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관세를 둘러싼 줄다리기, 국익의 밧줄을 당기다 (한성대신문, 610호)

    • 입력 202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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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4-14 00:00

지난 3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50개국에 대해 관세율 인상안을 발표했다. 각국은 거세게 몰아치는 관세 폭풍에 대비하고자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전략 마련에 혈안이다. 관세가 무엇이기에 세계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관세의 개념부터 이번 조치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까지 살펴보자.

국제 질서를 설계하다

관세는 국가 간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며 무역 거래에서 상품에 부과되는 조세를 의미한다. 오랜 세월 인류의 무역과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친 관세는 각 시대에 따라 그 형태와 목적이 차츰 변화해 왔다. 박영태(동의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관세는 단순한 세금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시대적 전환 과정에서 국가 경제 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고 말했다.

고대 문명의 발흥과 함께 관세의 역사도 시작됐다. 당시 상인은 타국의 경계를 넘어 상업을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통행세나 입국세의 형태로 관세가 부과됐다. 이는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주요 수단이 됐다. 특히 왕권이 강력했던 해당 시기에는 재정 확보가 곧 통치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이었기에 무역을 통한 관세 징수가 필연적인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김석오(국제관세무역자문센터) 이사장은 “고대에는 육로나 항로를 통할 때 통행세와 상품세를 징수해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중세를 거치며 이동 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관세는 점차 세분화되기 시작하며 부과 방식도 달라졌다. 상인들은 낙타, 마차, 선박 등을 이용해 유럽과 아시아, 중동을 연결하는 장거리 교역로를 개척했다. 이에 다양한 지역 간의 물자와 문화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당시 관세는 단순히 통행세를 넘어 상품의 종류와 가치를 기준으로 세율이 달라지는 등 보다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를 통해 각국은 재정 수입을 확대하는 동시에 품목별로 차등적인 관세 체계를 정립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향신료나 귀금속 등의 사치품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을 부과함으로써 한정된 수입량에도 높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산업화를 거치며 무역 품목과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관세는 재정 확보 수단에서 나아가 외국 상품의 유입을 조절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동일한 품목의 외국산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자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이처럼 관세는 국가의 산업 구조와 경제 방향을 조율하는 전략적 도구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각국은 관세를 국력 경쟁의 수단으로 삼아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식민지에 대해 경제적 착취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했다”고 부연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며 활발한 무역을 배경으로 세계 경제는 호황기를 맞았다. 그러나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대규모 실업 사태인 대공황이 발생했다. 이 상황에서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와 국가 재정 확보를 위해 고율의 관세 정책을 도입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수입 공산품에 대해 평균 59%, 최고 40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는 국제 무역을 급감시켰고 경제 불황 심화로 이어졌다. 고율 관세를 둘러싸고 자국 산업만을 보호하려는 관세 전쟁으로 촉발됐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양기(부산대학교 무역학부) 교수는 “당시 자국 중심의 무역이 확산되며 단순한 경제 침체를 넘어, 국제 질서의 균열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관세로 인한 과거의 병폐를 반성하며 자유로운 무역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국가 간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체결됐고, 이후에는 이를 계승·발전시켜 세계무역기구(이하 WTO)를 설립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무역 규범 아래에서 거래가 이뤄지도록 했다. 해당 시기에는 관세를 0%로 부과하기도 하며 각국의 산업이 다방면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관세를 인하하며 자유로운 무역 거래를 진행하려는 세계적인 논의가 이뤄졌다”며 “WTO하에서 각국이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맺으며 0%가량의 관세율이 형성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국제 규범을 기반으로 현재의 관세의 기준이 마련됐으나, 오늘날에 이르러는 관세가 정치·경제적 ‘협상카드’로 활용되는 양상도 보인다. 관세 인상을 통해 관세 부과국이 상대국의 수출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 전반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상대국은 외교적 협상이나 정책 조정을 통해 갈등 해소를 시도한다. 김 이사장은 “세계적인 무역 규모가 약 33조 달러로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지닌다”며 “관세를 이용해 무역에 제재를 가할 경우 정치·사회·경제적 협상을 이루기 수월해지므로 이같은 움직임을 띤다”고 답했다.

