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대가 꼭 알아야 하는 경제 상식’ ‘경제 초보를 위한 경제 개념 10분 요약’ 인터넷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경제 관련 콘텐츠들이다. 대학생이 됐으면 경제개발 상식 정도는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관심을 가져보려 해도 까다로운 경제 용어가 발목을 잡기 일쑤다. 겨우 이해했다 하더라도 경제 뉴스 한번 읽어볼까 하면 공부했던 기억이 휘발되곤 한다.
경제주체로서 현명하게 소비하고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사회 전체의 경제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경제 원리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이를 사회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경제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당 10,030원. 내년에 시행될 ‘최저임금’의 금액이다.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받는 최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 생활을 유지하도록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매년 최저임금의 인상 폭을 두고 최저임금 합의 주체인 노동자와 사용자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정부는 양측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논의와 결정을 추진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치기에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최저임금의 산정 기준과 최종 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살펴보자.
이승희 기자
노동의 가치가 숫자로 환산되다
노동’은 인간의 육체·정신적 능력을 활용한 생산활동을 일컬으며, 자본이나 자연자원처럼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주요 생산요소 중 하나다. 개별 노동자인 가계가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기업이 이를 활용해 상품을 생산해 낸다. 자본이나 자연자원이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하는 것과 달리, 노동은 사람의 노력과 활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요소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정민(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의 경우 일반상품과 달리 사람의 기술로 생산활동을 하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기업은 노동력을 활용해 상품을 생산하고 그 대가로 가계에 ‘임금’을 지급한다. 이때 임금수준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먼저 ‘노동공급’은 일정 기간 가계가 제공하려는 노동의 양을 뜻하며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임금과 여가 등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 가계가 선택할 수 있다. 가계가 24시간 중 노동과 여가의 가치를 저울질해 노동공급량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가계가 노동을 제공하고자 의사를 표하면 기업이 이를 활용해 고용을 이룬다. 고용은 기업의 ‘노동수요’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수요는 기업이 상품 생산을 위해 구입할 의사가 있는 노동의 양을 의미한다. 기업이 판매하는 상품을 소비자가 구매하기를 원하는 정도, 노동에 따른 노동자의 생산량에 따라 기업의 노동수요가 비롯된다. 소비자가 기업의 상품 A를 많이 원하면 기업은 상품 A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추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가계가 제공하는 노동량인 노동공급과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량인 노동수요가 일치하면 노동시장에서 ‘균형’이 형성되고 이 지점에서 임금 수준이 결정된다. 일하려는 사람의 수와 일할 사람을 구하는 기업의 요구가 일치하면 임금이 정해진다는 의미다. 가계의 노동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기업의 노동수요가 증가하면 균형점에서 임금은 높게 형성되고 반대의 경우 균형점에서 임금은 낮아지는 형태를 띤다. 오상봉(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 본부장은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이 형성되며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지속적으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균형지점에서 모든 노동자가 같은 임금을 받지 않고 제각기 달라지는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 노동자의 교육 수준, 직무 숙련도 등의 요소에 따라 노동공급과 생산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학력 노동자와 숙련 노동자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우수한 생산성을 갖는 경향을 띠므로 높은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교육 수준이나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의 경우 비교적 많은 사람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어 노동수요에 비해 노동공급이 많고 생산량이 낮을 가능성이 커 임금은 낮아진다. 이 교수는 “통상적으로 근로자의 교육 수준, 직무 숙련 정도에 따라 노동자가 창출하는 생산물의 가치가 달라져 임금 격차가 나타난다”고 답했다.
낮은 교육 수준이나 비숙련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감소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정부는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해 지급되는 임금의 최하한선을 설정하고 있다. 기업과 노동자가 자유롭게 임금을 정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고자 최저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오 본부장은 “노동자는 노동에 의해 생활을 유지하는데 이때 노동자 생활 보호를 위해 최저임금을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산정 기준은 나라별로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자의 생계비’가 주요 산정 근거가 된다. 이를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참고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지출이 큰 식료품이나 교육비 등 주요 항목의 가격 변동을 분석해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 수준을 예측해 최저임금을 산정한다.
