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실무 경험’ 미끼에 이끌린 대학생 (한성대신문, 598호)

    • 입력 202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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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4-24 09:13

학점 인정받는 현장실습학기제

실습비 미지급 등 문제 발생

실습학생에 노동자 지위 부여해야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현장실습학기제란 대학생이 현장실습기관에서 실무교육이나 실습 등을 진행하면 학점으로 인정되는 교육과정을 말한다. 현장실습학기제는 직무 관련 교육·훈련이 주 목적이기에, 기업에서 현장실습학기제에 참여하는 대학생 인력을 직무 관련 교육 없이 업무상 필요에 맞게 운용할 수 없다.

현장실습학기제는 그 특성에 따라 ‘표준 현장실습학기제’와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로 나뉜다. 표준 현장실습학기제는 교육부고시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에 명시된 기준에 의거해 운영되는 현장실습학기제다. 해당 규정에서는 표준 현장실습학기제의 ▲실습기간 ▲휴일/휴게시간 ▲근로계약 체결 ▲실습지원비 지급기준 등을 정하고 있다. 표준 현장실습학기제는 1~4개월의 기간 동안 일 8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며, 1주 기준 1일 이상의 휴일과 1일 기준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이 보장된다. 표준 현장실습학기제 참여 중 발생하는 노동 문제 등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참여 학생은 산업체에 근무하는 실무자와 마찬가지로 봉급 개념의 실습지원비를 수령한다. 실습지원비는 실습일, 실습 시간에 따라 계산해 책정되며, 최저임금의 75% 이상을 지급받도록 규정 중이다.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는 운영기준이 정해진 표준 현장실습학기제와 다르게 대학별로 자유롭게 운영하는 제도다. 자율 현장실습학기제의 실습기간은 대학교와 실습기관이 상의해 정한다. 휴일과 휴게시간 또한 학생과 실습기관 간의 협의에 의해 정해지며, 근로계약 체결 가능 여부에 대한 법령은 부재하다. 실습지원비는 표준 현장실습학기제와 마찬가지로 책정하지만 일부 조건에 한해 미지급 형태로 운영이 가능하다. 미지급 형태로 운영하기 위한 조건은 ▲학생의 전공 교과체계와 실습의 관련성이 요구되는 경우 ▲현장실습학기제를 학교 교육과정 및 수업의 일환으로 운영 ▲운영 전 구체적인 학습사항 및 일정 확정 ▲학생의 활동으로 해당 실습기관에 실질적, 즉각적 유익 없음 ▲실습기관 현장교육담당자의 지속된 지도 아래 직무 체험 형태를 주된 과정으로 참여 ▲실습기관과 학교, 학생 상호 간 사전 동의 하에 미지급 ▲주 15시간 미만으로 운영 등이 있다.

산업체가 참여 학생의 실습지원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참여 학생 몰래 표준 현장실습학기제에서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로 바꿔서 운영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2022년 참여 학생이 ‘표준 현장실습학기제 협약서’에 서명했지만 실제 지급된 실습지원비가 턱없이 부족해 알아보니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로 운영됐던 사례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를 통해 적은 돈으로 대학생 인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학주(노무사 이학주 사무소) 노무사는 “자율형 현장실습학기제는 최저임금의 75%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인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편법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장실습학기제의 또 다른 문제로 직무 또는 전공과 연관성이 적은 보조 업무를 시키는 경우가 발생하는 점이 꼽힌다.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규정』 제9조에서 실습기간을 1~4개월로 명시하고 있다. 기업이 판단하기에 실습기간이 짧아 실무를 가르치기보다는 단순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결정해 학생들에게 단순 업무를 지시한다. 실제로 기계공학을 전공한 학생이 현장실습학기제 실습기관에 출근해 전선을 케이블타이로 묶는 단순 작업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한 사례도 있었다. 기업의 단순 업무 지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케이블을 은박지로 감싸 두루마기 형태로 말거나 전선 피복을 벗겨 전선을 잘라 커넥터에 연결하고 열풍기로 피복을 팽창시키는 등 기계공학 전공과 무관한 수작업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직원의 강압적인 태도도 동반됐으며, 수작업이 진행될 동안 직무교육은 실시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직원이 참여 학생을 불러모아 단순 업무에 불성실하게 참여하면 현장실습학기제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위협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기업이 참여 학생들을 아르바이트생 등 비숙련 노동자의 대체 인력으로 여기는 것 또한 문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2022년에 현장실습학기제에 참여했던 A 학생은 “입사한 날 나와 똑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이 장기 아르바이트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봤다”며 “학점을 제공하는 현장실습학기제는 전공 관련성이 요구됨에도, 기업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 인력을 선발해 활용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로 여기는 것 같다”고 술회했다.

