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법률 부재 파고든 교제폭력, 피해 심각 (한성대신문, 601호)

    • 입력 2024-06-1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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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6-17 00:02

<편집자주>

가까이 지낸다는 뜻의 ‘교제’와 ‘폭력’, 두 단어는 일반적으로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최근 교제관계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교제폭력’ 사건이 여러 차례 나타나며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체·언어적 폭력이 모두 나타나는 등 양상이 다양하며 심각성도 높은 수준이다.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 스스로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스토킹범죄나 살인 등의 흉악범죄로 이어질 위험성도 높기에,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해결방안과 예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법률과 제도는 그 심각성에 비하면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교제폭력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규정한 법률조차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제폭력을 교제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 상황으로 보고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 일각의 인식이 제도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본지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교제폭력의 양상과 심각성이 어떠한지, 예방을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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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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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연인 간의 사랑이 집착을 넘어 폭력까지 이어진 ‘교제폭력’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서울 강남에서 한 대학생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숨지게 한 데 이어 30일에는 60대 남성이 교제 중이던 여성과 그의 딸을 살해했다. 해당 사건처럼 교제관계에서 발생하는 폭행 등의 범죄 발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 건수만 2020년 49,225건에서 2022년 70,790건으로 3년 사이에 약 2만 건 이상 증가했다. 교제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의 특성상 신고되지 않은 교제폭력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적으로 교제폭력이란 교제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성적·신체적 폭력 등 모든 종류의 폭력을 일컫는다. 여기서 ‘폭력’은 정신·신체적 폭력을 넘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집착하는 스토킹과 살인까지 포괄한다.

다만 국내 학계에서는 교제폭력의 명확한 정의에 대해 논의 중이다. ‘데이트폭력’ 대신 교제폭력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다. 교제는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냄’으로, 데이트는 ‘호감을 느낀 상대를 만나는 일’로 정의된다. 교제는 깊은 관계로 느껴질 수 있지만, 데이트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가벼운 관계로 인식돼 범죄의 심각성이 축소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검찰청에서도 「교제폭력 등 폭력범죄 처벌 강화」 통해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으로 공권력이 개입해 처벌해야 할 범죄가 연인 사이의 불미스러운 일로 가볍게 비칠 우려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건수(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는 “이전에는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폭력의 의미가 미화될 가능성이 존재해 교제폭력으로 용어가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제폭력 속 정신·신체적 폭력이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교제폭력은 서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에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낱낱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 가해자가 피해자를 스토킹하거나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 살인과 같은 보복 행위를 저지를 수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제성(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기획평가팀) 형사기획위원은 “스토킹 가해자가 대부분 친밀한 관계인 경우가 많다”며 “연인 간의 스토킹에서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러한 교제폭력이 다른 범죄와 분리된다면 ‘교제관계’의 범위가 명확해지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스토킹범죄를 다른 범죄와 따로 분리해 스토킹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 입법된 것처럼 교제폭력의 분리는 교제폭력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의 토대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관련 범죄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기에 스토킹과 교제폭력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등 교제폭력의 특성을 고려한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교제폭력에 대한 정확한 정의에 대해 논의 중이다보니 교제폭력에 대해 정의하고 처벌을 규정하는 법률도 부재하다. 이로 인해 교제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나 범위도 정해진 바가 없다. 국회에서 여러 차례 교제폭력에 관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 대해 규정하고 처벌 조항을 명시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정폭력방지법), 스토킹처벌법 등 기존 법률에 교제폭력을 포함한다면, 충분히 이를 예방하고 제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도우(경남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가정폭력방지법에 해당되는 피해자의 범주를 넓힌다면 교제폭력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 교제폭력에서 신체적 폭력이 발생했다면『 형법』에 의한 폭행죄가 성립돼 처벌받을 수 있지만,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가해자에게 어떠한 형도 내릴 수 없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가해자 처벌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피해자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를 하지 않거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한민경(경찰대학 치안대학원 범죄학과) 교수는 “단순 폭행이라면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지만, 교제폭력은 깊은 감정을 공유하는 연인 사이에서 발생한 탓에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를 강력히 밝히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또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 후에도 반복적으로 폭행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응혁(계명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폭력범죄는 보통 일회성에 그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범죄는 피해가 반복될 우려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교제폭력에 관한 법률이 별도로 제정되지 않아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정폭력방지법이나 스토킹처벌법에는 ▲접근 금지 ▲분리 조치 ▲연락 금지 등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방지법은 혼인이나 혈연 등 가족 관계일 때만 적용돼 교제관계가 포함되지 않는다.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스토킹범죄 또한 교제폭력의 유형 중 일부로, 모든 교제폭력의 사례에 적용될 수 없다.이 교수는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접근 금지, 격리 조치 등이 이뤄져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법률의 부재로 교제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설명했다.