‘유사 근로자의 임금’도 최저임금 산정 근거로 작용한다. 유사 근로자란 직무나 업무 내용이 비슷한 다른 노동자를 의미한다. 특정 업종에서 최저임금을 유사 근로자 임금의 하위 10~20%에 해당하는 임금과 비교한다. 이후 격차와 불평등 정도를 분석해 최저임금이 조정된다. 유사 근로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삼으면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거나 높게 책정되는 것을 방지해 노동시장에서 임금 격차가 과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최저임금 산정 과정에서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도 주요 기준으로 활용되는데 이때 국내총생산(GDP)과 노동소득분배율이 지표로 사용된다. 국내총생산은 한 나라 영역 내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생산한 상품의 총규모를 나타내고, 노동소득분배율은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창출한 소득의 비중을 드러낸다. 두 지표를 활용하면 일정 기간 생산된 전체 상품 규모에서 국민의 소득 중 노동의 기여도를 파악해 최저임금 수준을 정할 수 있다. 오 본부장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의 지표를 총체적으로 고려해 최저임금이 산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기준이 최저임금 산정의 근거가 될 수 있으나 노동자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의 적정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노동자 각자의 생활 수준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를 운영해 노동자와 사용자 간 이견을 조율하며 노동자 생활 보장 및 경제적 형평성을 실현하고자 한다. 오 본부장은 “경제 지표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최저임금이 산정돼야 하므로 정부에서 논의를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러 입장이 합의돼야 할 때
다가오는 2025년의 최저임금은 시급 10,030원이다. 지난해 9,860원에 비해 1.7%가 인상된 수치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을 두고 ‘실망스러운 최저임금 결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노동자 생활을 보호하기에 턱없이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이라는 이유에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연도별 최저임금 결정현황」에 따르면 올해 시간급 최저임금 인상률은 2021년 인상률 1.5%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비율이다.
낮은 인상률을 두고 여러 지적이 들끓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률 심의 과정에서 공익위원이 노동자와 사용자(이하 노사) 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중립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먼저 노사가 인상률 안을 제시하며 합의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공익위원이 심의촉진구간 등의 중재안을 제시하고 투표에 부쳐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된다. 이때 노사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안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공익위원이 손을 들어주는 쪽에 최저임금 인상률이 판가름 난다는 지적이다. 이병훈(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캐스팅보트’로 불리는 공익위원의 의견에 따라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 과정에서 공익위원이 제시하는 중재안이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최저 생계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하는 데 목적이 있는 최저임금이지만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하지 못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이유에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7월 발표한 「2024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물가상승률 예상치는 2.5%이지만, 상술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7%로 결정된 바 있다.
최저임금 결정시 청년 등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뒤따른다. 2015년부터 위원회에 전국적인 노동조합의 소속이 아닌 노동자도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당시에 청년 노동자가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나 전체 청년 노동자를 대변하는 단체가 없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이들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정희(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기획실장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대표성이 실현되지만 청년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 대표위원으로 포함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전했다.
공익위원의 강한 영향력으로 인한 중립성 문제는 공익위원 선출 과정의 불투명성에서 비롯된다.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따라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한다. 이 과정에서 공익위원이 실효성을 담보할 권한과 책임이 부족한 학자나 교수로 구성돼 노사 양측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하기 어렵고 정부 정책에 부합하는 인물이 선정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노사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공익위원을 제외하는 절차를 거쳐서 정부가 공익위원을 선정하다 보니 정부 정책에 맞는 인물로 공익위원을 구성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률 산정 문제 원인으로 최저임금 산정 근거가 매번 달라지는 점이 제기된다.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인상률을 산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각 조건에 맞춘 통계 산출 방식이 다양하고 이를 해석하는 방식도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일례로 생계비 기준을 1인 생계비로 할지 가구생계비로 할지 등의 해석적 차이가 있다.
일부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됐는지 알 수 없는 점의 원인으로 최저임금 심의 회의과정 미공개가 지목된다. 대다수의 국민이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지만, 최저임금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 알 수 없어 소수 노동자의 목소리까지 반영됐는지, 정당성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이 정책기획실장은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위원의 모두발언만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으며 언론을 통한 회의록 공개는 위원의 의사 표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노사 양측의 의견이 균형 있게 반영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 산하의 최저임금위원회를 국회 산하로 이관해 공익위원을 선출하고 논의를 이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회를 통하면 공익위원 선출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논의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를 규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산하로 이관됐을 경우 여야 정당이 공익위원을 선출하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아래에 최저임금심사소위원회가 최저임금 심사를 맡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여러 입장을 반영해 공익위원을 선발하고 논의하도록 국회 산하로 최저임금위원회를 두는 방안이 제기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산정 방식의 해석적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관된 최저임금 산정 공식을 설정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물가상승률, 기업의 성장률 등 세분화된 근거를 바탕으로 임금 산정 공식을 마련하면 소모적인 논의를 줄이고 노사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인 이기재(사단법인 한국펫산업연합회) 회장은 “최저임금 산정 공식은 노사의 입장 차이를 줄여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 과정에서 회의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매년 최저임금 산정 근거와 방식 등에 있어 회의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부적절한 산정이라는 논란이 일기 때문이다. 회의과정을 공개할 경우 여러 이해관계자가 납득할 근거를 제시함과 동시에 사회적 관심도를 높여 다양한 노동자의 입장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이 정책기획실장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주관하는 TV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최저임금 논의의 쟁점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사회적 공론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