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 사회대개혁 실현하자!’. 지난 1일 개최된 ‘2025 세계노동절대회(이하 노동절대회)’에서 폭우 사이로 울려 퍼진 구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의 조합원과 시민은 ‘노동조합법 개정’,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등을 요구하며 노동권 신장을 촉구했다.
피땀으로 지킨 권리, 노동삼권
5월 1일 열리는 노동절대회는 135년에 이르는 역사를 지닌다. 자본주의가 비약적으로 팽창하던 19세기, 국가와 기업은 산업의 성장과 이윤 극대화에 몰두했다. 그 이면에서 노동자는 하루 14~18시간 저임금 노동에시달리며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자본은 노동자의 삶에 무관심했고 1890년,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과 권리 보장을 외치며 집단적 투쟁에 나섰다.
당시의 투쟁은 조직적인 시위가 아닌 개인들의 자발적인 결집으로 이뤄졌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삼권이 법적으로 명문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비공식 집단은 제도 밖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사용자나 정부와의 공식적인 협상 주체로 인정받기도 어려웠다. 요구보다는 ‘호소’에 가깝게 여겨졌으며 정책이나 협상의 테이블에 반영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개선되지 않는 노동자의 상황 속에서 노동자가 기업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담론이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을 전후한 민주화 과정을 거쳐 ‘노동삼권’이 확대 수용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헌법』은 노동삼권을 통해 노동자가 노동조합(이하 노조)을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으며 임금·근로조건 등에 대해 협상할 수 있음을 규정한다. 또한 교섭이 결렬될 경우 파업이나 쟁의행위를 통해 집단적인 의사를 표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한다. 오늘날 노동삼권 보장과 노조 활동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며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한다.

노동권, 불법의 낙인이 찍히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권리가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이다. 고용노동부가 1977년부터 3년마다 발표하는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에 따르면, 2023년 노조조직률은 13%에 불과하다. 2000년대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14.2%가 최대치였다.
노동탄압 역시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지난 2월, 법원은 1심에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인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이하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의 파업에 대해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022년 임금 인상과 노조 활동 인정 등을 요구하며 51일간의 쟁의 행위를 벌인 바 있다. 파업 직후 사측은 조합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으며 이번 판결과 별개로 47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다.
노동자들은 이에 대항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2조, 제3조 개정과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부르짖고 있다. 노동조합법 제2조, 제3조는 노동자의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를 통해 사용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개인이나 노조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음을 명시한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대한민국헌법』에서 규정하는 노동삼권이 침해된다는 지적이다. 모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통해 법적 지위를 갖는 노동자로 인정받고, 노조를 통해 실질적인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흩어졌던 숨들이 모여 만든 소리
이러한 노동 현실에 맞서, 노동자는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일 민주노총의 주최로 열린 노동절대회는 서울을 포함한 전국 13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됐다.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주최 측 추산 3만 명이 운집했다.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진행된 노동절대회는 사진전, OX퀴즈, 부대행사 등 사전 행사로 시작됐다. 이후 본대회의 개회선언과 대회사, 각 노조대표들의 투쟁발언에 이어 퍼레이드 순으로 이뤄졌다. 사전대회는 시민들이 노동권과 인권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체험형 부스 형태로 구성됐다. 이겨레(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장은 “지난 정부의 탄핵 과정을 거치며 광장에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확인했다”며 “그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예년과 달리 사진전, 게임, 부스 등의 사전대회를 기획했다”고 전했다. 정현철(직장갑질 119) 사무국장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맞설 수 있는 권리와 대응 방안 등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며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안내 자료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서가 인쇄된 마우스패드 등의 상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본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선언에서 현재호(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안전하지 못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가 청년노동자들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빼앗고 있다”며 “청년들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섹알마문(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 역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기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겠다”고 천명했다. 김명흠(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조) 조합원은 “나는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으로서 평등한 일터, 평등한 사회를 위해 노동절대회에 함께하겠다”고 부연했다. 이후 대회사에서 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노조할 권리를 쟁취하고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자임을 확인받자”며 “성별이나 인종, 고용형태로 만연한 차별에 맞서 민주주의의 빗장을 과감히 열어젖히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쟁발언을 위해 단상에 오른 최윤실(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 누구나노조지회) 운영위원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도래하기 위해 사회대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우석(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의정부양주) 지대장은 건설노동자가 마주한 산업재해, 해고, 노조 탄압 등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해결을 촉구했다. 이어 노동조합법 제2조, 제3조 개정도 피력했다.
마지막 순서로 노동절대회에 참여한 모든 노조의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전국사무금융노조 ▲전국언론노조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민주일반연맹 ▲전국금속노조 ▲전국건설노조와 각종 연대단체가 서울고용노동청 앞 거통고 고공농성장을 거쳐 광화문북광장으로 향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수노조 ▲전국대학노조 ▲전국여성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전국교직원노조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총 경기본부 ▲민주노총 인천본부 등은 명동역 1번 출구 세종호텔 정리해고 고공농성장을 지나쳐 광화문북광장으로 합류했다.
이날 노동절대회에는 청년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탄핵 정국 이후 청년층의 노동권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인 단위로 노동절대회를 즐기는 모습도 두드러졌다.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 고용 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지난 정부의 노조 탄압과 노동계 전반에 대한 압박이 모든 노동자에게 닥쳐올 수 있는 공동의 위기라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조윤재 학생은 “윤석열 정권 당시 건설노조 탄압, 양회동 열사 분신 투쟁 등을 보고 노동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리했다”고 밝혔다.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승훈 학생은 “대학생의 경우 아르바이트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과 임금체불 등의 영향을 받는다”며 “이 역시 노동권과도 직결된 문제이므로 관심을 갖고 노동절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이미숙(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강화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고용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현실의 노동조건을 개선시켜야 함을 피력하고자 참여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고용, 소득, 사회 보호 등을 보호할 수 있는 방책이 필히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금번 노동절대회는 제21대 대선을 앞둔 행사였다. 윤석열 정부는 재임 기간 동안 노동권을 위축시키는 각종 정책을 펼쳐온 만큼, 노동권 신장의 갈림길에 선 시점이다. 새롭게 출범할 정부와 국회가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전환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