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 30주기다. 1994년 금요일 오전 7시 40분경 강북 성수동과 강남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하며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대교 건설·관리 소홀로 인한 ‘예견된 참사’라는 평가가 씌워졌다. 사고 발생 전 대교 곳곳에서 균열이 확인됐으며 다리 상판 이음새가 벌어져 있다는 시민의 제보가 빗발쳤다. 그럼에도 안전 점검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결과가 나타나며 보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건축·구조물 붕괴 및 화재 등의 형태로 발생하는 ‘시설재난’은 약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지속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사고발생 현황」에 따르면 붕괴 사고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1,063건, 1,625건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소방청의 「화재통계」 중 건축, 구조물 화재 발생 현황은 2020년 24,929건, 2021년 23,997건, 2022년 25,426건으로 시설재난 발생 빈도는 끊이지 않고 있음이 확인된다. 채진(목원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과거부터 발생하던 시설재난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재난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다. 재난은 크게 ▲자연재난 ▲인적재난 ▲사회재난으로 구분된다. 자연재난은 태풍, 홍수 등의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한 재난을 의미한다. 인적재난은 화재, 붕괴, 교통사고 등 인위에 의해 발생한 사고를 포함한다. 사회재난은 붕괴, 폭발 등의 인위로 인한 사고가 국가기반체계 기능을 마비시키는 대규모 사고를 일컬으며 국가 재산 및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설재난은 과거부터 발생하던 사고지만 인적재난과 사회재난이 결합된 복합재난의 형태를 갖는다. 이에 따라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어 ‘신종 대형재난’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초고층 건물과 지하 심층 건물이 증가하면서 사고 규모가 방대해지고 도시 인구 밀집으로 인해 시설재난 발생 시 피해가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김소윤(경기과학기술대학교 건축소방안전학과) 교수는 “도시 과밀화, 건축물의 대형화와 복합화 등으로 인해 시설재난의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화된 시설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시설물 안전점검 방식에 허점이 존재한다. 시설물 안전점검은 국토교통부 등 관리 당국의 지휘하에 용역 업체가 진행하며 ‘정기안전점검’과 ‘정밀안전점검’ 등의 방식으로 시행된다. 정기안전점검은 6개월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이뤄지며, 주로 육안검사에 의존한다. 정밀안전점검은 육안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된 경우 첨단 기술을 사용해 정밀하게 확인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시설물 점검이 정기안전점검으로 이뤄지는데 순찰 형태로 진행되는 육안검사만으로는 시설물의 내부 균열이나 부식 등 위험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국토교통부는 「시설물 안전점검 진단 제도개선 방안」에서 정기안전점검이 이뤄졌음에도 육안검사 미흡으로 인해 ‘정자교 인도부’와 ‘도림 보도육교’가 붕괴했다고 분석했다. 임동균(목원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육안으로 시설물을 점검할 경우 시설물 구조 내부에 산재한 위험을 점검하기 어려워 위험 요소를 간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시설물 안전점검 주체의 전문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시설물 안전점검 과정에서 국토교통부 등의 관리당국이 현장 안전 점검을 용역업체에 일임하고 있지만 안전을 점검하는 용역업체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밀점검을 진행하는 용역 업체가 경쟁입찰로 선정되면서 비용적인 측면만이 고려되고 용역업체 인력의 자격, 경력 등을 토대로 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용역업체가 가격 경쟁을 통해 계약을 성사시키려는 과정에서 경험이 부족한 인력이 채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인력의 안전 점검 자격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안전점검 이후에도 안전 취약 시설에 대한 관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재난안전 총괄부처인 행정안전부가 D·E 등급 판정을 받은 시설물에 대해 안전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지만 권고사항이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지 않고 방치되는 상황이다. 복기왕(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안전관리원로부터 받은 「시설물 안전등급 D/E 등급 현황」에 따르면 전국 시설물 중 안전등급 미흡에 해당하는 D등급과 불량인 E등급 판정을 받은 시설물 개수가 2022년 660개, 2023년 688개, 2024년 663개로 드러났다. 이는 안전 취약 시설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채 교수는 “시설물 점검이 진행됐음에도 시설물 안전등급 D·E 등급을 받은 시설물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등 시설물 관리당국이 국가기반을 이루는 시설물 보수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공건축·구조물은 국가기반시설이자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물이기에 안전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점검과 보수·보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노후화된 국가 시설물이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올해 1월 국토교통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인프라 총조사 결과 전체 인프라 시설 383,281개 중 사용연수가 20년 이상 지난 시설물은 51.2%인 196,325개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노후화된 인프라 시설물의 보수가 지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설재난의 위험 요소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설물 점검이 대부분 육안으로 진행되는 문제는 시설물 안전점검 관련법에 구체적인 점검 사항이 명시되지 않은 데에 기인한다.