현장실습학기제에 대한 점검 또한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 제19조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현장실습의 운영 실태 등에 관해 지도·점검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직업계고등학교의 경우 전담 노무사를 배치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점검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대학교는 관련 조치가 시행되지 않는다. 실제로 2022년 현장실습학기제에 참여한 대학생이 산업체에서 일하다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한 사고도 발생한 바 있다. A 학생은 “학생의 민원이 제기돼도 문제가 발생해야만 조사를 실시하는 태만에 가까운 교육부의 태도가 사고 발생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참여 학생에게 피해를 입힌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 또한 부재한 상황이다. 현장실습학기제 전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제11조의3에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기준을 정의하고 있지만, 그 기준을 어겨도 기업을 처벌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참여 학생들은 실습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고 있다. 이 노무사는 “현장실습학기제를 통해 학점을 인정받는 등 교육 과정을 끝까지 이수해 이른바 ‘스펙’을 쌓으려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회사의 부당 대우를 수용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실습학기제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법적 노동자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로 제기된다. 현장실습학기제가 실무를 경험하고 학점을 받는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노동자와 동일한 환경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노동 관련 법률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A 학생은 “현행 현장실습학기제는 학점을 준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아닌 학생으로 간주해 학생들은 노동 관련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 노무사는 “현장실습학기제 규정상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 등에 관한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사고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기업에서 지급하는 실습지원비의 금액을 축소하기 위해 표준 현장실습학기제에서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로 바꿔서 운영하는 편법을 자행하는 등 현행 자율 현장실습학기제 하에서는 참여 학생을 기업의 부당대우로부터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A 학생은 “자율 현장실습학기제가 영세한 중소기업이 받는 금전적 손실을 완화했다고 하더라도 단순 인력 대체를 막지는 못했다”며 “자율 현장실습학기제가 표준 현장실습학기제로 운영할 수 없는 기업들을 위한 유예제도였다면 이제는 자율 현장실습학기제를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또한 전문가들은 현장실습학기제 참여 학생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업무를 하기 위해서 현장실습학기제 참여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4개월가량의 기간은 실무를 익히는 데 짧다는 이유에서다. 참여 기간을 늘리고 기업의 이익을 위한 단순 노동이 아닌 학생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활동을 지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장실습학기제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를 지정해 분명한 목적으로 교육과정을 기획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양성민(부산노동권익센터 노동안전부) 과장은 “현장실습학기제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현장실습학기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다룰 수 있는 기관과 부서를 지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장실습학기제의 업무 환경을 면밀히 조사하고 사고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된다. 참여 학생이 불이익을 입은 후 개별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 선제적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노무사는 “큰 사고가 벌어진 후에야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이 바뀔까 봐 걱정”이라며 “정부나 교육부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실습학기제 참여 학생이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마련할 필요성도 대두된다. 직업계고등학교 현장실습학기제의 경우 운영 기준 미준수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등의 조치가 서울특별시교육청 홈페이지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대학생 대상 현장실습학기제의 경우 운영 기준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에 대한 방안이 부재하기에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노무사는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는 참여 학생을 보호하는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최소한 직업계고등학교 학생에게 적용되는 보호 방안 수준이라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결국 현장실습학기제 참여 학생에게 노동자로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노동자로서 지위를 보장받아야 업무 중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발생했을 때 그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학생은 “현장실습학기제는 업무에 참여하면서 직무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무를 배제할 수 없는 만큼 학생들도 노동 관련 법률로 보호받는 노동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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