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 중인 두 정상이 한국에서 마주했다. 지난 30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 중 부산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이 그 현장이었다. 이번 회담에서는 ‘수출 통제 완화’, ‘반도체 수출 제한 유예’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양국은 장기간 이어진 갈등을 잠시 묻어둔 채, 자국의 이권을 극대화하기 위한 계산 속에서 제한적 협력 체계를 선택했다.
먼저 교역의 고리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수출 통제 완화가 주요 안건으로 떠올랐다. 양국의 교역은 패권을 다투기 위한 보복 관세 무역 갈등으로 위축돼 있었다. 고율 관세와 보복 조치가 이어지며 교역 구조 전반이 불안정해지자 미·중은 상호 보복 관세 일부를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산 일부 농산물에 부과하던 최대 125%의 관세를 115% 수준으로 낮추고, 중국 역시 일부 미국산 농산물에 매기던 최대 15%의 관세를 전면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주재우(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는 상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정의 단계”라며 “실제로 양국의 수출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희토류 공급망의 숨통을 틔웠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양국의 농산물 공급망 조정에 기여할 것으로 분석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산 농산물 최대 수입국이던 중국의 교역량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심화된 이후 급감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농가 피해와 중국 가축의 식량 공급 불안을 초래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은 농가와 곡물 산업의 수출 기반을 회복하고, 중국은 대두·옥수수 등 주요 식량 공급망을 확보해 식품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나아가 농산물을 시작으로 각국이 부분적으로 교역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최진백(외교안보연구소 중국연구센터) 연구교수는 “농산물 수입 재개는 상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휴전의 성격이 강하다”며 “1년 동안의 약속이기에 신뢰 회복으로 보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반도체 수출 제한 유예에 관한 합의도 이뤄졌다. 양국은 전기차, 인공지능 등에 사용되는 희토류와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1년간 유예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중국산 배터리 소재의 수입 규제를, 중국은 자국 내 희토류 및 반도체 수출 제한을 연기했다. 중국의 경우 미국산 반도체 부문에 기존 50% 수준으로 수출을 제한해왔으나 이를 일시 해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양국은 공급망 안정에 공동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주 교수는 “이번 반도체 수출 제한 유예 조치는 양국이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도 상호 의존적인 산업 구조를 인정한 결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반도체 수출 제한 유예는 양국 간 기술 경쟁에 따른 충돌을 유보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배터리·반도체 산업의 생산 안정성을 확보하고, 중국은 산업 회복 여력을 확대하며 기술 의존도 완화를 꾀했다. 이에 따라 공급망 리스크가 감소되면서 양국의 기술 경쟁이 협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석오(국제관세무역자문센터) 이사장은 “양국 모두 이번 회담에서 첨단 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전략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1년 동안의 유예 조치를 통해 패권 경쟁의 여지를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회담이 한국에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미국의 핵연료 기술을 한국에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핵추진 잠수함용 핵연료 이전 승인’ 문제가 대두된다. 최근 중국은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면서 군사력 확장에 속도를 냈다. 이를 두고 미국은 회담 직전 한국에 핵추진 잠수함용 핵연료 이전을 승인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는 미·중 무역·기술 전쟁 속에서 한국이 에너지 안보 및 첨단 원자력 기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평가된다. 박동준(제주평화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한국에 핵연료 이전을 승인한 것은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는 전반적으로 한국 기업의 교역 환경 부담이 완화됐으나 반도체·배터리와 같은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이에 지속적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미·중 간 무역 긴장이 완화되며 공급망 불확실성이 부분적으로 줄어들었으나, 기술 안보 갈등은 여전해 근본적인 안정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주 교수는 “이번 회담이 산업 환경에 긍정적 신호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대중국 산업 규제가 유지되는 한 섣부른 낙관은 어렵다”며 “한국 기업은 제3국 시장 진출 등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번 회담으로 첨단 산업 분야의 안정화가 이뤄질 것이 기대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산업 기반이 안정되며 이에 따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생산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김 이사장은 “첨단 소재와 기술 분야에서 안정성이 확보됨에 따라 청년이 새로운 역할을 확보하게 될 수 있다”며 “2025 APEC 정상선언문 경주 선언에서 강조된 청년 역량 강화와 미래 주도적 참여 기회 제공 목표와도 맞물린다”고 밝혔다.
임지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