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한성문학상 - 소설 부문 가작> 그대와 맞잡은 두 손

    • 입력 2018-12-10 04:57
김성현(시각영상 4)

 가로등은 흐릿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혼자 갈 수 없다는 유민을 배웅해줬다. 유민의 집에 도착하자 나는 유민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 했다. 그때 내 허리에 감촉이 느껴졌다. 나를 감싸고 있는 가는 두 팔. 얼굴을 내 등에 파묻은 채 유민은 내게 가지 말라며 졸랐다. 나는 유민의 손을 잡은 채 유민의 집으로 향했다.
 잠에서 깼을 때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 틈으로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내 옆에는 이불로 몸을 두른 유민이 곤히 잠자고 있었다. 유민에게 다가가 얼굴을 맞대려 했는데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촉이 들었다. 의구심이 들어 유민을 덮은 이불을 들췄을 때 나는 보았다.
 그곳에는 사람이 아닌 한 마리의 물고기가 있었다.
 양옆에 달린 동그란 두 눈은 데굴데굴 굴러만 갈 것 같았고, 회색빛 비늘이 얼굴에 가득했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이빨들이 커다란 입에 조밀하게 나있었다.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 앞으로 섰다. 눈을 감았다 호흡을 깊게 가다듬은 후에 숨을 뱉었다. 그다음 눈을 뜨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는 고개 숙인 스탠드가 서 있었고, 각종 자격증 시험과 관련된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군데군데 비어 있는 책장 사이에는 쓰러져 있는 곰인형이 들어가 있었다. 그 뒤 나는 다시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물고기가 자고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그 순간 물고기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얀 두 다리가 삐져나왔다. 나는 황급히 침대 아래 벗어 놓은 옷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시선을 올려보니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찾는 유민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영락없이 유민이었다. 하지만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알게 되었다. 물고기는 나를 보며 잘 잤냐고 입을 벌리는데, 그때마다 아가미가 펄럭였다. 나는 아침에 서둘러서 할 일이 있다고 말을 얼버무리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유민의 집에서 뛰쳐나온 나는 사진첩을 뒤적였다. 그러나 유민과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나는 유민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주황빛 조명으로 물든 벚꽃 나무 아래에서도,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던 벽화 마을에서도, 석양이 저물던 만 아래에서도, 사진 속 내 옆에는 물고기가 서 있었다. 사진첩을 던지려 할 때 문자가 왔다. 유민이가 보낸, 저녁에 같이 보자는 내용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학생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직장인들. 손에 든 핸드폰을 만지느라 정신없는 이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출구로 나가 유민과 만나기로 한 은행 앞에 서 있었다. 얼마 뒤 저 멀리서 유민이 오는 게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유민의 곁을 지나갔다. 사람만한 물고기가 거리를 활보하는데 그들은 어떠한 동요도 없었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걸까.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뜨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물고기가 보였다. 나 혼자 동떨어진 세계에 떨어진 듯했다. 유민은 나를 보더니 빨리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손가락이 없는 지느러미의 형태였다. 내게 다가온 유민은 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유민의 손은 생선처럼 미끄러웠다. 나는 날씨가 더워서 땀이 난다는 핑계를 대며 잡은 손을 억지로 풀었다. 잠시 멈칫거리던 유민은 지느러미를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는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유민이 토라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유민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민은 지느러미로 횟집을 가리켰다. 가게 앞에 놓인 수족관 안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미안, 나 식사는 조금 이따가 하고 싶어. 대신 커피나 마실까?”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 우리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런데 도저히 커피 향이 코끝에 느껴지지 않았다. 유민에게 나는 비린내는 커피 향을 뒤덮어버렸다. 내 어깨에 기대며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비린내는 내 코끝에 풍겨왔다. 유민은 나를 보며 손가락이 없는 지느러미로 내 머리를 만져주었다. 따스함이 전해지던 손이었지만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이번 주에는 어디 놀러 갈까? 근데 오빠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지?”
 “, 물론이지.”
 아가미가 들썩거릴 때마다 흘러나오는 거품에 정신이 팔려 집중하기 어려웠다.
 
