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고 사회 한 바퀴> 익어가는 농산물, 흔들리는 가격 (한성대신문, 601호)

    • 입력 2024-09-0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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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9-02 00:01

<편집자주>

‘20대가 꼭 알아야 하는 경제 상식’ ‘경제 초보를 위한 경제 개념 10분 요약’ 인터넷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경제 관련 콘텐츠들이다. 대학생이 됐으면 경제 상식 정도는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관심을 가져보려 해도 까다로운 경제 용어가 발목을 잡기 일쑤다. 겨우 이해했다 하더라도 경제 뉴스 한번 읽어볼까 하면 공부했던 기억이 휘발되곤 한다.

경제주체로서 현명하게 소비하고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사회 전체의 경제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경제 원리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이를 사회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경제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석이 얼마남지 않았다. 모두가 풍성한 한가위를 위해 분주해지는 시점, 재료가 될 농산물 가격에 집중하게 된다. 농산물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재화다. 그럼에도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현상이 눈에 띈다. ‘금’사과, ‘금’배추 등 가격 상승을 표현한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농산물의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과 농산물 관련 사회 문제까지 살펴봤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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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의 끊임없는 움직임, 거미집 모형

소비자는 한정된 예산 내에서 상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하려 하고 생산자 역시 수요에 맞춰 합리적으로 상품을 공급하고자 한다.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에서 ‘수요’는 사람들이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는 의향이며, ‘공급’은 기업 등의 생산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욕구를 의미한다. 이때 각각의 욕구에 따라 구매하거나 판매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수량을 수요량과 공급량이라 일컫는다.

상품시장에서의 판매 수량과 가격이 결정되는 지점은 수요량과 공급량이 교차하는 ‘균형’이다. 어떤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상품을 사려는 의향은 감소해 그에 따른 수요량이 줄어든다. 반면 가격이 높을 때 기업은 값비싼 상품을 더욱 많이 판매하고자 하기에 공급량은 증가한다. 이후 수요량과 공급량이 일치하는 부분에서 균형이 형성되면 가격 안정 상태가 된다. 박성훈(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어떤 상품의 가격이 균형을 벗어나 형성되면 수요량과 공급량이 미달되거나 초과하고 시장의 가격은 안정적인 균형을 찾기 위해 다시 조정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민감하게 변화하는 정도를 ‘가격탄력성’이라 한다. 수요와 공급 각각에서 ‘가격탄력성이 크다’, 즉 ‘탄력적’이라는 것은 어떤 상품의 가격이 변화했을 때 수요, 공급이 매우 민감하게 변화해 수요량과 공급량이 즉시 조절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상품의 가격 변화에도 수요량과 공급량이 즉시 조정되지 않는 경우를 비탄력적이라 한다.

비탄력적인 성격을 띠는 대표 재화가 ‘농산물’이다. 농산물은 가격 변동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으며 가격 변동으로 수요가 즉시 변하지 않기 때문에 비탄력적이라 한다. 쌀 등의 농산물은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기에 다른 먹거리로 대체하기 비교적 어렵다. 때문에 농산물은 수요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생산량, 즉 공급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지만, 농산물 가격이 변해도 공급량을 즉시 조절하기 어려워 농산물의 공급도 비탄력적인 특징을 보인다. 농산물을 수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날씨 등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공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하루 이틀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므로 공급을 바로 조절하기 어렵다. 이병훈(강원대학교 농업자원경제학전공) 교수는 “농산물은 가격이 변해도 소비자가 먹는 양을 쉽게 늘리거나 줄이지 않고, 생산자도 농산물의 생육 도중에 공급량을 갑작스럽게 늘리거나 줄이기 어려워 수요와 공급이 모두 비탄력적이게 된다”고 말했다.

수요와 공급의 비탄력적인 성격은 해마다 농산물 가격이 급격히 등락하는 현상을 유발한다. 이 현상은 ‘거미집 모형’으로 설명된다. 농산물의 수요는 비교적 일정하지만, 공급은 즉시 조절되지 못해 책정된 과거의 가격에 따라 현재의 생산량이 결정된다.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생산량이 조절될 때 시간 차이가 발생하며 지연된 가격 조절이 이뤄진다. 가격과 생산량이 반복적으로 조정되는 과정을 그래프로 그리면 거미집처럼 복잡한 모형이 형성된다.

