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누구든 환대받는 여행의 시작 (한성대신문, 613호)

    • 입력 2025-09-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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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9-01 00:01

[사진 : 임지민 기자]

<편집자주>

휴가철 한여름의 뙤약볕보다 더 큰 난관에 부딪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관광취약계층’이다. 이들도 자유롭게 문화를 즐기고 관광을 누릴 권리가 있으나 관광지에 방문하려 해도 접근부터 편의시설 보장까지 지원되지 않는 현실에 마음을 접는다. 이들의 관광권을 보장하고자 정부에서는 ‘무장애 관광지’를 조성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가 실질적인 관광 활동을 위해 환경 및 서비스 등 관광지 전반을 조성한다. 이를 도입해도 관광취약계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현재 무장애 관광지는 어떤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한계는 무엇일까. 본지는 무장애 관광지로 지정된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을 직접 찾아 현주소를 살펴보고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조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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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애 관광지, 이름뿐인 열린 공간

관광취약계층은 관광을 누리는 과정에서 물리·심리적 제약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 가족 등이 해당한다. 이들은 관광지 접근 시 교통·숙박·관광 시설 등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렵고 관광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 받지 못한다. 지체장애를 가진 박종균(59) 씨는 “여행지에 방문할 경우 식당을 이용하지 못하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마련돼 있지 않은 등의 제약이 많다”고 술회했다.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관광취약 계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도록 무장애 관광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무장애 관광지는 관광취약계층이 여행 중 겪는 물리·심리적 장벽을 최소화한 공간이다. 해외에서는 관광 지역 전역에 소리와 안내방송을 보청기로 직접 전송해주는 오디오 등의 환경을 제공한다.

정부 역시 전 국민의 관광 활동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열린관광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자체 관광지를 선정하면 비용·자문· 홍보 등을 지원하고 지자체가 도움을 받아 무장애 관광지로 조성하는 방식이다. 해당 사업은 ▲관광 약자의 이동 불편 해소 ▲체험형 관광콘텐츠 마련 ▲온·오프라인 정보 제공 ▲무장애 인식개선 교육 등을 통해 관광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 182개의 열린관광 지가 조성·운영되고 있다.

열린관광지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관광취약계층을 위한 인근 교통·숙박 환경까지는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장애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교통·숙박 등의 시설이 함께 정비돼야 하지만 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이에 관광취약계층을 위한 관광 구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2023년 장애인삶 패널조사 보고서」 에 따르면 장애인편의시설 이용 경험에 대해 ▲시각장애인 유도 및 안내설비 9.6% ▲장애인 등의 이용이 가능한 객실 또는 침실 8.7% ▲임산부 등을 위한 휴게시설 5.4% 순으로 낮게 나타났다.

관광취약계층 유형별 편의시설의 수에 큰 격차가 있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시설 조성이 단순 시설물 보수에 치중되다 보니 시각·청각·발달 장애인, 고령자 등을 위한 물리적 설비나 정보 전달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견해다. 열린관광 열린관광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무장애 편의시설 수에 따르면 지체장애 8544건, 영유아 가족 2543건, 고령자 1178건에 비해 시각장애 812건, 청각장애 53건으로 간극을 보인다.

조성 이후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관광지 운영 과정에서 지자체의 자율에 맡기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성 완료 후 지자체에게 개선사항 반영을 강제할 수 없다. 송화성(한림대학교 미래융합스쿨 융합관광경영전공) 교수는 “초창기에 선정된 열린관광지에 재방문했었으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 중간이 끊겨있거나 안내책자와 다른 경우를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관광취약계층이 정작 무장애 관광지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관광 의지를 북돋우고 관광지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지원해야 하지만, 현실은 무장 애 관광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기준 열린관광지 사업선정 2년 차였던 군산 경암동 철길마 을 관광객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열린관광지 인지 여부에 관한 질문에서 ‘열린관광지를 알고 있다 (35.3%)’, ‘열린관광지를 모른다 (64.7%)’로 나타났다.

무장애 관광지 인근 환경 조성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의 사업 심사 부실에서 비롯된다. 지자체가 열린관광지 사업에 응모하며 무장애 환경 조성 계획을 제출하고, 정부가 이를 심사·보완한다. 이때 정부와 지자체 모두 내부 조성에만 집중하며 외부 시설 보완에는 소홀한 것이다. 조아라(한국문화관 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장애 관광지에서 일부 구역의 접근성만 개선되는 경우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자체에 제공하는 컨설팅이 일회성에 그치는 점이 무장애 관광지 편의시설 격차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열린관광지 사업에서 정부는 신청 대상지에 적합한 무장애 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컨설팅을 진행 한다. 지자체는 사업 공모 단계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활용 하나 시공 과정에서는 실질적인 반영이 미흡해진다는 것이다. 오성범(서정대학교 호텔관광과) 교수는 ”지역에 어떤 유형의 장애인이 있는지와 별개로 행정상의 양적 개선에 치중된다“고 밝혔다.