 가로등만이 흐릿하게 비추는 거리. 저녁이면 덥지도 않은데 손을 끝까지 안 잡아 준다고 옆에선 계속해서 핀잔을 두었다. 어느새 유민의 집 앞에 도착했고, 나는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유민은 집에 잘 들어가라면서 내 입에 주둥아리를 박았다. 그 순간 비린내가 코끝까지 올라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담벼락 아래에서 내가 오늘 점심에 오징어무침을 해먹었음을 기억해냈다.
 
 “MRI 결과를 보았는데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어요.”
 의사는 모니터를 내게 보여주었다. 내 뇌를 찍은 MRI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일시적으로 사람이 물고기로도 보인다고요?”
 “. 미국의 로버트라는 환자는 사람들이 괴물로 보인다고 고백하더군요. 머리에는 뿔들이 달려 있고, 흉측하게 생긴 생물체가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했죠.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MRI에서는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죠. 그러나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해결책이 무엇인가요?”
 나는 앉아 있던 의자를 박치고 일어섰다. 그러자 의사는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진정하라고 말했다.
 “환자분 상태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니 흥분하지 말고 들어보세요. 결론부터 말하면 로버트는 더 이상 사람들을 괴물로 보지 않아요. 로버트는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인적이 드문 플로리다 교외 지방으로 갔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요양하게 돼요. 그렇게 사람들을 한동안 보지 않게 되자 어느새 사람들을 똑바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니, 어떻게 요양할 시간을 낼 수가 있나요?”
 나는 다시 한번 의자를 박차고 일어설 뻔했다.
 “, 제 말은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인식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은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어요. 그래서 MRI를 이용해도 알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죠.”
 나는 모니터의 화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로버트처럼 인식을 담당하는 부분을 쉬게 한다면 다시 제 기능을 할 겁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자친구분과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빌딩으로 뒤덮여 있는 도심 속. 그 사이를 행인들이 지나간다. 서로 마주치며 걸을 때면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만 같다. 나는 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그러다 발걸음이 멈춰졌고, 나는 쇼윈도 앞에 서 있었다. 그 뒤에는 마네킹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자 크기와 입은 옷들은 달랐으나 하나 같이 둥글둥글한 계란 형태의 얼굴이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유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유민을 따라 두둥실 올라가 푹신한 구름 위에 앉았다. 아기자기한 천사들이 그 위에서 부르는 노래. 안락함에 젖어 서서히 잠이 들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갑자기 유민이 이상하다고. 어서 빨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자리에서 허둥지둥 일어나 나는 유민을 찾아갔다. 저 멀리 유민은 쓰러져 있었다. 유민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하게 유민을 일으키려 애썼다. 유민의 얼굴을 들어 올릴 때 물고기가 보였다. 나는 잠에서 깼다. 셔츠는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나는 셔츠를 벗고 물을 마셨다.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반복될 것 같았다. 핸드폰을 열어 유민에게 당분간 바빠서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인스턴트 라면 컵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주위에 과자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쓰레기 봉지들이 집 입구에 너부러져 있었다. 반지하 방이라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방 안은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유민에게 온 전화였다. 받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벨 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울렸다. 결국 나는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가 캡처한 사진 봐. 지금 당장.”
 
 사진은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유민과 만나지 않았던 1달 동안 내가 유민에게 보냈던 문자 내용이었다.

 81
 “뭐해?”
 “나 지금 집. 너무 피곤해 조금 이따가 연락 줄게.”
 
 88
 “오늘 저녁에 영화 보러 갈래? 나 포인트 다 모아서 공짜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제 제출이 내일이라서 어려울 것 같아.”
 
 829
 “나 오랜만에 스터디 일찍 끝났어.”
 “미안 나 아직 공부할 게 남아 있어서.”
 