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시설물안전법) 제2조 제5항에서 육안이나 점검기구를 통해 위험 요인을 조사하도록 규정하지만, 점검방식에 따른 구체적인 점검 과정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용이 저렴하고 간편한 방법인 육안검사만으로 외부 손상 여부를 확인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시설물안전법에는 개괄적인 점검 방식만을 규정하고 있어 육안검사 중심으로 이뤄지며 안전을 완전히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안전 관리 및 점검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내에 용역업체가 진행한 안전점검 결과를 재차 평가할 담당자가 없는 점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용역업체가 점검을 진행하더라도 점검 결과를 독립적으로 검토하고 추가 점검 사항을 결정할 인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용역업체에 안전점검 사항을 일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안전점검의 신뢰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임 교수는 “용역업체 점검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나 점검한 사항을 재차 확인할 수 없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노후화된 인프라 시설물을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산이 부족해서다. 노후화된 시설물의 성능을 보수·보강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지만 이를 위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의 「2023회계연도 국토교통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개요」에 따르면 2023년 ‘노후기반시설 성능개선 지원 시범사업’ 예산으로 25억 원이 지원됐으나 2024년 국토교통부 예산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액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임 교수는 “안전관리 예산은 노후화된 시설물을 관리하는 데 있어 핵심 자원이지만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시설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시설물안전법에 구체적인 안전점검을 규정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정기안전점검 시 육안검사가 가능한 부분과 세밀한 점검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해 각기 다른 점검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특히, 취약 부위에는 시설물 엑스레이(X-ray) 촬영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육안검사 외에도 기술을 활용한 정밀검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령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 내에 안전점검 전문가를 담당자로 배정하고 이 담당자가 용역업체의 점검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해결책이 제시된다. 용역업체의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용역업체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로써 미흡한 점검 과정을 보완하고 점검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김 교수는 “안전점검 당국에서 용역업체의 점검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점검의 신뢰성을 높이고 시설물의 안전성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시설물 관리 조치가 이행될 수 있도록 안전관리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설물이 사유재산에 속하지만 시설물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사안이기에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안전취약시설을 방치할 경우 건축물 관리자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관리당국이 보수·보강 조치를 실시한 이후에 건축물 관리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등의 대안이 제시된다. 임 교수는 “건축물 관리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통해 안전등급 미흡 이하의 시설물 방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후 시설물을 보수·보강하기 위해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노후 시설물에 대한 지원은 재난상황이 발생해야 재난예방 효과를 파악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통해 안전성을 높이며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지속적으로 안전관리 예산이 확보되면 시설재난 예방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결국 재난 대응체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와 시민이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설문조사와 같은 일회적인 의견 수렴 과정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 지방자치단체 내 위원회 등의 창구를 통해 지속적인 형태로 의논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채 교수는 “지역의 특성과 시설물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 시민이 재난 대응체계 마련 과정에 참여해 논의를 진행하면 안전관리를 이룸과 동시에 시민안전의식까지도 제고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