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함께하는 이야기를 전시로 구현하다 (한성대신문, 602호)

    • 입력 2024-09-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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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9-02 00:01

<편집자주>

거대한 파도가 코앞에서 휘몰아친다. 바로 앞에서 파도의 위력을 느껴도 몸은 젖지 않는다. 최근 미디어아트,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다양한 형태의 전시가 각광받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일명 ‘집콕 문화생활’이 발달함에도 전시장은 여전히 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현장에서 작품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잊지 못할 인상을 선사해서가 아닐까.

여기 인상적인 경험을 관객에게 선물하기 위해 전시 형태를 다양하게 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전하려는 이가 있다. 미술관과 같은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독립큐레이터이자 독립큐레이터 그룹 'OverLab.(이하 오버랩)'의 김선영(45) 대표다. 그는 마을 전체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전시를 기획하려 한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작가가 직접 구상한 공간에서 주제를 함께 궁리하며 진정한 소통을 바라는 그의 기획 철학이 녹아든 것이다. 나아가 자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기획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앞장서고 있다.

특히나 그는 소통의 가치를 기획에 녹여내려 한다. 대학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을 접하기에 소통은 청년에게도 중요한 가치일 테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무엇일까. 그의 전시기획과 더불어 인생을 기획해 나가는 조언을 듣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했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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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대표가 오버랩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 심민섭 기자]

미술관을 벗어난 큐레이터

미술에 대한 깊은 흥미가 김 대표를 큐레이터라는 직업으로 이끌었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미술을 전공으로 공부하다 보니, 미술은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무언가가 됐다. 단순한 흥미가 깊이 있는 탐구로 발전하면서 그를 기획자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거창한 목표 의식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죠. 그렇게 좋아하는 미술 실력을 향상시키고자 서양화를 전공하게 됐어요. 서양화를 공부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더 깊이 있게 탐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미학미술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어요. 미학미술사를 배우며 전시기획을 접했어요. 기획자는 다양한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예술가의 독특한 사유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기획자와 예술가가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확장시켜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기획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통상 큐레이터는 미술관, 박물관 등의 기관에 소속돼 기관의 가치에 맞춰 작품 수집 및 관리하고 전시 프로그램 등을 기획한다. 이와 달리 김 대표와 같은 독립큐레이터는 일명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다. 독립큐레이터는 외부 조직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 주제를 직접 발굴하고 예술가 등에게 전시를 제안하며 그에 따른 재원 마련까지 보다 폭넓고 전문적으로 활동한다. 김 대표는 전시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고 골몰하는 심화된 전시를 구현하고 싶었기에 독립큐레이터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독립큐레이터로서 15년 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큐레이터가 조직에 속할 경우 그 조직의 기본 방향과 가치에 따르는 일을 수행해요. 반면 독립큐레이터는 예술 기획 안에서 분화돼 전문 영역을 키워 활동할 수 있죠. 그만큼 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주제로 정한 후 전시를 기획하고 연구할 수 있어요. 저는 2009년도에 독립큐레이터라는 명칭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역에 독립큐레이터가 아예 없었는데, 다양한 예술가와 전시기획 과정에서 협업하며 나만의 전시를 기획하고 건강한 예술현장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와 정체성을 갖고 독립큐레이터로 전환하게 됐어요. 특정 주제에 대해 작가와 고심하고 협력해 함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획을 추구하고 또 그렇게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성장의 공간, Over Lab.

김 대표는 예술연구와 기획의 꿈을 다방면으로 실현하기 위해 박유영 큐레이터와 독립큐레이터 그룹 ‘오버랩’을 결성했다. 오버랩은 비영리 큐레이터 단체로 예술적 연구를 진행한다. 예술작품의 배경이 되는 문화, 역사 등의 특성을 주로 연구하고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연구 내용을 심화시킨 전시를 기획한다. 두 사람은 문화단체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났다. 개인과 사회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표현해내는 예술 활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덕에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다. 2015년 그룹을 결성해 서로의 예술적 관점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활동 중이다.

“저희는 프로젝트 기획자와 참여자로 처음 만났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 큐레이터는 순수하게 예술을 즐기고 좋아하더라고요. 그의 불문학 전공은 큐레이터와 관련성이 떨어지지만 다른 참여자와 즐겁게 소통하며 예술을 즐기는 점이 제게 인상 깊게 다가왔죠. 바로 진행 예정이던 연구 활동을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전시를 기획하며 개인의 시각이 독단적으로 흐를 수 있는데, 박 큐레이터와 논의를 하다보면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는 조율 과정이 있어 의지가 돼요.”