 “봤어?”
 유민이 내게 물었다.
 “.”
 “그럼 역 앞으로 당장 와.”
 “오늘은 아직 할 게 있어서.”
 한숨 소리가 수화음 너머로 들려온다.
 “할 이야기가 있어.”
 유민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당장 나갈게. 기다려. 그리고.”
 “그리고 뭐.”
 “아니야. 지금 갈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 중에서 어떻게 단 한 명, 자기 자신이 물고기로 보인다는 말은 터무니없게 들리지 않을까. 그럴듯한 거짓말이라면 고개를 끄덕여주는 수긍이라도 해줄 텐데.

 “유민아 어디야? 나는 이제 지하철에서 내려.”
 “4번 출구 앞이야. 출구로 나오면 돼.”
 
 나는 4번 출구 앞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조금씩 지상을 향해 올라가면서 내 눈에는 사람들이 신은 수많은 신발이 보였다. 그중 빨간 하이힐이 시선에 잡혔다.
 나는 유민에게 힐을 신지 말라고 했다. 유민의 부르튼 다리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유민은 나를 만날 때마다 힐을 신고 왔다. 그래야 나와 눈을 마주보기 쉽다고, 그래야만 나와 입을 맞추기 쉽다며 유민은 힐을 포기하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점점 올라가면서 빨간 하이힐을 신은, 검은 스타킹을 신은 두 다리가 보였다. 그 뒤에 하얀 원피스가, 그리고 유민의 쇄골과 목이 드러난 부분에 도달했을 때, 핸드폰을 들고 있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보였다. 분홍색 토끼 귀가 톡하고 튀어나와 있는 핸드폰 케이스. 내가 귀여운 유민이랑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제품이었다.
 액정이 깨진 내 핸드폰은 에스컬레이터 사이에 걸려서 덜그럭 소리를 냈다. 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빨리 지나가라고 말했다. 주변의 눈들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바로 앞에 있는 동그란 눈에만 가 있었다. 유민 얼굴 양옆에 붙어 있는 이질적인 눈.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은 채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유민은 어떤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굉음. 가게에서 시끄럽게 들리는 음악 소리. 전광판에서 나오는 적 녹색의 현란한 불빛들. 내 머릿속에 생긴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먹을 꽉 쥐지 않으면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유민은 내게 무언가 말하려 입을 벌렸다. 아가미가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유민이 내게 지느러미를 뻗자 시야가 좁아지더니 이내 캄캄해졌다.