교제폭력에 관한 양형기준*도 존재하지않아 교제관계라는 이유로 오히려 형이 감경되는 문제 또한 발생한다.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폭력범죄에 관한 양형기준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위계관계나 존속 혈연관계가 성립하는 경우만을 처벌의 가중요인으로 고려한다. 일차적으로 교제폭력에 대한 법률이 부재해 교제폭력에 대한 양형기준이 없다. 또한 교제관계를 폭력범죄 처벌의 가중요인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기에 법원 판결 시 교제관계가 역으로 처벌의 감경요인으로도 작용한 사례가 존재한다. 실제로 2022년 1월 선고된 판결에 따르면, 가해자가 피해자와 10년간 교제했다는 이유로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형을 감경시킨 사례도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깊은 관계였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한 교수는 “교제폭력에 대한 양형기준이 부재한 상황이 교제관계를 가해자에 대한 형의 감경 요인으로 만든다”고 꼬집었다. 이어 장 교수는 “폭력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존재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교제폭력에서 해당 양형기준을 적용하기 곤란하다”며 “이에 교제폭력 가해자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지나치게 약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교제폭력은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만, 사회적으로 개인 간의 문제 상황이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이렇게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교제폭력에 대한 별도의 법률 제정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교제폭력으로 인해 영구적인 장애를 갖거나 불안감과 같은 정신적인 후유증을 호소하는 등 고통받는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교제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상균(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교제폭력을 연인 간의 다툼이라는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답했다. 이어 한 교수는 “교제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히려면 지속적으로 교제폭력 위험성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도우 교수는 “교제폭력 속에서 발생하는 살인 등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교제폭력을 더 이상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교제폭력의 정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관련 법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교제폭력이 가정폭력방지법 등의 다른 법률에 포함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교제폭력만을 다룬 법률이 제정돼야 하는 이유다. 다만 교제관계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 있어 모호한 부분이 존재하다 보니 이를 확실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한다. 장 교수는 “교제관계의 범위는 친밀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며 “동거하며 매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관계도 있으며 각자 자기 생활을 존중하며 만나는 연인도 있기에 교제관계에 대한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제폭력에 해당하는 폭력이 반의사불벌죄가 되지 않으려면 피해자를 위한 보호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최우선으로 가진 목적이 가해자 처벌이 아닌 피해자 보호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교제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교제폭력에 관한 법률을 만들 때 피해자 보호 조치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이 교수는 “피해자 보호를 중심으로 교제폭력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교제폭력 피해자를 법적으로 보호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법이 제정되면 교제폭력범죄에 관한 양형기준이 신설돼 교제관계라는 이유로 처벌이 감경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새로운 양형기준에 따라 교제폭력 가해자에게 합당한 형벌이 내려진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교제폭력에 관한 법 제정 후 교제관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만든다면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같은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교제폭력을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벼운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풍토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교제폭력이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도우 교수는 “교제폭력은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범죄의 징후이기에 교제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많은 이들이 인지해 교제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균 교수는 “교제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국민에게 자리잡힐 수 있도록 정부나 수사기관 등에서 지금보다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형기준 : 법관이 형을 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기준으로, 양형기준을 통해 형을 감경하거나 가중할 수 있음. 대법원 소속의 양형위원회가 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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