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재편 속,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한국의 안보·경제 전략을 새로 그리는 분기점이 됐다. 회담에서는 ▲안보 및 방위 협력 강화 ▲한미 관세 협상 원안 유지 ▲경제 ·산업 협력 방안 등의 안건이 논의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기축으로 한 국제 질서 개편을 선언하며 이번 회담은 ‘동맹의 현대화’를 모색한 자리로 평가된다.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닌 구체적인 협상을 통해 양국이 안보·경제 분야에서 서로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국방비 증액’이 주요 의제로 꼽혔다.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중국의 군사적 압박 등으로 동북아 안보 환경이 불안정해지며 한국 또한 한미 동맹 차원의 방위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에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인상하도록 압박을 가해왔다. 이에 우리나라는 현재 약 2.3% 수준인 국방비를 3.5% 선까지 늘리는 안을 검토 중이다. 박성용(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의 국방비 증액을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닌 안보 전략의 핵심 요소로 본다”고 전했다.
국방비 증액을 두고 전문가들은 단기적 협상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으로 비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증액으로 인한 책임이 과해져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예산 부담이 수조 원대까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안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국방비 증액은 필요하다”며 “국가 전략과 예산 운용을 균형 있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담을 통해 자동차 및 수출 품목별 한미 관세율 협상도 최종 타결됐다. 7월 31일 치러진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율 및 상호관세율은 25%에서 15%로 조정됐다. 이번 회담에서 타결됐던 자동차 관세율을 12.5% 인하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이는 유지된 채 상호관세율이 15%로 결정됐다. 그 대가로 한국이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석유 등 에너지 자원 구매를 약속했다.
관세율 협상으로 인해 수출 품목은 산업 안정성을 담보 받았으나 자동차 관세율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세 타결로 인해 한국 자동차 수출 산업이 가격경쟁력을 잃게 될 거라는 해석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 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관세 적용을 받아 왔으나 이번 관세 부과 정책에 따라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같은 15%의 관세를 부과받을 예정이다.
경제 관련 안건으로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핵심으로 격상했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조선업체가 미국 현지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방식으로 기술력을 제공하며 미국의 조선업을 부흥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는 한화오션 등 국내 빅3 조선업체를 필두로 추가 투자를 진행 중인 수십조 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에 해당한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두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전략적으로 불균형한 협력이라는 분석이 제시된다. 미국 내 고용 창출을 위한 산업 유도 전략으로 해석되며 우리나라 내에서는 기술 이전과 비용 상승에 대한 우려 또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석오(국제관세무역자문센터)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조선업을 확장시킬 기회가 될 순 있으나, 미국에서 조선을 건조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불균형한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번 회담은 전반적으로 우리나라가 택할 외교·안보 노선을 보여주는 자리였다는 평가도 나타난다. 이전 회담은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점을 모색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현재 미국이 동반자 관계를 요구하기에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도, 안보·경제·산업 협력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내비쳤으나 그 안에서 자율성을 도모하려는 경향도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한 상호관세율 15% 부과 조치는 고용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전부터 상호관세율 10%를 부과 중이었기 때문에 관세 인상이 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와 생산 축소로 이어지며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이사장은 “상호관세율 15% 부과는 기업의 영업 마진 축소시킨다”며 “수출 감소가 생산 축소 및 인력 감원으로 연결돼 특히 청년들의 취업 환경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임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