 눈을 뜨자 하얀 벽지로 도배된 천장이 보였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내 왼쪽 손목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베이지색 커튼이 보였다. 내 옆에는 유민이 고개를 숙인 채 자고 있었다. 손을 뻗어 유민의 머리카락에 손을 댔다. 예전의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에서 깼는지 유민이 나를 보았다. 그러자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강하게 올라왔다.
 “괜찮아?”
 뻐끔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렇게 바쁘니깐 쓰러지는 거지. 오빠는 나를 봐줄 여유가 하나도 없어?”
 지금 슬픈 표정을 하고 있을까?
 “왜 그래, 그렇게 나를 빤히 바라보고.”
 왼손으로 그녀를 잡아 내 품에 안았다.
 “뭐야, 갑자기. 그리고 잡을 거면 제대로 잡아봐. 이거 더듬는 것 같아.”
 미끈거려서 잡기가 어려웠다.
 “잠시만 그대로 있어 줘.”
 눈을 감고 난 유민의 얼굴을 향해 조심히 손을 천천히 댔다. 유민의 코가 있던 자리를 어루만져 본다. 유민의 도톰한 입술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유민의 부드러웠던 머릿결 사이로 손을 넣어본다.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했던 유민의 체온을 그리워해 봤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유민이 느껴지질 않았다.
 “왜 이러는 거야. 뭐야, 갑자기 왜 우는 거야.”
 “못하겠어. 미안해. 사실 나 유민이 네가 물고기로 보여.”
 “물고기?”
 “. 믿기 어렵겠지만 네 얼굴은 지금 회색빛 비늘로 덮어져 있고, 초점 없는 눈동자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
 어떠한 대답도 들리지 않는다.
 “너를 안을 때마다, 손을 잡을 때마다 들었던 감촉들이 전부 이질적으로 느껴져. 원래의 네가 아닌 것 마냥. 마치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의 물고기로 여겨진다고. 그런데.”
 “그런데?”
 “웃긴 것은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야. 모두 멀쩡하게 보이는데, 오직 너만이 이런 모습으로 변해 버린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나 더 이상 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도 잘 알잖아. 이제는 더 이상은.”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카트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할 말 다 했어?”
 지느러미를 뗐지만 구겨졌던 이불 시트는 쉽게 펴지질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나만 물을게. 오빠는 지금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지금?”
 “나는 오빠가 했던 말을 믿어. 오빠가 형편없는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니깐. 그런데 그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어? 왜 그 사실을 숨기고 나를 피한 거야?”
 “아니, 그건.”
 “왜 나는 알면 안 되는 거야? 끙끙 앓고만 있으면 저절로 해결될 거로 생각한 거야? 그럼 나는 뭐야.”
 “사실을 알면 충격 받을까 봐.”
 한숨 소리가 들린다.
 “, 그렇구나. 그러면 나는 그 상황도 이해 못 해서 매일 침대에 누울 때마다 핸드폰만 쥐면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왜 마음이 돌아섰는지 친구들에게 걱정을 호소하면서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는데.”
 “그게.”
 “됐어. 나 이만 가볼게. 이게 오빠가 원하던 거니깐.”
 유민은 간호사와 부딪힐 뻔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밖으로 나갔다. 유민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끊임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 일렁이는 붉은 빛 조명 아래 경쾌하게 유리잔이 울리는 소리가 반복된다. 그 밖으로 나가면 출렁거리는 빌딩들 위로 네온사인들이 흔들리며 나를 반긴다. 마치 춤을 추듯이, 얄랑거리기 시작하면 밖의 풍경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기보다는 내게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서로 간에 존재했던 경계들이 흐릿해지면 나는 도심의 사이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속의 말들이 빈틈을 비집고 빠져나온다.
 “나 유민이랑 헤어졌다.”
 “?”
 친구들이 물었다.
 “유민이가 물고기로 보이기 시작했거든.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질 않아.”
 폭소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내가 진실을 말할수록 친구들은 이를 거짓으로 여겼다. 나를 믿기보다 나를 비웃기 바빴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나는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가 되었다.
 “나 간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갈 때 친구 한 놈이 내 팔을 붙잡는다.
 “너 병원에서 유민이를 왜 그냥 보냈어?”
 “내가 그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냐. 그러니 보냈지.”
 나는 친구의 팔을 뿌리쳤다.
 “너 유민이한테 사과는 했어?”
 “무슨 사과를 해.”
 “넌 유민이 마음을 난도질해 놓고서 최소한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잖아. 너만 그 일을 감당하면 되는 듯이 행동을 했는데 유민이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겠어.”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나한테 훈수 두려고 하지 마. 이건 내가 결정한 거고, 내가 감당할 일이니깐.”
 “그럼 넌 유민이랑 헤어지는 것에 대해 미련이 없어?”
 목 아래에서 올라오는 술기운 때문인지 대답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 후회 없어.”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어지럽다. 내 앞에 서 있는 친구가 여럿으로 보인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몽롱해지는 머릿속에서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물고기가 뻐끔거리는 소리였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해본다. 신호음이 울린다. 그리고 이내 사라진다. 다시 걸어본다. 신호음이 울리고 다시 사라졌다. 지쳐 그만두려 하자 배경화면에 저장된 사진이 보였다.
 “왜 하필 수많은 사람 중에서 물고기로 보이는 게 왜 유민이냐고.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말이야!”
 순간 두 눈 앞에 서 있는 내 친구의 모습이 시야 속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떠나가는 거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손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두 눈은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고, 도로 위에서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내 방이 아니었다. 뒤를 돌아 주변을 살펴보았다. 책상 위에 있는 고개 숙인 스탠드, 어지럽게 놓여 있는 각종 자격증과 관련된 책들. 책장 사이에는 쓰러져 있는 곰인형까지. 유민의 방이었다. 침대 위 이불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유민이 나왔다. 비록 회색빛 비늘로 뒤덮인 물고기의 모습이었지만.
 “오빠 일어났네?”
 아가미가 펄럭이며 그 사이로 거품이 나왔다. 나는 쓰러지듯 유민에게 다가서 유민을 안았다.
 “죽 끓여 놨으니깐 얼른 먹어.”
 싱크대 옆에는 남은 재료들이 도마 위에 올려져 있었다.
 “오빠 그 친구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 오빠가 쓰러졌으니 빨리 오라고 얼마나 전화를 걸었는지. 전화 받자마자 나 달려 나갔어. 그것도 슬리퍼 차림으로 말이야.”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조용히 하고, 그냥 거기에 누워 있기나 해. 의사 말로는 서로 안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복에 좋다고 했다면서. 그 이야기를 했어야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물고기로 보인다는 거야. 내 몸에 지느러미가 달린 거야? 끔찍해라.”
 유민은 내 앞에 지느러미를 펄떡거리고 있었다.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빠 이제 우리 어떻게 할까?”
 물고기의 깜빡이지 않는 두 눈이 보였다.
 “?”
 “방법을 찾아야지. 난 계속 물고기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나는 핸드폰에 남아 있는 사진들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 함께 했던 날들. 추억으로 남아 있는 날을 다시 되돌아보자.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그 속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유민은 물끄러미 화면을 쳐다본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우선 무엇이라도 해봐야지.”
 아가미가 춤추듯이 펄럭였다.