‘올해 가격’이 ‘균형 가격’보다 낮다고 가정하면, 농부는 농산물이 싼값에 팔리니 수요가 적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내년에 적용될 공급량을 줄인다. 그러자 내년이 됐을 때는 공급 감소로 농산물이 희소해져 시장에서 농산물의 ‘내년 가격’이 증가하게 된다. 농부는 높아진 내년 가격을 보고 후년에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후년에 수확될 공급량을 늘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늘어난 농산물의 후년 공급량에 비해 수요는 일정하기에 ‘후년 가격’이 하락한다. 상술한 과정을 매년 되풀이하며 농산물의 가격이 등락을 거듭한다. 지인배(동국대학교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거미집 모형은 농산물 시장의 가격 변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현재 가격을 바탕으로 미래의 공급을 결정할 때 가격이 변동하며 시장의 균형을 찾기 위해 지속적인 등락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농산물의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농산물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풍년일 때 농가의 수익이 감소하는 현상도 발견된다. 농가가 지속해서 이윤을 얻기 어려운 역설적인 현실을 ‘농부의 역설’이라 한다.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비탄력적이기에 풍년이 들어 농산물의 공급이 조금만 증가해도 가격이 급락한다. 농산물 가격의 하락으로 농가는 풍년이 들면 이윤을 획득하기 어렵다. 흉년이 들어 가격이 높게 책정되면 오히려 농가가 수익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흉년에 판매할 수 있는 농산물의 양이 적어 농가의 소득은 감소하기도 한다. 홍승지(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부의 역설은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이 비탄력적이기에 나타난다”며 “풍년이 들면 농부의 소득이 감소하고 흉년이 들면 농부의 소득이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으나 흉년임에도 농가가 소득을 얻지 못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농산물의 가격 변동이 심하고 예측이 어렵다보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농산물의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 정부가 농산물 시장에 개입해 농산물의 수급을 조절하고 투자를 진행하는 등 가격 불안정성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 등락에 따라 변하는 소비자의 급격한 지출이 물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생산자는 소득을 얻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한욱(한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은 주로 농산물 공급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하므로 정부가 풍년에 남아도는 농산물을 구매해 보관하다가 공급이 부족한 흉년에 농산물을 시장에 공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예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무력화시키는 가격 파동

최근 배추, 무 등의 채소류를 중심으로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매일 공개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배추의 소매 가격은 포기당 7,306원으로 전월 대비 37.59%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무의 소매 가격 또한 개당 3,901원으로 전월 대비 36.21% 증가한 수치다.

농산물 가격의 등락을 막기 위해 정부는 농산물 수급을 조절한다. 가격이 하락할 경우 정부는 농가의 밭을 갈아엎는 등 자라난 작물을 폐기하는 방식을 활용해 수급을 조절하는데, 이 시점은 대부분 농산물 생육이 진행된 후에 이뤄진다. 정부의 노력에도 농가의 피해가 극심해지는 이유다. 농산물 폐기로 수확을 못할 뿐만 아니라 농산물을 키우기 위해 들인 노동력과 투자비용을 농가가 감수해야 한다. 김윤식(경상국립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농산물이 초과 공급될 때 정부가 산지에서 농산물의 폐기를 진행하며 생육 이후 농산물을 수확하지 못해 농가의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농산물 유통과정에서 과도한 수수료가 붙어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책정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농산물은 농가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여러 유통과정을 거친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과정은 4~7단계로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데, 각 과정에서 수수료 등의 가격이 붙고 판매 가격이 책정되며 소비자가 구매하는 최종 가격이 결정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진행한 「2022년 유통실태 종합」에 따르면 농산물35종류의 소비자 가격 대비 유통비용은 49.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가 사과를 1만 원에 구매한다면 그중 5천 원 가량은 유통비용이라는 뜻이다. 윤종열(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예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유통과정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비효율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며 “유통단계를 거듭할수록 유통 주체들이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고 전했다.

