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스라엘 분쟁이 가져올 경제 위기의 신호탄
‘즉시 안전한 구역으로 이동한 뒤 추후 안내가 있을 때까지 머무르십시오.’ 지난 1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18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후 이스라엘 국민에게 전송된 문자 내용이다. 지난 4월에 이어 올해에만 벌써 두 차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시설 공격 등 높은 수위의 보복을 검토하고 있다. 긴박한 상황 속 두 나라 간의 대치 국면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양국의 분쟁은 유가 상승을 초래해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 악재로 평가받는다.
지난한 싸움은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에서 시작됐다.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기 전, 약 250년 동안 이란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921년 쿠데타를 통해 이란을 통치하게 된 팔레비 왕조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서구식 교육, 정치 탈종교화 등의 근대화 정책을 내세웠다. 이는 여성 참정권 부여, 히잡 착용 금지 등 이슬람교에 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이러한 반이슬람적인 행보는 국민들의 불만을 낳았고 이슬람 혁명위원회의 수장인 루홀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호메이니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 올랐으며, 종교계가 권력을 잡게 됐다. 황의현(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은 “혁명 후 이슬람 정부는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고, 자유주의적 지식인과 정치인들을 축출하며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혁명 이후 이란은 강경한 반서구, 반이스라엘 성향을 드러냈다. 농촌의 해체로 인한 빈부격차와 석유 수출을 통한 재정이 특권층에만 쏠리는 등 팔레비 왕조가 유발한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미국과 서구를 이슬람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외세로 규정했다. 서구의 대표 주자인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하는 국가였다. 이에 이스라엘은 중동 내에서 친미 성향을 가장 강하게 보이는 국가가 됐다. 결과적으로 이슬람 혁명 후 반미 성향을 띠게 된 이란은 이스라엘을 적대하게 됐다. 이후 1992년 이스라엘대사관 폭파, 1994년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 건물 테러 등 이스라엘을 향한 이란의 공격은 계속됐다. 김혁(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이란은 이스라엘을 미국의 하수인으로 여겼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은 이란의 ‘건국이념’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양국의 분쟁이 전면전의 양상을 띠지 않은 이유는 두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아서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등의 국가가 있어 두 나라 간 직접적인 충돌은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이란과 이스라엘은 전면전에 나서지 않는 일명 ‘그림자 전쟁’을 이어왔다. 강문수(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프리카중동·중남미팀) 부연구위원은 “그림자 전쟁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국가를 중심으로 대신 전쟁일 치루는 양상을 띠었다”고 밝혔다.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이란은 일명 ‘저항의 축’을 조직했다. 저항의 축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활동하는 반이스라엘 단체로, 이란에서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저항의 축에서 이스라엘을 견제한 대표적 세력이 바로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이란이 후원하는 레바논의 반이스라엘 정당이다. 레바논 의회 총의석 128석 중 13석을 차지할 만큼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이유는 1982년 갈릴리 평화 작전에 기인한다. 이 작전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저항 운동을 펼치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공격하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한 사건이다. 당시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레바논 내에서 만들어진 조직 중 하나가 바로 헤즈볼라다. 한새롬(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란의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스라엘 견제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조직”이라고 논했다.
이란의 핵 보유 또한 양국의 갈등 심화의 원인 중 하나다. 2005년 이란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당선과 동시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했다. 그는 이란의 대표적인 반이스라엘 강경파 정치인으로,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핵을 이용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를 손에 넣는 상황을 피하고자 악성 코드를 이용해 핵 시설을 마비시키거나 이란의 핵 전문가를 암살하는 등 지속적으로 이란의 핵 보유를 견제했다. 강 부연구위원은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이스라엘의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이란의 핵 보유를 견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2011년에 발발한 시리아 내전도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시리아 내전은 알아사드 대통령과 그를 끌어내리려는 반군 간의 내전이다. 이때 이란은 시아파* 정권인 대통령 측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을 자극했다. 이란, 레바논, 시리아는 같은 저항의 축 세력이기 때문에 시리아를 향한 이란의 지원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충분히 위협의 소지가 됐다. 황 선임연구원은 “시리아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견제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최근 몇 개월 사이 직접적인 공격의 양상으로 변화하는 모양새다. 지난 9월부터 이어진 헤즈볼라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이란은 저항의 축을 이끄는 국가로서 대응이 필요했다. 이스라엘이 강경하게 대응할 때 이란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저항의 축이 약화되는 것을 방조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또한 헤즈볼라가 약화되면 이란이 이스라엘을 견제할 수단도 제한된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1일 미사일 공격을 통해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한 맞대응에 나섰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황 선임연구원은 “대외적 정당성과 국가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란은 이스라엘에 보복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이란을 지원하는 중국, 러시아가 대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이란, 러시아, 중국은 3군 합동 해상 훈련을 진행한 바 있다. 노다솔(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연구교수는 “강대국의 개입에 따라 양국의 분쟁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산유국으로 불리는 이란이 보복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자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현상 또한 나타났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의 「국내 석유제품 주간 가격동향」에 따르면 10월 2주 차 기준 국제휘발유 가격은 전주 대비 1L당 4.5원 상승했고, 국제경유 가격은 전주 대비 1L당 4.8원 상승했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추출되는 원유인 두바이유 역시 전주 대비 1L당 3.6원 상승하는 수치를 보였다. 한 교수는 “유가 상승은 세계 에너지 공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을 방해할 경우 심각한 유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남쪽에 위치한 해협으로, 이곳을 통해 이동하는 원유가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를 차지할 만큼 중동 석유 수출의 핵심 통로다. 황 선임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전 세계적인 물류와 원유 시장이 크게 요동치게 되고, 경제적 악영향도 클 것”이라고 답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원유의 활용이 주요한 ▲정유 ▲화학 ▲도로운송 ▲항공운송 분야에 미칠 영향은 지대하다. 대한석유협회의 「국별 원유도입」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이라크 등 중동 국가들로부터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69.2%에 달한다. 노 연구교수는 “천연자원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은 천연자원 가격의 상승을 이끄는 잠재적인 요소”라며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후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이 심화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대국의 개입에 따라 양국의 분쟁 양상이 달라지며, 우리나라는 유가 상승에 취약한 산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 비축량 확대, 가격 헤지 등의 방식이 검토된다. 노 연구교수는 “유가 상승과 대리전 확대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전 세계적으로 경제 및 국제정세 소용돌이가 몰아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한다”고 설명했다.
*시아파 : 이슬람 제국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혈통만이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의 분파
박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