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세상을 등진 청년, 다시 세상과 마주하다 (한성대신문, 609호)

    • 입력 2025-03-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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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3-24 00:01

은둔 청년을 위한 기업 안무서운회사 유승규 대표

<편집자주>

친구를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흔한 일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을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립·은둔 청년(이하 은둔 청년)이다. 은둔 청년은 타인과 유의미한 사회적 관계가 부족하고 사회활동이 현저히 줄어 취약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가 부재한 청년을 말한다.

은둔 청년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은둔 청년의 수는 약 54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어떤 사람은 은둔 청년을 향해 ‘실패자’ 또는 ‘낙오자’라고 부르며 그들을 더욱 깊숙한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한다.

은둔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둔 청년을 돕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바로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31) 대표다. 그는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은둔 청년의 쉼터가 되고자 한다. 은둔 청년은 왜 사회로 나오는 문을 걸어 잠갔을까. 그리고 이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박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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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규 대표 [사진 제공 : 안무서운회사]

관계의 상처를 관계로 치유하다

유 대표는 자신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하며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유년 시절 해외에 계셨던 아버지와 그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일과 육아에 시부모님까지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이는 유 대표에게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따뜻한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가족 간 대화는 줄어들었고 소통의 단절로 이어졌다. 결국 유 대표는 세상과의 문을 닫고 은둔의 길을 걷게 됐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많은 걸 도맡게 되시면서 많이 지치셨어요. 어머니가 자해를 시도하시려는 모습까지 목격했죠. 제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 돌아온 아버지는 굉장히 파괴적인 인물처럼 보였어요. 부부 싸움을 하고 계신 상황에서 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제 말을 무시하셨죠. 진심으로 무언가를 얘기해도 상대방에게 닿지 않으니 절망감을 느꼈어요. 이때를 기점으로 은둔 생활에 접어들었던 것 같아요.”

상술한 이유들로 인해 유 대표는 20살부터 23살까지 약 4년 6개월의 기간 동안 은둔 생활을 보냈다. 그의 방은 얼마 되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장으로 바뀌었다. 하루종일 침대 위에 누워 의미 없는 생활만 반복할 뿐이었다.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단발적인 노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은둔 생활 당시에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어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죠. 쓰레기장이 된 방을 치우거나 생활습관을 바꾸는 책을 필사해도 무기력함만 더욱 커져갔어요. 제 고민이나 심정을 표출할 다른 길도 없었고요.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죠.”

그러나 유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은둔 생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던 중 그는 일본의 은둔 청년 지원 기업 ‘K2인터내셔널’을 발견했다. K2인터내셔널은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사업에 특화된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는 곧장 해당 기업의 한국 지부를 찾아가 다른 은둔 청년들과 함께 거주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혼자서는 은둔 생활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에서였다. 그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은둔 청년의 특성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편안함을 선물했다.

“처음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는 한 달 동안 저를 포함한 은둔 청년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억지로 할 일을 주었다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걸 기업 측에서 알았던 거죠. 그래서 이 시기에는 편안한 마음을 갖고 다른 은둔 청년들과 은둔생활이나 기간 등에 대해 얘기해보며 은둔 생활에 대해 복기할 수 있었어요.”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역할을 맡아 일정한 습관을 쌓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유 대표가 맡은 역할은 아침 식사 당번이었다. 2인 1조로 빌라에 사는 은둔 청년들을 깨우고 많게는 20인분의 식사를 만들었다. 아침 식사 당번은 그로 하여금 책임감을 함양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같이 사는 사람들을 깨울 때 부모의 입장을 체험해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함께 생활하는 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이는 것은 큰 책임감이 요구되는 행동이에요. 매일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을 깨우면서 자연스럽게 규칙적인 습관이 자리 잡히게 됐죠.”

6개월 동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점차적으로 은둔 생활을 극복해낸 유 대표는 ‘K2인터내셔널코리아’로부터 일경험 제의를 받았다. 은둔 청년들과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또 다른 은둔 청년을 돕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이때 그가 뼈저리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은둔 청년의 특성에 맞춘 프로그램이었다.

