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人> 부조리한 사회의 얼굴을 드러내다, PD 조성현 (한성대신문, 616호)

    • 입력 2025-11-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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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1-10 00:01

[사진 : 조수윤 기자]

‘다큐멘터리 최초 넷플릭스 국내 시청 1위’.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의 성과다.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 사회에 은밀히 뿌리내린 사이비 종교의 실태와 그로 인한 피해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사이비 종교에 잠입해 피해 실태를 드러내며 사회적 관심을 촉발하기도 했다.

조성현(46) PD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방송을 통해 사회 속 진실과 인간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불만제로>, 등 수많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불합리한 현실을 드러냈다. 방송 이후 사회적인식과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 사람의 인생에 깃든 진심과 사회의 단면 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투영된 것이다.

‘세상에 질문을 던져라’ 익숙하게 들어온 말이지만, 정작 우리는 왜 세상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 그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는 변화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조 PD가 발로 뛰며 마주한 현장을 함께 들여다보자.

물음표 살인마, 변화를 추구하다

조 PD는 어릴 적부터 ‘바른 말을 잘하는 아이’로 불렸다. 친구든 선생님이든 논리적이지 않거나 상식에 맞지 않다고 느끼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이었고, 때로는 반박을 멈추지 않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 폭탄’을 던지는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 여기저기에 불만이 많았어요.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사회성이 부족했던 걸 수도 있지만, 제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의 말만 듣고 그대로 따르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여기저기 질문을 하다 보니 관심을 두는 분야도 많았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도 세상을 향한 그의 호기심과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막연히 영화감독을 꿈꾸며 언론정보문화학부에 입학했지만, 정작 그의 시선은 세상의 여러 결로 향했다. 흥미가 생기면 직접 부딪혀보는 성격이었기에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이런저런 경험과 시도를 했어요. 우디 앨런이라는 영화감독을 좋아해서 저도 그 사람처럼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을 준비했어요. 우디앨런처럼 형식을 벗어난 자유로운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거든요. 영화 말고도 제가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었어요.”

세상을 탐구하던 그는 우연처럼 PD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를 겸해 PD시험을 봤고 불과 1년 만에 MBC에 합격했다. 입사 후 그는 <불만제로>,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참여하며 방송 현장을 몸소 익혔다. 그는 언젠가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품고 차근히 경험을 쌓아갔다. 여러 프로그램을 거치며 경험을 쌓던 그는 자신의 시각을 한층 깊게 만들어준 프로그램을 만났다. 바로 이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추적하는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그는 방송 제작에 참여하며 수레 한가득 자료를 모으고 방대한 내용을 익히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남들이라면 버거워할 과정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 안에서 매력을 느꼈다. 어릴 적부터 그가 해왔던, 세상에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PD수첩>을 촬영하면서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사유할 수 있었어요. 메인 PD였던 최승호 선배님에게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어요. 반박이 오가더라도 다시 재반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재미를 느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이에요. 아름답던 낙동강이 개발 사업으로 파괴되는 과정을 기록하며 그 피해가 개인과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했어요. 그리고 과연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에 대한 질문을 방송에 담고자 했죠.”

PD로서 정식 입봉한 뒤 그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질문이 누군가의 아픔을 비추고, 그것이 더 이상 ‘남의 일’로 외면되지 않길 바랐다. 그 마음을 담아 조명한 사건이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70~80년대 부산에 있던 부랑인을 복지원에 납치·감금·폭행하며 수많은 피해자를 낸 사건이다. 영상이 공개된 2013년,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상 논의가 이뤄지는 등 사회적 인식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방송과 사회가 관심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고 싶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형제복지원 사건’이에요. 복지의 이름 아래 폭력이 자행되고 수많은 이들이 부당한 감금과 학대를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이죠. 사건의 피해자가 도서 ‘살아남은 아이’를 집필해 세상에 알리려 했으나 방송 제작 전에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문제였어요. 방송을 통해 외면받은 현실을 비추고, 우리 사회가 소수의 일을 더 이상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길 바랐어요.”