사후 관리 미흡은 정부의 강제성 부재에 기인한다. 정부는 열린관광지 사업을 관리하며 지자체가 3년 이상 무장애 관광지를 운영하도록 점검한다. 점검 후 지자체에 시설 보완을 권고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실제 시설 유지 및 보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오 교수는 “이용자의 의견 및 정기 수시 점검 결과가 실제 제재 수단과 연계되지 않고 권고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제한된 홍보 방식이 무장애 관광지 인지도 부족의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홍보는 지자체 홈페이지 등 온라인에 집중돼 있어 정보 격차를 겪는 관광 취약계층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오 교수는 홍보의 중요성에 관해 “관광취약계층은 자막이나 화면낭독기와 호환되지 않으면 온라인 접근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무장애 관광지 설계 과정에서는 인근 생활환경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된다. 정부가 이용자들이 관광지를 방문해 머무르고 떠나는 전 과정을 검토·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 씨는 “인간의 생존에 있어 먹고 배설하는 게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식당이나 화장실 등을 필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가 사업에 참여하는 지자체에 지속적인 상담을 지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자체가 시공 과정에서 각 대 상지에 맞는 무장애 시설을 도입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이다. 송광인(전 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지속 가능한 관광지를 위해 전문가들이 계속 자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무장애 관광지 조성 관리에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된다. 열린관광지 사업에 참여할 경우 일정 운영 기간을 갖기에 관리가 미흡할 경우 자격 박탈 등의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윤선(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열린관광지 인증의 상표 가치가 높다”며 “관리가 지속적으로 미흡할 경우 인증을 과감하게 회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중심으로 홍보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전언한다. 관광취약계층 사람들이 무장애 관광지의 존재를 인지해야 하며 지자체가 장애인 시설 지원 단체와 연계 등 이용자와의 소통 강화가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장애인 시설 지원 단체와 복지관 등의 연계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신뢰를 기반으로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다”고 전달했다.

▲휠체어를 타고 데크 길을 지나간다. [사진 : 임지민 기자]

영덕, 모두의 바다가 되도록

무장애 관광지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은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관광취약계층을 위한 시설이 갖춰진 무장애 관광지다. 이를 체감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일반형 휠체어에 앉았다. 도착하니 해수욕장 모래사장까지 이어주는 나무 데크 길이 보인다. 데크 길 덕분에 휠체어로 거친 돌길을 지날 우려 없이 모래사장에 도착한다.

▲수상 휠체어를 타고 바다로 나아간다. [사진 : 김혜윤 기자]

수상 휠체어 안내소의 구조원과 거대한 크기의 수상 휠체어가 반긴다. 수상 휠체어는 일반형 휠체어와 다르게 튜브형 바퀴가 달려있고 의자의 면적이 넓다. 수상 휠체어는 타인이 밀어줘야 이동이 가능해 구조원과 함께 바다에 들어간다. 튜브형 바퀴의 부력으로 자연스럽게 물에서 떠오른다. 구조원이 뒤에서 잡아주고 있어 두 손으로 물을 튀기며 파도를 즐긴다. 석찬미(수상 휠체어 안내소) 직원은 “대개 동반한 여행자가 수상 휠체어를 밀어주며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샤워장 계단에 가로막힌다. [사진 : 임지민 기자]

물놀이를 마치고 수상 휠체어 안내소에 돌아가 샤워실 전용 휠체어를 제공받는다. 샤워실 전용 휠체어는 의자 시트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어 하체를 씻기 용이한 형태다. 몸을 닦기 위해 샤워실으로 향하는데 가파른 경사로로 인한 난관이 생긴다. 샤워장 정문에 계단만이 존재해 후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사로를 올라가 샤워실 입구에 도달 했지만, 입구의 문턱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다. 샤워실 전용 휠체어라기에 이용했지만 사용할 수 없어 다시 반납한다. 눈앞에 샤워장을 뒤로 한 채 물에 젖어 찝찝한 상태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낸다. 김성민(영덕문화 관광재단 관광마케팅팀) 대리에 따르면 “장애인 샤워실과 화장실은 조성 중”이라고 부연했다.

▲샤워장을 향하며 경사로를 지나간다. [사진 : 김혜윤 기자]

수상 휠체어와 나무 데크는 무장애 관광지만의 차별점을 보여주지만, 샤워장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은 아직이다. 무장애 관광지는 사회적 포용성을 높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여행 문화의 단초다. 지금의 시도가 쌓인다면 머지않아 모두의 바다가 될 수 있을 테다. 무장애 관광지가 당연한 사회가 되는 그날을 그려보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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