농산물과 관련한 선제적인 조사가 미흡해 정부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현재 정부는 농가의 작황 실태 등을 조사해 소비자 가격 등락을 예측하고 피해를 완화시킬 수 있도록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각지에 퍼져있는 농가 실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떨어져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용되지 않고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 김 교수는 “농산물이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상품이기에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각 농가에 대한 조사와 부처 간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수급 조절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가의 피해는 피해 보장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다. 보장 제도가 존재하긴 하지만 피해에 비해 보상액이 적을 뿐만 아니라 보장받는 농가의 비율 또한 적다. 일례로 ‘채소가격안정제’는 정부와 농가가 계약을 통해 수급 조절 시 폐기 비용의 일부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해당 제도를 통해 농가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설정한 기준의 도매시장 평균 가격의 80%만을 보상받아 그 수준이 미미하다. 농가에 대한 가격 보전이 적기에 농가의 가입 비율도 농림축산식품부의 「2024년 업무보고」에따르면 전체 농가의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비합리적인 가격책정 방식의 원인으로는 유통과정에 참여하는 도매시장에서의 경매제가 꼽힌다. 도매시장에서는 어떤 상품에 대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경매제를 통해 농산물의 가격이 책정된다. 일반적으로 경매제는 귀금속과 같이 생산이 희소한 상품에 적용되지만, 희소성이 떨어지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농산물에 해당 제도가 적용돼 가격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최병옥(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유통혁신연구실) 연구위원은 “국내 농산물의 약 50%가 도매시장을 경유하는데 도매시장 내 경매제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정책 실효성 저하의 원인으로는 정부의 조직화 수준이 떨어지는 점이 지목된다. 농산물의 생산 및 유통 부문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물가 관리는 기획재정부, 관련 통계 수집은 통계청 등이 담당하고 있어 관련 부처별 정책 연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최 연구위원은 “정부 부처는 농산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고 소비자의 불만이 지속되는 것을 우려해 농산물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고 정책이해도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정책을 집행한다”고 밝혔다.

농가의 소득을 보전하며 수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농산물 가격안정제’와 같은 보험제가 도입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농산물 가격안정제는 기준 가격보다 낮게 농산물 가격이 형성될 경우 정부가 농가를 위해 차액을 보장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채소가격안정제보다 적용되는 농산물 품목 또한 확대되며, 농산물 대량 폐기수준으로 가격이 하락하지 않게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다. 김 교수는 “농가의 피해에 대한 보험제가 도입되면 일정 수준 농가의 소득이 보장돼 농가도 적극적인 수급 조절에 참여할 수 있고 안정적인 농업 활동이 이뤄질 수 있으며, 이는 곧 소비자에게도 혜택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정가·수의 매매’ 방식의 활성화를 통해 유통과정에서 공정한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정가·수의 매매는 출하자와 도매시장 법인, 중도매인 등이 직접 협상을 통해 농산물의 가격과 물량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도매시장 내에서 도매시장 법인의 관리로 진행되는 경매제와 달리, 여러 유통 주체가 상호 간 가격을 협상하므로 비교적 효율적인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 최 연구위원은 “정가·수의 매매 방식은 협상을 통해 이뤄지므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농가가 자체적으로 조직을 꾸려 실태를 파악하고 수급을 관리하는 ‘의무자조금단체’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말한다. 의무자조금단체는 농산물 품목별로 꾸려진 농가 단체다. 농가가 단체 사업을 위한 비용인 자조금을 부담하면 정부가 추가로 금액을 지원한다. 적립된 자조금과 정부지원금을 활용해 단체가 자체적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수급까지 관리할 수 있다. 의무자조금단체는 각 농가의 실태를 전부 조사하기 어려운 정부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의무자조금단체 방식을 확장해 농산물 재배 면적 조절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적정 생산량을 유도하며 수급 및 수익 관리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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