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많은 청년문화예술패스
국내 도입 과정에서 논의 부족
청년 수요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문화예술에 대한 청년층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진 만큼 관람료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 청년에게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는 ‘청년문화예술패스(이하 문화예술패스)’ 사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문화예술패스가 본래 목적과 달리 청년의 문화예술 향유를 보장하기 어려운 ‘반쪽짜리 지원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화예술을 가장 많이 즐기는 연령대가 청년층이지만, 비용 등의 제약으로 온전히 문화예술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문화예술 활동조사」에 따르면 20대의 문화예술 직접 관람률은 86.6%로 가장 많은 향유 연령층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문화행사 참여 시 어려운 점으로 ‘비용이 많이 든다’고 답한 연령층은 15~19세가 22.7%, 20대가 22.8%로 평균 14.9%를 상회하는 수치를 보였다. POSTECH 무은재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최주연 학생은 “문화생활을 위한 비용에 많은 부담이 든다”고 전했다.
이처럼 문화예술 관람에 대한 청년층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자 시행된 것이 문화예술패스다. 문화예술패스는 만 19세 청년 대상이며 공연·전시 관람료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1인당 10~15만 원의 금액이 포인트로 지급된다. 매해 3월 초부터 5월 말일까지 문화예술패스 신청을 받으며, 선정 이후에는 12월 말일까지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문화예술패스는 궁극적으로 문화예술계 지원을 목표로 한다. 문화예술패스를 통해 청년의 문화예술 활동을 독려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예술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간접 지원을 실현하고자 한다. 백선혜(서울연구원 포용도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충분한 문화향유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화예술패스는 만 19세 청년들에게 문화예술 향유를 장려하는 정책적 지원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사업 효과를 거두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으나 정작 이용률은 낮은 실정이다. 문체부가 조계원(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만 3,180명의 청년에게 약 148억 원 상당의 포인트가 지급됐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기준 사용 금액은 14.3%에 불과한 21억 원가량으로 나타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기헌(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기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약 23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청년의 문화예술패스 이용률은 매우 저조했다”고 지적했다.
신청 과정에서 연령대가 오직 만 19세로 제한되며 문화예술패스의 본래 목적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화예술패스의 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지원 대상이 폭넓게 선정돼야 하지만 단일 연령층에만 국한된 실정이다. 이에 청년 문화 향유 기회 확대와 간접적 문화예술 산업 지원이라는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나이만을 기준으로 수혜 대상을 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전했다.
문화예술패스가 지방에 비해 수도권에 편향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문화예술패스 신청 시 선착순으로 지원 대상자가 선발된다. 이때 지자체별로 배정된 예산에 따라 지역별 선착순 마감 인원이 달라진다. 수도권은 지방에 비해 배정 인원이 훨씬 많게 배정되고 있다. 상술한 조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별 문화예술패스 발급 비율은 서울이 92.2%였다. 이에 비해 경기 74.3%, 경남 55.9%, 부산 59.4% 등 타 지역은 저조한 수치를 보였다.
문화예술패스 관람 범위가 제한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문화예술패스는 연극, 뮤지컬, 클래식, 콘서트 등 주로 음악 분야에 치중돼 있다. 그마저도 문체부 측에서 지정한 공연 또는 전시만 관람 가능하다. 청년이 선호하는 영화나 음악 외 부문인 토크 콘서트 등에 활용이 제한되는 실정이다. 상술한 문체부의 자료에 따르면 국민이 선호하는 문화예술행사는 영화가 52.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의원은 “정부가 지정한 공연·전시만 보라는 식의 설계는 공급자 중심의 행정 편의적 사고이자 경직된 접근”이라고 밝혔다.
