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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가사·육아 분야 활동 시범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해당 사업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에게 ‘가사사용인’이라는 지위를 부여해 가사 및 육아 노동에 투입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다.
해당 사업 공개 이후,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한 저비용 인력 확보 수단이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가사사용인이라는 지위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 주요 노동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가사서비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외국인 가사사용인의 활용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부분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과 관련된 제도적 보호는 미비하다. 법의 보호 밖에 놓인 외국인 가사사용인의 상황과 이를 타개할 지원 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박석희 기자

지난 3월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와 법무부는 국내 체류 외국인 가사·육아 분야 활동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의 부담을 덜고,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됐다. 가사사용인으로 고용된 ▲외국인 유학생(이하 유학생) ▲졸업 유학생 ▲결혼이민자 가족 등은 서비스 이용 가정에 투입돼 근무하게 된다.
가사사용인은 ‘가사근로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 가사근로자는 정부의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의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이용자에게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가사사용인은 이용자와 사적계약을 맺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권남표(하라 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에서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 소속된 가사사용인만 가사근로자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가사사용인 중 가사근로자의 비율은 1~2%에 불과하다”고 첨언했다.
정부는 특히 유학생이 본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유학생의 근무 시간이 제한돼 있는 점을 노려 취업 시간 확대를 내건 것이다. 근무 시간이 주중 10시간에서 최대 35시간으로 늘어나며, 최대 2곳에서 3곳까지 근무가 가능하도록 허용된다. 또한 비자 체류 기간을 연장할 때 가점을 부여하고, 봉사활동 점수를 제공한다. 최영미(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정부는 해당 사업이 최저임금 미적용이라는 점이 알려진 이상 자발적으로 참여할 유학생이 없을 것이라 판단해 인센티브를 준비했다”며 “유학생이 가사·돌봄 노동을 수행하며 겪는 업무 부담에 비해 혜택이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업 시행을 위해 정부는 해외의 저출생 극복 제도를 차용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 여성의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다. 해당 국가들은 수요자가 민간 중개기관의 알선을 거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 이때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가사사용인과 유사한 형태다. 윤자영(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외국 가정에서 일정 시간 아이를 돌봐주고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며 숙식과 소정의 급여를 받는 ‘오페어’ 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전했다.
앞선 사례를 차용한 시범사범 또한 외국인 가사사용인에게 이용자가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임금체불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외국인 가사사용인은 피해를 제대로 신고할 수 없는 구조에 놓인다. 양승엽(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시는 국내 체류 외국인의 취업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가사·육아 분야에서 최저임금 미만으로 인력을 부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인권 및 사생활 침해를 당하는 문제도 나타난다. 가사사용인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인권 침해 수준의 사적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열린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관계자 간담회’에서 중개업체가 통금 시간을 정해놓고 추석 기간 외에는 외박도 금지시키는 등 신체적 통제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온 바 있다. 하은성(샛별 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외국인 가사사용인은 인권 침해에 손쉽게 놓인다”며 “이러한 문제가 반복된다면 이들에 대해 ‘통제당해도 되는 노동자’라는 인식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권 침해가 만연한 실정임에도 외국인 가사사용인이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안정적인 생활과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마련한 ‘서울시 외국인노동자 지원기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사용인은 가사근로자와 같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부당한 상황에 처해져도 피해 요청이 불가능하다. 양 부연구위원은 “언어가 서툴고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외국인 가사사용인은 권리 구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가사사용인과 이용자 사이의 계약 알선 회사인 ‘이지태스크’의 법적 자격 부재도 가사사용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직업안정법』에 따르면 등록 또는 허가를 받지 않고 유료직업소개사업*을 한 자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지태스크는 유료직업소개사업자가 아닌 구인·구직 정보 등을 제공하는 ‘직업정보제공사업자’다. 따라서 단순히 직업 정보만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온 이지태스크는 구인자와 구직자 사이의 계약 알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다. 양 부연구위원은 “지자체가 추진하는 직업알선사업에 ‘무자격 업체’가 등장하는 것은『 직업안정법』이 오래전부터 규정한 기본 정신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사사용인이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점이 임금 지불 근거 부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외국인 가사사용인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노동 환경에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책이 없다는 의미다. 윤 교수는 “외국인 가사사용인에게 적용되는 법률적 근거가 없어 이들이 최저임금을 지급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가사사용인의 근무 환경에 대한 근로감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 가사사용인의 인권 침해도 발생한다. 가사노동이 이뤄지는 가정은 사적 공간으로 분류돼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감독을 통해 여러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뤄지지 않아 외국인 가사사용인이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설명이다. 최 위원장은 “가정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비인권적 행태는 드러나기 어렵다”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집단적 대응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외국인 가사사용인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신고 기관이 부재해 이들의 피해 구제가 어렵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가사사용인의 사적 계약, 근무 환경 등을 고려한 기구는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국인 근로자를 위한 노사 불법행위 신고센터가 존재하는 것과는 상반된 실정이다. 윤 교수는 “법적 근거가 부재해 외국인 가사사용인을 위한 지원 기관이 마련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 위원장은 “시민단체들이 계속해서 기관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외국인 가사사용인들은 계약 중단에 따른 송환의 두려움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업체 선정 근거가 부실했던 점이 법적 자격을 갖추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서울시는 이지태스크가 구인자와 구직자 사이의 계약 체결 기술이 뛰어나고, 계약대로 업무가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 판단해 선정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직업안정법』 제47조에 따라 유료직업소개사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이지태스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져야 한다. 최 위원장은 “이는 『직업안정법』상 명백한 불법 행위”라며 “불법 행위를 한 이지태스크와 서울시 담당자에게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가사사용인에게 근로 관련 법령이 적용되게끔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동법 제11조에 따르면 가사사용인은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에서 벗어난다. 이에 외국인 가사사용인에게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등 기본적인 노동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 노무사는 “이번 사업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은 것은 서울시가 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우회한 것”이라며 “우회로를 통한 고용형태가 아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시 측에서 외국인 가사사용인의 근무 환경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일종의 ‘전담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를 통해 가사사용인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조직이 설문 등을 시행하면 사생활 침해 없이도 효과적인 관리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양 부연구위원은 “은폐되기 쉬운 환경에 놓인 외국인 가사사용인을 보호하기 위해 주기적인 감독을 시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가사사용인이 피해를 당했을 때 피해를 신고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를 통해 권리 구제가 어려운 외국인 가사사용인의 권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견해다. 최 위원장은 “가사서비스종합지원센터 혹은 외국인상담지원센터와 같은 전문적이고 공정한 기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료직업소개사업 자격을 갖춘 업체만이 사업에 선정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대책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와 사업 참여 업체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 노무사는 “유료직업소개사업 자격을 갖춘 업체만을 사업의 선정 대상으로 삼는 것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사용인에 대한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들을 단순히 집안의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식모’로 취급하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 위원장은 “가정 내 돌봄노동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돌봄노동 전체의 지위가 하락할 것”이라며 “이는 내·외국인 노동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두가 연대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논했다.
*유료직업소개사업 : 사람인 또는 알바몬과 같이 구인자와 구직자 간 고용계약을 알선하는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