무역의 흐름을 재단하는 기준선

관세는 여러 국가 간 국경을 넘어 이뤄지는 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이므로 그 부과 방식과 대상, 종류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분돼 적용된다. 먼저 ▲수입세 ▲수출세 ▲통과세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수입세는 외국에서 국내로 물품이 들어올 때 부과되는 세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입세만을 부과한다. 수출세는 국내 상품이 해외로 반출될 때 적용되며 러시아와 같이 원유 등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가 재정 확보 수단으로 활용한다. 통과세는 제3국으로 향하는 물품이 자국을 경유할 때 과세되는 형태로, 국경이 맞닿은 국가가 많은 내륙국가에서 사용된다.

상품이 국경을 넘어 부과되는 방식이 결정되면 이후에는, 각국의 경제 여건과 산업 보호 정책 등을 고려해 세부적인 관세율이 조정된다. 이러한 관세율은 크게 ▲기본관세 ▲잠정관세 ▲탄력관세 ▲협정관세 등으로 나뉘어 부과된다. 기본관세는 특별한 우대나 규제가 없는 일반 수입품에 적용되는 표준 세율을 의미하며 잠정관세와 탄력관세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거나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세율이다. 협정관세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국제 협약에 따라 특정 국가의 물품에 대해 일반세율보다 낮은 우대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상호 호혜적 통상 관계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기본적인 세율 기준이 설정되면 구체적인 과세가격이 형성되고 소비자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과세가격은 물품의 실제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되며, 거래가격에는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운송료, 보험료 등의 부대비용이 포함된다. 귀금속과 같이 부대비용 이상의 고유한 위험성을 지닌 상품의 경우, 단순한 거래가격만으로 적절한 과세가격 산정이 어려울 수 있다. 이때는 동종·동질물품 또는 유사물품 등의 가격을 참고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과세가격이 설정된다.

설정된 과세가격을 어떤 나라에 적용할지에 따라 다시 한번 부과 방식이 구분된다.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보편관세’와 ‘상호관세’가 있다. 보편관세는 모든 국가에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특정 국가를 차별하지 않고 공정한 무역 질서를 지향한다. 반면 상호관세는 상대국이 자국 제품에 어떤 관세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대응 원칙으로 작용할 수 있어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통상 마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김진규(조선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상호관세는 상호무역법을 근거로 교역국이 자국 상품에 부당한 조치를 취할 경우 이에 대응해 해당국의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라고 부연했다.

관세전쟁의 서막이 열리다

지난 3일 발표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조치는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 정치·경제적 협상을 위한 ‘경고’로 해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철강·알루미늄 제품 등에 각각 25%, 10%의 인상된 상호관세가 적용된다. 또한 보편관세 방식에 따라 기본관세가 10%로 인상된다. 이는 대다수의 품목에 인상된 관세를 적용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미국산 제품에 인상된 관세율을 적용할 경우 미국 또한 이에 상응해 추가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를 통해 교역 상대국과의 관세 형평성을 추구하고자 강력한 협상 권한을 갖게 된다”며 “협상 불발 시 대통령은 해당 국가에 추가적인 관세 명령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인상된 관세가 적용되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해당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원자재나 생산지가 미국이 아닐 경우, 모두 인상된 관세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원자재 수급부터 생산 방식까지 미국의 관세 조치에 부합하는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미국 내에 새로운 생산 공장을 설립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관세 조치 변화로 인해 국내 산업이 미국 산업에 맞춘 이원화된 생산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과 우리나라 간 무역 거래의 불안정성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제품에 대해 0%의 협정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관세 인상 조치는 이러한 협정 내용을 사실상 무시한 것으로 향후 협정의 실효성과 신뢰성에도 위기가 더해지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한미 FTA가 체결돼 있는 상황에서 보편관세 인상이 발표되며 혼란이 발생한 바 있다”며 “협정 자체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역시 대응책이 마련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제 무역 질서의 불안정성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표출되고 있다. 각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 아래 예측 가능한 무역 질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보복형 상호관세를 도입하면서 중국, EU 등의 주요 국가들도 상호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는 미국을 기점으로 예측 불가능한 무역 환경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박 교수는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무역 거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인 무역 환경을 고려한 지혜로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언했다.

이러한 무역 질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국제 협정을 통한 공동 대응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개별 국가가 독자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자간 협정 가입을 통해 공동 대응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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