 파란 건물에 그려진 토끼들이 인사를 한다. 고개를 내민 강아지 그림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위를 덩굴들이 벽들을 타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 어때? 사진 잘 나왔어?”
 하얀 두 날개가 펼쳐진 천사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 날치 같아.”
 왼쪽 볼을 만지며 계단을 내려간다. 얼얼함이 남아있다. 손가락 자국 대신 지느러미 자국이 선하게 보였다.
 “? 나 유민이 너 밟고 간 것 같은데. 이것 봐.”
 다 내려온 계단을 살펴보자 커다란 잉어가 그려져 있었다.

 “옛날에 입었던 옷들을 찾아보니깐 향수도 같이 나오더라고, 그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라벤더 향 사줬던 것은 기억나지?”
 물고기가 한 바퀴 돌자 옷이 나풀거리며 흔들린다. 그러면서 코끝에 향이 전해진다.
 “어때?”
 “내가 알기론 레몬즙은 비린내를 줄여준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레몬 향 향수를 뿌리는 건 어떨까?”
이번엔 뺨 대신 등에 물고기의 흔적이 남았다.
 
 강가 너머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린다. 발자국이 찍힌 산길을 따라 능선을 올랐다. 숨이 차기 시작함을 느꼈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물고기는 고개를 숙인 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힘들지? 조금만 참으면 정상이야.”
 “.”
 매가리가 없는 목소리였다.
 “우선 저기서 한번 쉬자. , 내 손 잡아.”
 지느러미를 잡아보려 했다. 하지만 미끄러운 나머지 내 손에서 자꾸만 빠져나왔다.
 “오빠 손도 제대로 못 잡는 거야?”
 “손가락이 있어야 잡기 쉽지 않을까.”
 하마터면 만의 정상에 가보지 못할 뻔했다.
 
