하거나 부적절한 생각을 그대로 내뱉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행동해 타인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성인 ADHD 환자들은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충동성과 더불어 감정 조절 문제로 원만한 대인 관계를 가지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 특히 소아·청소년기부터 ADHD를 앓아온 환자들은 타인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이에 다수의 성인 ADHD 환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정신 질환을 함께 앓는다. 서보경(을지대학교 휴먼서비스학부 중독상담전공) 교수는 “성인 ADHD 환자는 타인에 의한 자존감 하락으로 사회적 활동이 점점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ADHD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전전두엽 발달 지연은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우리의 뇌는 신경세포 간에 주고받는 신호를 통해 감정과 감각 등을 느끼는데, 이 신호를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하는 역할을 ‘신경전달물질’이 수행한다. 신경세포에서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이 신경세포를 상호 연결하는 ‘시냅스’를 오가며 신호를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여러 시냅스로 구성된 ‘신경회로’ 를 통해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성취감 등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과 집중력에 영향을 주는 노르에피네프린 이 부족해 시냅스와 신경회로에 이상이 발생하고, 이것이 신경 네트워크** 와 전전두엽의 발달에 영향을 주며 ADHD가 나타나게 된다.

ADHD 환자에게 이상이 발생하는 신경회로는 ▲인지조절 네트워크 ▲디폴트모드 네트워크 ▲도파민 회로다. 이 중 도파민 회로를 제외한 두 신경 네트워크는 노르에피네프린의 부족으로 인해 이상이 발생하는 신경 회로이며, 도파민 회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도파민의 부족이 이상을 유발하는 신경회로다.

‘인지조절 네트워크’는 뇌에서 수용하는 정보를 처리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주의력 결핍과 충동성의 증세를 보이는 ADHD 환자에게는 이 신경 네트워크의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디폴트모드 네트워크’는 외부 환경과 요소에 집중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 네트워크를 말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할 때, 디폴트모드 네트워크는 반응하지 않지만 인지조절 네트워크는 활성화된다. 이처럼 디폴트모드 네트워크와 인지조절 네트워크는 반대로 작용한다. 하지만 ADHD 환자들은 인지조절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때에도 디폴트모드 네트워크가 약해지지 않고 과활동을 보이는 등의 이상소견이 발견된다. 이로 인해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잡다한 생각이 자주 들어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을 겪는다.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회로’에도 이상이 나타난다. 도파민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ADHD 환자의 도파민 회로는 일반인의 뇌 도파민 회로에 비해 비활성화돼 있다. 이에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해 지루함을 자주 느끼고 새롭게 느껴지는 자극과 그에 따른 보상에 취약한 것이다.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부족한 현상은 환경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임산부의 음주와 흡연, 약물남용 등으로 발생하는 불안정한 태내 환경 형성은 태아에게 신경학적 손상을 남겨 신경회로의 기능이 떨어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신생아 단계에서 문제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성장하면서 ADHD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서경현 교수는 “임신 중 술을 마시면 태아 알코올 증후군 으로 태어날 수 있으며 ADHD로도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어릴 때는 ADHD 증상이 없다가 성인이 되면서 뒤늦게 ADHD가 나타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도파민이 후천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생기는 것이다. 수면 부족과 비만 등은 도파민 생산과 전달에 영향을 주면서 후천적으로 ADHD를 유발한다. 또한 선천적으로 ADHD 기질이 있지만 안정적인 환경에 있어 눈에 띄지 않다가 심한 학대, 방임 등과 같은 사회적 요소에 노출되면서 ADHD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성인 ADHD는 주로 약물을 통해 치료한다. 약물치료에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재흡수를 막는 ‘메틸페니데이트’ 계통의 약물을 사용한다. 신경세포에서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경세포 안으로 다시 흡수되는데, 이 과정을 ‘재흡수’라고 부른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재흡수를 방해해 신경전달물질이 신경회로에서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원 교수는 “ADHD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키는 약물을 처방한다”고 밝혔다.

인지행동치료 또한 치료 방법 중 하나다. 인지행동치료는 약물치료만으로 호전되지 않는 증상들을 해소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일정 계획하기, 주의를 분산시키는 환경 정리하기, 우선순위 정하기 등 집중력을 높이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도록 교정해 준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ADHD 증상에 맞는 유용한 습관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주의력 결핍 증상이 심해 이를 고칠 수 있는 행동 교정이 필요하다면 요가, 명상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김수지 센터장은 “생각을 정리하고 싶으면 명상을 추천하며 충동적인 부분을 발산하고 싶다면 운동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치료보다도 중요한 건 자신이 ADHD 환자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성인 ADHD 발병률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인 데 비해 질환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ADHD임에도 본인의 성격이나 가벼운 건망증으로 여겨 증상이 눈에 띄게 심해져야 질환으로 의심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미리 인지하면 빠르게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스스로 ADHD를 의심할 수 있는 ‘성인 ADHD 자가보고척도(이하 ASRS)’를 활용을 권장한다. ASRS는 ADHD의 주요 증상인 주의력 결핍, 산만함 등이 본인에게 해당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6개의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질문 중 4개 이상에 해당된다면 ADHD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기에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 서보경 교수는 “ASRS를 먼저 해보고 ADHD가 의심된다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진료실인원 : 건강보험 가입자 중 1년간 실제 검사 및 진단을 받은 환자 수

**신경 네트워크 : 신경회로가 모여 형성된 거대한 네트워크망

권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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