오버랩을 결성하면서 설정한 활동목표는 명확하다. 그는 도전적이고 다양한 창작의 시도를 위해 다양한 예술가와의 협업 그리고 여러 학문과 융합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여러 사람과 학문을 연계해 창작의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실현시킨다는 정체성이 내포된 것이다. 그렇기에 활동목표로 ▲국내외 협업 활동 진행 ▲시각예술을 넘어 인문학 등의 다양한 분야를 통한 접근 ▲예술적 실험과 연구 활동 적극 장려 등을 제시했다. 오버랩이 궁극적으로 단순 창작을 넘어 기획자와 창작자 간 사고과정을 공유하며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전언이다.

“보통 미술관 등의 예술공간은 첫 개관전이 공간이 추구하는 바를 제시해요. 오버랩은 단체를 구성하고 2년 뒤에 공간을 마련했기 때문에 단체의 활동목표를 먼저 설정하고자 했죠. 다양한 시도와 폭넓은 창·제작을 이룰 수 있도록 협력도 주요한 가치로 삼았죠. 오버랩이 창작과 기획의 과정에서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실험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최근 문화예술계 지원이 줄며 오버랩 또한 재원 마련 과정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했다. 김 대표는 이 위기를 능력 강화의 기회로 삼았다. 독립큐레이터는 전시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 준비해야 하기에, 공모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공모에 당선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전시 방법을 연구해 나가고 있다. ‘예산의 성격’과 ‘그룹의 정체성’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기획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을 더욱 탄탄한 기획력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문화예술계 예산이 줄어들고 지원 항목까지 새롭게 변경된 상황에서, 재원을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어요. 항상 자생력을 강화할 방법을 고민하죠. 그런데 결국 기획력이 유일한 답인 것 같아요. 오버랩의 정체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에 맞는 기획안을 마련하는 거죠. 앞으로도 오버랩의 기획력을 바탕으로 공모에서 좋은 결과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 대표는 신진 기획자를 양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기도 하다. 그는 기획자가 예술가와 우리 사회를 조망하고 전시 주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학습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오버랩의 공간을 만든 2017년부터 독립큐레이터 양성 프로그램인 ‘ICC(Independent Curator Collaboration)’를 진행해 전문가 초청 큐레이팅 워크숍, 지역 내 예술 현장 탐색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원래는 오버랩을 필두로 지역 독립큐레이터나 연구자가 연대해서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흩어지는 형태를 만들려 했어요. 지역 내 기획자를 찾아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한 명도 없는 거예요. 그때 신진 기획자를 발굴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예술 관련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참여할 수 있고 현재 예술 현장에서 활동 중인 프로그램 참여자도 있어서 고무적인 활동이라고도 생각해요.”

오버랩의 전시와 예술적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변화하는 예술 생태계에 맞춰 프로그램을 변형해 나갈 예정이다. 8년 동안 유지되던 프로그램을 시대상에 맞추고 신진기획자들이 생겨나 예술 활동이 증가한 만큼 그에 알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프로그램을 좀 더 즐겁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해요. ICC 프로그램을 처음 진행할 때만 해도 신진 기획자에게 이 프로그램이 분명히 필요했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많은 기획자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형식을 고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기획자들이 순환되고, 창작자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프로그램이 나아갈 예정이에요.”

진정한 소통으로 나와 세상을 마주하기

그는 기획 전반에서 ‘소통’의 태도를 중시한다. 소통을 통한 협업은 예술가와 기획자 간의 대화를 넘어, 더 깊은 인간적 성숙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관객과 예술가의 소통이 공동체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게 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편견 없이 다양한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소통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린 각자 다른 세대고 다른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죠. 그렇기에 고루 섞여 비슷한 경험을 형성하는 소통이 중요해요. 제가 기획한 전시에서도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다루고자 노력했고요. 같은 시대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면 결국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고도 생각해요.”

김 대표는 청년들도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기회를 잡으라고 조언한다. 수많은 사람과의 소통은 새로운 경험을 형성하고, 이 경험 속에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그는 순간의 기회들을 통해 당당하게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고도 역설한다.

“소통은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요. 찰나에 스쳐가는 소통이 아니라 서로 감정을 나누고 이해하는 교류를 의미해요. 이런 소통을 통해 깊이 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죠. 소통과 경험 안에서 주어지는 기회들이 있는데, 자신에게 맞는 기회를 후회 없이 잡기를 바라요. 기회를 잡고 그 속에서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으로 배움을 이어 나가세요. 내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들이 계속해서 저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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