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출 아닌 ‘탈출’, 생존을 위한 선택 (한성대신문, 611호)

    • 입력 2025-05-12 00:01
    • |
    • 수정 2025-05-12 00:01

<편집자주>

오는 19일은 성년의 날이다. 많은 청년이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지만, 성년으로의 진입이 두려운 청년도 있다. ‘탈가정 청년’도 그중 하나다. 탈가정 청년은 가정폭력 등의 이유로 원가정과의 물리적·정서적·경제적 단절을 선택해 자립해야 하는 청년을 말한다. 이들은 사회적 지지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마주한다.

탈가정 청년은 가정 내 폭력과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났지만, 또 다른 고통을 마주한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세상으로 나온 이들은 갈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이 불안과 빈곤 속에 내몰린다. 일상적인 생계와 주거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은 이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울타리가 돼야 할 국가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채 외면당하고 만다.

그들은 왜 가정 밖으로 나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한 가정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본지는 현재 탈가정 청년이 놓여있는 상황과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해당 기사를 송고한다.

박석희 기자

[email protected]

‘탈(脫)가정 청년’, 가정 내 폭력, 방임, 경제적 착취, 학대 등의 이유로 원가정과의 물리적·경제적·정서적 단절을 선언한 청년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의 탈가정은 단순히 반항심에 의한 가출이 아닌 ‘불가피한 탈출’이다. 가정이 더이상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됐을 때 생존을 위해 집을 떠난다는 의미다. 김선기(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가정으로부터의 탈출은 가정폭력, 가정불화, 경제적 착취 등의 위기 상황에서 급박하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탈가정 청년의 탈가정은 청년의 독립과 큰 차이를 보인다. 독립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적 기반을 닦아 원가정과 분리되는 데 비해 탈가정은 일련의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실행된다. 또한 독립의 경우 원가정과 분리가 돼 있을 뿐 언제든지 연결이 가능하지만, 탈가정은 원가정과의 단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김 연구원은 “원가정과의 단절을 포함하지 않는 독립과 달리 탈가정은 원가정과의 단절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원가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282북스의 「궤도이탈; 청년 독립 선언 탈가정 청년사례집」에 따르면 ‘탈가정을 선택한 주된이유’에는 ▲정서적 학대 ▲가정폭력 ▲방임 ▲아웃팅* 등이 존재했다.

탈가정 이후 탈가정 청년은 대체로 취약한 생활 환경에 놓인다.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나 보호 체계 없이 홀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윤여원(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탈가정 청년은 주민등록상 주소지 불분명, 신분증 미소지, 건강보험 미가입 등의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고 밝혔다.

탈가정을 했음에도 ‘원가정으로 복귀하는 탈가정 청년’도 있다. 원가정과의 단절을 유지하는 탈가정 청년도 있지만, 불가피하게 원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탈가정 청년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강미선(주식회사 282북스) 대표는 “경제적 상황, 신변의 위험, 부모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등의 이유로 탈가정 청년은 원가정으로 복귀하게 된다”고 전했다.

탈가정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이들은 사회에서 충분히 이해받기 어려운 현실에 놓인다. 가족 중심의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사회에서 부모와의 단절을 선택한 청년을 충동적으로 가출한 청년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탈가정 청년이 겪는 불화와 탈가정 이후 발생하는 문제가 안타까워도 대중은 ‘아무리 그래도 부모인데’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탈가정 청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이들을 정의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탈가정 청년을 돕고 싶어도 정의가 부재해 이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탈가정 청년은 공식적인 법적 지위나 정책적 보호 기반이 없어, 정부 정책의 행정상 ‘존재하지 않는 청년’으로 간주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로의 진출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주거·생계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 속에서 안정적으로 취업을 준비할 여건 자체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 봉착한다. 윤 교수는 “탈가정 청년은 일용직이나 불법 다단계 등 비공식 노동시장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장기적인 저소득 상태와 노동 착취로의 유입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탈가정 청년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기존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개인이 아닌 ‘가구’를 단위로 소득과 재산을 평가하는 구조다. 그 결과, 법적 기준상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모의 소득과 재산이 함께 산정된다. 탈가정 청년이 실제로 독립해 생활하고 있더라도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정작 지원이 절실한 청년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박강산(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탈가정 청년은 현재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원가정으로 돌아간 탈가정 청년이 심각한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탈가정 청년의 입장에서 원가정으로의 복귀는 폭력과 구타가 만연한 현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은 재범률이 높을 뿐더러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강 대표는 “원가정이 가정폭력의 가해자이기 때문에 탈가정 청년은 원가정으로 복귀했을 때 큰 위험에 처한다”고 꼬집었다.

