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년 어깨 위 무거운 건보료 (한성대신문, 613호)

    • 입력 2025-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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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9-01 00:00

감기 진료비로 수십만원을 내야 한다면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국민건강보험이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해당 제도가 일부 청년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법률’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건강보험은 고액의 진료비로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사회보장제도다. 이에 따라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필수로 가입해야 하며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지역가입자 등으로 나뉜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자나 공무원과 같이 사업장에 고용돼 일정한 근로 시간이 발생하는 가입자를 의미한다. 피부양자는 직장가입자의 부양가족으로 보험료 부담 의무 없이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자를 지칭한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를 제외한 자를 가리킨다. 나영균(배제대학교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피부양자는 소득이 없거나 적어 직장가입자가 부양하는 가족으로 인정돼 의료 보장 차원에서 별도의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가입자별 보험료 부과 체계도 상이하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사업장에서 지급받는 보수를 기준으로 보험료가 산정되며 사업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나눠 부담한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세대단위로 가족구성원의 소득과 재산을 합산해 보험료가 책정되며, 세대주가 세대 전체의 보험료를 납부한다. 이진아(이산 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직장의 월급 등을 보험료 부과 기준으로 삼지만, 그 외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자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야 했기에 부과 체계가 구분된다”고 전했다.

상술한 가입 형태는 소득과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나뉜다. 직장가입자는 고용 관계로 계약된 한 사업장에서 주 15시간 또는 월 60시간 이상 근로할 때 소속 기관을 통해 가입된다. 반대로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다. 피부양자는 일종의 예외 사항으로 직장가입자의 가족 중 종합소득이 연 2,000만 원 이하이며 근로·사업 소득이 각각 연 500만 원 이하인 자에 해당한다.

이처럼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가입자가 구분되며 단기 근로자나 프리랜서 등은 직장가입자로 가입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미 지역가입자이거나 피부양자 자격을 넘어서는 소득을 가진 청년의 경우 직장가입자의 가입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사회보험제도 접근성이 낮아진다는 지적이다. 이 노무사는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등에서 제외되는 법령들이 있고, 사회보험제도에서도 적용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직장가입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역가입자로서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역가입자는 재산에도 보험료를 부과해 소득에 비해 높은 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김종명(내가만드는복지국가) 대표는 “현재 가입자 간의 국민건강보험 부담은 지역가입자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며 “전세와 같은 생계형 재산에도 보험료가 부과돼 부담이 가중된다”고 전했다.

청년이 국민건강보험 관련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피부양자 자격을 다시 부여하는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제’ 등 보험료 부담을 경감시키는 제도가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인지가 부족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차의과학대학교 미래융합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세현 학생은 “퇴사 후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를 통해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을 수 있었으나 관련 제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청년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타난다. 2000년도에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완성된 이후 국민건강보험은 당시 세워진 기틀에서 크게 변경되지 않은 채 그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국민건강보험이 아르바이트와 일용직 등 단기·비정규 노동자가 증가하는 청년 세대의 노동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우진(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민건강보험은 주 15시간 또는 월 60시간 이상 근무와 세대단위 부과라는 과거 기준에 여전히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

직장가입자 기준이 과하게 제한돼 있는 점이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직장가입자 가입 기준은 초단시간 근로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초단시간 근로자의 직장가입자로의 등록을 제한시킨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취업자 약 2,800만 명 중 초단시간 취업자는 약 174만 명으로 집계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노무사는 “노동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기준으로 한 가입 조건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과중되는 문제는 보험료 산정 기준이 개편되지 않은 점에 기인한다. 국민건강보험 도입 당시에는 일부 노동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워 지역가입자는 재산을 고려한 부과 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소득파악이 가능해졌음에도 여전히 재산 기준에 머물고 있다. 김 대표는 “정부는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이 어려워 재산에도 보험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현재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율은 9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고 논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홍보 미흡이 청년의 인지 부족을 야기했다는 분석도 나타난다. 현재 국민건강보험 홍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홍보 위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초기 가입자인 청년을 위한 맞춤형 홍보 방안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정 교수는 “현재 국민건강보험 홍보 중 초기 가입자 대상 맞춤 안내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 개편 과정에서 청년의 의견을 반영할 창구가 전무하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타 사회보험제도 내에는 청년 의견 수렴 기구가 존재한다. 국민건강보험에는 이러한 구조가 마련되지 않아 청년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주열(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국민건강보험은 청년 상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듣는 과정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 포괄성을 위해 아르바이트생 등 단시간 노동자 특례보험제도를 설계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단시간 노동자의 경우를 국민건강보험에 명시해 포괄성을 높인다는 의견이다. 정 교수는 “사각지대 해소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 단시간·플랫폼 노동자 특례보험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모든 가입자에게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모든 가입자에게 개인단위 종합소득으로 보험료를 부과할 시 근로소득, 임대소득 등 모든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가 부과돼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가 사라진다는 견해다. 김 대표는 “보험료를 종합소득에 비례해 부과할 경우 소득이 생기는 분야에서만 보험료를 납부해 부담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청년 맞춤형 지침서를 제공해 청년 국민건강보험 인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가입자 전환에 따른 신청 사항과 지원 제도를 담은 청년세대 맞춤형 가이드를 가입 초기에 제공함으로써 혼란을 줄인다는 목적이다. 정 교수는 “청년 지침서를 제공하면 제도 인지도 상승 및 불필요한 체납과 불이익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청년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존재한다. 청년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청년 대상 정책 토론회, 공청회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관점이다. 정 교수는 “국민건강보험이 청년의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청년의 국민건강보험 정책과정 참여 확대가 추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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