형제복지원 사건을 취재하면서 조 PD는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했다. 그중에서도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심리적인 고통이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피해자들의 상처를 함께 상상하고, 그 장면을 눈앞에 그리며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피해자의 증언과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사건을 취재하면서 피해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분은 남매였는데 경찰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어요. 누나와 함께 납치된 거죠. 그곳에서 그는 매일 폭행을 당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해요. 어느날 누나가 찾아와 함께 도망가자고 했지만 실패한 후 가해질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누나의 손을 잡지 못했다고 해요. ‘그때 누나 손을 잡아 줬더라면’이라고 말하며 여전히 그 일을 한으로 품고 우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심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저는 방송을 마무리 짓겠다는 다짐으로 촬영에 임했어요. 출연자들과 약속한 게 있었거든요. 그들의 증언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그는 개인의 삶에 깊이 스며든 사회 문제를 더욱 예리하게 짚어내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나는 신이다>이다. 이 작품은 일상에 은밀히 퍼져 있는 사이비 종교의 사기행각과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한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린다고 믿었고 그 연결고리를 깊이 있게 드러내며 사회가 다시금 인간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려는 의도였다. <나는 신이다>는 공개 직후 인기를 끌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사이비 종교는 대학생도 많이 마주치는 문제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대학시절 친구가 사이비 종교에 노려지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깊이 파고들어 있죠. <나는 신이다>는 단순히 사이비 종교의 실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돈이나 권력보다 ‘인간의 가치’가 낮아질 때 어떤 문제가 파생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주로 노동이나 성 착취 등이죠. 사이비 문제는 특정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사회와 개인이 서로 영향을 주는 순환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사회적인 이야기’라고 믿으며 방송을 제작했어요.”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위로하는 조PD [사진 제공 : 조성현]

▲가해자 유가족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린다. [사진 제공 : 조성현]

▲조PD가 사이비 종교 피해자와 식사한다. [사진 제공 : 조성현]

조 PD는 프로그램의 흥행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후속작 <나는 생존자다>를 통해 사회 구조 및 제도로 인해 피해를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했는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느꼈어요.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제가 약 12년 전에 촬영할때 봤던 분이에요. 오래전 일인데도 그분의 삶은 여전히 지옥이고, 변화가 없는 것이 마음이 아팠어요. 이것만이 아니에요. 1995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이후에도 여전히 ‘순살 아파트’라고 불리는 부실 공사 건물이 산재하잖아요. 반복되는 문제들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 녹아있죠. <나는 생존자다>를 통해 사건 이후 피해자의 삶을 살펴보며 사회에 마련돼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조 PD는 이후에도 개인과 사회문제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의 시선을 통해 사회가 외면한 개인들의 삶을 조명하고 인간의 존엄과 공감의 가치를 되새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PD라는 직업은 관심 있는 걸 영상으로 표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관심사가 결국에는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되는 직업이라고 여기죠. 저는 사이비 종교를 비롯해 인공지능, 권력 앞에 놓인 개인 등의 주제도 다뤄보고 싶어요. 개인의 일상에 파고들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니까요.”

삶에 물음표를 던지다

조 PD는 사람의 이야기가 곧 사회의 이야기임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사회적인 구조가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으로 사회가 형성되기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으면 세상이 보인다고 말한다.

“우리가 겪는 일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거예요. 결국 인간 개개인의 삶을 가장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사회와 관련된 일이죠. 저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화면을 끄고 목소리만 들어도 이해되도록 노력해요. 제 작품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 기록들을 블록처럼 쌓아 올려 하나의 사회문제가 보이도록 구현했죠.”

조 PD는 사회문제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결국 개인의 일상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가 개인으로 구성돼 있는 만큼, 사회의 변화는 결국 ‘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청년에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질문하라고 전언한다.

“요즘은 ‘왜요?’라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요. 학업에 쫓기다 보니, 질문하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에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정말 많아요.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이 보이죠. 사소한 불편함부터 구조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가 우리 곁에 있어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질문을 던지는 일, 그것이 바로 이런 문제를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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