탈가정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가 없는 점이 정의 부재의 원인으로 꼽힌다. 고립·은둔 청년, 쉬었음 청년 등의 집단은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탈가정 청년은 이 같은 실태조사가 전무하다. 박 의원은 “엄연히 존재하는 정책 대상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라며 “정부의 소극행정으로 탈가정 청년 관련 의제가 발굴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이 탈가정 청년에게 있어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취업연계교육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탈가정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원 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윤 교수는 “탈가정 청년은 자립정보, 취업훈련, 취업연계교육 등 기초적인 교육 자원에 대한 접근 자체가 구조적으로 차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만 30살 미만의 미혼 청년은 수급 대상으로 인정받지 않는 점이 복지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해당 제도는 개개인의 소득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 가족 전체를 수급 대상으로 묶어 선정하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가구 소득만으로 정책 수혜자를 선별할 때 탈가정 청년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가정폭력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으면 별도로 기초생활수급 신청이 가능하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마저도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자신이 폭력 피해를 상담했다는 상담 사실 확인서를 직접 제출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탈가정 청년이 이를 용이하게 입증하도록 마련된 제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박 의원은 “피해 입증과 같은 어려운 부분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정폭력 가해자인 원가정에 대한 사후관리가 부족한 점이 탈가정 청년이 원가정으로 복귀했을 때의 위험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상담 프로그램이 일부 기관에서 실시되고 있지만 상담 종료 후 지속적인 사후관찰 등의 조치는 부재하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발생 가정의 96.7%가 사후 관리 서비스 제공을 원한다고 답했다.

탈가정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를 통해 전국의 탈가정 청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 대표는 “실태조사를 통해 탈가정 청년의 규모와 현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의제 설정과 정책 요구를 위한 귀중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탈가정 청년의 원활한 사회 진출을 도울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해결책이 거론된다. 취업 교육 시행 및 교육비 제공 등과 같이 탈가정 청년의 학습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의원은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한 취업연계교육과 같이 탈가정 청년을 위한 맞춤형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며 “민간 기업 또는 시민단체 등과 협업해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원가정 중심의 지원 제도에서 탈피해 부모와 독립적으로 탈가정 청년이 지원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가구 소득만으로 정책적 지원을 펼치는 것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소득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연구원은 “추가적인 선별 기준 도입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개인 소득 기준을 별도로 설정하는 대안은 합당하다”고 설명했다.

기초생활수급 등의 신청 과정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폭력 피해를 증빙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한데 이러한 제도가 있다면 효과적으로 증명 및 신청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강 대표는 “단순히 기초생활수급 신청자의 설명에 의함이 아닌 가정폭력 상담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 결과 등을 통해 행정적 단절을 증명해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후 관리를 통해 탈가정 청년이 원가정으로 복귀했을 때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대책도 제시된다. 상담 종료 후에도 지속적인 방문 조사 등을 통해 가정환경을 점검해야 한다는 해결책이 논의된다. 김도영(제주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탈가정 청년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원가정 모두를 위한 지원을 펼쳐야 한다”고 전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탈가정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을 단순히 ‘가출 청년’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지원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탈가정 청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들 또한 고립·은둔 청년이나 자립준비청년처럼 국가에서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아웃팅 : 본인은 원하지 않지만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이 다른 사람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는 일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