“이 시기에는 은둔 청년을 탐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어요. 단순히 은둔 청년에 대한 복지나 방문 상담으로는 절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은둔 청년이 위축된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어요.”

유 대표가 은둔 생활을 극복해내는 데 큰 도움을 줬던 K2인터내셔널코리아는 2021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폐업했다. 이때 그는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2명과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직원 2명과 함께 ‘안무서운회사’를 설립했다. 함께 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K2인터내셔널코리아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회사가 사라지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소중한 보금자리가 상실당하는 기분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K2인터내셔널코리아가 폐업했을 때는 제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요. 회사에서는 내가 맡은 역할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지니까 엄청난 상실감이 밀려온 거죠. 그럼에도 처음에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었어요. 긴 시간동안 은둔 생활을 보냈고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해본 경험도 없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주변 친구들이 제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회사 설립을 제안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바로 안무서운회사죠.”



▲셰어하우스에 거주하는 인원들끼리 생일 축하 파티를 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안무서운회사]



또 다른 ‘나’에게 손길을 건네다

안무서운회사는 다른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회사와 달리 은둔 청년 출신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모든 구성원이 청년이라는 점도 타 은둔 청년 지원 회사와 차별화되는 점 중 하나다.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은둔 청년들이 마음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끔 안무서운회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보통 우리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안 무서운 사람’이에요. 내가 민감한 얘기를 꺼내도 비판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요. 이런 사람들이 많은 곳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안무서운회사라는 이름이 나오게 됐어요. 아직까지는 회사의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이름의 값어치는 실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유 대표는 과거 다른 은둔 청년들과 함께 거주하며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은둔 청년을 위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무서운셰어하우스’(이하 셰어하우스)다. 셰어하우스는 은둔 청년들이 함께 살며 규칙적인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22년부터 시행된 셰어하우스를 거쳐 간 인원은 지금까지 약 20명으로, 이중 대부분의 인원이 사회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예전에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혼자서는 절대로 은둔 생활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것이 바로 셰어하우스에요. 은둔 청년끼리 함께 사는 방식을 채택한 또 다른 이유는 혼자서 은둔 생활을 극복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에요. 상담을 받는다고 해도 정해진 상담 시간 이외에는 도움을 줄 방법이 전무하죠.”

은둔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은둔 청년들과 보다 깊은 공감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안무서운회사는 ‘은둔 고수 양성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은둔 고수 양성 사업은 은둔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양성 과정을 거쳐 은둔 청년을 돕는 ‘은둔 고수’로 거듭나게 하는 사업이다. 은둔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유관기관 탐방 및 견학, 상담 실습 등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은둔 고수는 은둔 청년들과 상담을 진행하며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또한 셰어하우스의 은둔 청년들과도 함께 생활하며 은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은둔 고수는 은둔 청년들이 사람 사이의 관계와 생활 기술 등을 천천히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은둔 고수는 일반 상담사보다 은둔 청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죠. 은둔 청년의 방 상태를 보고 은둔 기간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어요. 은둔 경험을 가진 사람이 상담 수련 과정을 거치면 그 사람은 은둔 청년에게 내면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유 대표는 은둔 청년들이 사랑의 경험까지 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이 인간관계에서 많은 깨달음을 주며,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은둔 청년이 사회에서 자립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사랑하면서 성장해나가길 바란다.

“사랑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짝사랑을 하거나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한 행동을 반성할 수 있죠. 하지만 은둔 청년들은 위축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사랑을 나누기 어려운 편에 속해요. 위축된 상태에서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예요.”

누구나 은둔 청년이 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만 19~34세 사이의 은둔 청년은 2019년 약 34만 명에서 2021년 약 54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렇듯 은둔 청년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유 대표는 누구나 은둔 청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기질이나 상황에 따라서 은둔의 시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은둔은 모든 사람들이 갖는 잠재적인 문제예요. 명문대에 갔는데 경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해외 유학을 갔다가 실패한 사람 등과 같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누구나 무너질 수 있죠.”

마지막으로 그는 청년에게 힘든 상황 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지 못하면 결국 마음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좋은 상황 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런 상황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용기를 내서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세요. 물론 좋지 않은 결과가 뒤 따라올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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