 쏟아지는 조명 아래 주홍빛이 묻은 벚꽃들. 바람이 불자 꽃의 그림자는 부끄러운 듯 살랑거린다. 나무에 가리지 않아 탁 트인 정자 안에서 건물들이 뿜어내는 불빛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발걸음이 들린다. 힐긋 옆을 바라본다. 길게 늘어진 물고기 모양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오빠 여기 올라오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
 유민은 헉헉거리며 먼저 올라온 나의 옆에 섰다. 고개를 숙이니 유민의 다리 그림자가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숨을 팔딱거리는 물고기가 서 있었다.
 “여기 야경은 언제 봐도 예쁜 것 같아.”
 동그란 눈을 한 채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 물고기를 뒤로 한 채 나는 근처에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이쪽으로 와서 잠깐 앉자.”
 벤치에 물고기와 같이 앉았다.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는데 정수리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헛웃음만이 나왔다.
 “아직도 내가 물고기로 보이는 거지.”
 “.”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간에 보지 않는 게 유일한 방법인 걸까? 깊은 한숨을 내쉰다.
 “벌써 9월이네. 가을이 다가오는구나.”
 야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넋 놓고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말이 얼떨결에 나왔다.
 “코스모스.”
 둘 다 동시에 대답했다.
 “기다려 봐.”
 사진 목록들을 찾아본다. 코스모스가 산개했던 917. 순백의 하얀 원피스.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선선해서 서로 짝을 맞추어 신었던 샌들 네 짝.
 “오빠 이거 우리 처음 사귄 날에 갔던 곳 맞지?”
 “맞아. 유민이 네가 입은 원피스가 풀에 젖어서 초록색으로 변했다고 놀렸잖아.
 “이때 오빠가 늦어서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알고야 말고. 그리고 양산. 내가 너 살 타지 말라고 사줬잖아. 네가 양산을 펼칠 때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 예뻤는데.”
 순간 유민의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히히. 그렇게 말해주다니. 고마워. 사실 그때 양산 필요하지는 않았는데.”
 잔잔한 웃음기가 스며든 미소. 보고 싶었다.
 “그럼 17일 오후 6시에 보는 거로 하자. 시간 괜찮지?”
 “나는 문제없어.”
 “그래. 그럼 그때 보는 거로 하자.”

 917. 해는 서서히 구름 뒤로, 산 아래로 숨고 있었다. 선선히 부는 바람 아래 코스모스가 살랑거린다. 하양, 분홍, 자주색들이 섞여 흔들리는 꽃밭 한가운데에 유민이 서 있었다.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레이스가 달린 흰색의 양산을 들고 있었다. 나는 일렁거리는 꽃들 사이로 들어갔다.
 “날 또 기다리게 했네.”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민의 얼굴은 부끄러운 듯이 양산 뒤에 숨어 가려져 있었다.
 라벤더 향이 산개하는 코스모스와 진내하는 꽃향기 사이에서 풍겨왔다. 나를 바라보면 웃어주던 유민의 미소. 지금은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향해 짓고 있지 않을까.
 “왜 그렇게 풀이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거야.”
 유민과 내가 신은 샌들이 보였다. 나는 유민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미안해. 나는.”
 “사과는 그때 했던 거로 충분해. 지나간 일은 더 이상 꺼내고 싶지 않아.”
 “그래도. 나는 겁쟁이였어. 그동안 유민이 너에게 주었던 상처들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부끄러워. 유민이 네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나는 한마디도 못할 텐데. 그런데 유민이 너는 끝까지 내 곁에 있어 주려고 했었잖아. 그래서 고마워. 그리고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유민은 짧게 웃더니 내 왼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꽃밭에 쭈그려 앉았다. 유민의 손에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는 코스모스 한 송이가 쥐어져 있었다.
 “기억나? 우리 처음에 손을 잡았던 날. 옆에 서 있는 오빠가 내 손을 잡지 못해서 잡을락 말락 하면서 손가락만 툭툭 쳐 댔던 거. 그러다 코스모스 한 송이를 꺾어서 한번 나한테 쥐어 보라고 했는데 내 손까지 같이 잡았잖아.”
 유민이 나를 향해 꽃을 쥐고 있는 손을 내민다.
 “뭐해, 얼른 내밀지 않고.”
 유민이 들고 있던 양산을 내려놓았다. 눈동자를 바라본다. 유민이 보였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유민. 눈가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고여 있었다. 지고 있는 석양 저 너머로 바람이 불어 꽃잎들이 팔랑거린다. 그리고 포개진 두 손 사이로 코스모스 한 송이가 보였다.

김성현(시각영상 4)

최병찬(부동산 3)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