관람 범위가 좁은 상황에서 문화예술패스의 ‘기한 내 미사용분 회수 방침’도 문제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는 문화예술패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5월 말 이후 30일 이내에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전액 회수되는 방안이다. 청년의 신속한 문화예술 향유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지만, 회수 기한이 지나치게 짧아 실질적인 문화예술패스 활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백 선임연구위원은 “청년이 원하는 공연 또는 전시의 개최 시기가 도래하지 않아 문화예술패스를 사용할 수 없는 청년이 존재할 수 있으나 이러한 요건들이 고려되지 않은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최 학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화예술패스를 사용하지 못해 금액이 회수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술회했다.
문화예술패스의 연령 제한 문제는 프랑스 등의 해외 사례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적·제도적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에서 비롯된다. 프랑스에서 실시하는 ‘문화패스(Pass Culture)’는 2018년부터 1년간 14개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하며 공연, 영화, 도서, 음반 구매, 예술 수업 등 전면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2021년 전국으로 문화패스 지원이 확대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국 단위 시행에 초점을 두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지원 범위와 내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자체별로 문화예술패스 예산이 적절히 분배되지 않은 점이 수도권 편향 문제를 야기했다는 분석도 나타난다. 현재 문화예술패스 사업 예산은 『지방재정법』에 따라 ‘매칭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매칭 방식이란 하나의 사업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정해진 비율로 비용을 분담하며 공동으로 추진하는 형태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하지만, 재정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동일한 비율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는 지방비*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대전시는 매칭 방식을 택하지 않았고, 타 지역과 비교했을 때 문화예술패스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예술패스 사업 시행 전 청년을 대상으로 한 수요조사가 부재한 점이 관람 범위 제한의 원인으로 꼽힌다. 문체부가 문화예술패스의 수요조사를 통해 대상자의 실제 관심사를 반영한 지원 방안을 마련했어야 하지만, 절차가 생략되며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민대학교 나노전자물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준영 학생은 “청년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가 추가된다면 문화예술패스 사용률이 저조할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용분 회수 기한 문제는 회수 재분배를 통해 이용률을 높인다는 탁상행정에 기인한다. 1차 발급 후 미사용분은 2차 발급을 통해 이용률을 제고하겠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2차 발급 심사 기간은 7월 초부터 11월 말일까지다. 이에 따르면 재차 문화예술패스 가용 기간이 한 달에 남짓하게 된다. 이용교(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문화예술패스 이용 기간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문화예술패스 대상 연령을 확대해 더 많은 청년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연령 확대가 문화예술패스의 본래 목적인 청년의 문화소비를 신장시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윤경(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 문화예술가치확산연구실) 연구원은 “만 19세뿐만 아니라 20대 초중반의 청년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 측에서 이들에게도 문화예술패스를 통해 문화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매칭비율을 유동적으로 조절해 지자체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지자체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지역 간 사업 추진의 격차도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따른다. 김진각(성신여자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상이한 지자체 재정을 고려해 지방비 매칭 금액을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측에서 지자체별로 최소한의 문화예술패스 발급 비율을 지정해야 한다는 해결책 또한 요구된다. 지역 간 문화예술 혜택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하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의원은 “지자체별 일정 수준의 문화예술패스 발급률을 보장해 실질적인 이용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했다.
문화예술패스 신청 기간 전 청년층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선호 분야에 대한 수요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문화예술패스가 청년의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라면 청년의 실질적인 수요를 조사하고 이에 따라 장르 또는 사용처 등을 유연하게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의원은 “향후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상시적인 수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학생은 “문화예술패스의 문화예술 지원 분야에 대해 미리 조사하는 것은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지나치게 짧은 문화예술패스의 사용 기한을 늘려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문화예술패스는 한 달 이내에 사용해야 하지만 신청 기간이 약 5개월로 지정돼 있다. 신청 기간을 줄이고 사용 기한을 늘린다면 관람률 증진이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다. 김 학생은 “사용 기한이 연장되면 문화예술패스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청년들이 문화예술패스로 하여금 문화예술을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예술패스의 근본적인 목적은 청년들이 문화예술에 장기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은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 사업에서 탈피해 ‘청년이 주도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비 :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등에 지출하는 경비
박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